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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우 Oct 29.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언어, 그 첫 번째

사랑에는 많은 언어가 있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많은 뜻을 담고 있듯, 반대로 사랑한다는 말과는 다른 표현으로 사랑을 말하기도 한다.


오늘은 사랑을 얘기하는 다른 언어를 말해보고자 한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것만 같은, 슈퍼맨과 같은 사랑의 말이어서 그럴까.


어릴 때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것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온천이 샘솟듯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나에게 콸콸 샘솟아 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로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느껴질 뿐, '사랑'을 한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 '사랑'이란 단순히 더 많이 좋아하는 감정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더욱 특별하고 고결한 것이라, 그렇게 막연한 것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사랑을 샘솟게 해 줄, 사랑의 뮤즈 같은 사람이 없으면 나는 사랑을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런 사람이 아니면, 내 마음속에서는 사랑이 샘솟을 일이 없을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차 내 발 앞의 것만 보던 내가 고개를 들고 조금은 더 멀리 보게 되었을 때 알게 된 건, 사랑은 결코 이성 간의 설레는 감정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들, 부모님으로부터 볼 수 있는 것도, 사랑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었다. 다만 어린 내가 알지 못했을 뿐.

나는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샘솟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대였고, 다른 아이들과 같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결한 마음을 내뿜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아직 감정만 아는 어린아이 일 때, 어머니의 카드를 몰래 가지고 나와 큰돈을 쓴 적이 있었다.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한 사람에게는 어찌 보면 많이 속상하고 생각지 못한 큰 지출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리숙했던 나는 잘못을 저지를 때는 몰라도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어머니가 실망할 것이라는 것과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감정에 파묻혀 사실을 숨기고만 있다 결국, 모든 것을 들키고 말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그때 날 보며 화가 났지만 다시 풀리는 어머니의 표정과, "얼마나 잘못을 했는지 알고 있니? 다른 사람이 카드를 쓰는 줄 알고 너무 놀랬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괜찮다."하고 엄하게 말하면서도 나를 안아주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용서를 받은 안도감이었을까, 나는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잘못했다고, 잘못했다고. 잘못한 걸 깨달은 순간 이걸 어머니가 알게 되면 나에게 실망하고 날 미워할까 두려웠다고, 울음을 토했다.

그런 날 토닥이며 어머니는 말하셨었다. "분명 잘못은 했지만, 이런 일로 널 미워하지 않는단다. 엄마가 항상 미안하고 많이 고마워. 엄마는 널 많이 사랑해."

지금 되돌아보면, 조금은 미워하지도 않았었을까? 하면서도 미워하기엔, 부모의 사랑은 너무도 큰 것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도 일과 가정의 고된 시간들 속에서, 그 어머니의 사랑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아마 사랑은 땅에 묻혀 조금만 보이는 돌부리와 같아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조그마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실은 더욱 크게, 그 자리에 단단히 서있는 것이라.


그렇게 조금씩 사랑을 배워가며 '사랑은 누군가 나에게 샘솟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부터 '단단히 뿌리를 박고 나오는 상록수 같은 것'이라 변모하며, 내 마음의 사랑을 키워가는 시간들을 품었다.


그렇게 뿌리를 박고 나온 사랑은 비바람 앞에서도 흔들릴지언정, 결코 지지 않았다.

쉽게 돌아서고, 쉽게 저버리는 감정과 달리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커다란 고목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 아내를 만나며,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고 했던 이유는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소중한 사랑을 속삭였었다.


그 모든 사랑의 사랑한다는 말 앞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었다.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담대하게 나아가는 용기를 품으며,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듯이,

단단히 뿌리 박힌 내 마음 앞에서 다시 나를 되돌아보며 어떠할지 모르는 나아갈 길 앞에서 각오를 다지게 하는 말.


아내를 만나 결혼을 다짐하며 나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와 같은 범인이기에 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그 사랑을 더 붙잡았다.

두 사람이 만나 새로이 한 몸이 되어 살아갈 그날들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내 앞의 일 분 일 초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며 매 순간 아내를 보며 사랑을 말한다.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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