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몰츠식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심리학의 발견, 쐐기어
지금 이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사람의 무의식과 의식 사이 그 사이에는 잠재의식이다. 그리고 잠재의식은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경계선을 넘나 든다. 심리학이란 학문이 생기기 전에도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서 이와 비슷한 개념을 운운했다고 한다. 잠재의식이 이제 가끔 부상을 해서 의식 상태에 들어가 있게 되면 그 의식 상태에서는 잠재의식이 갖고 있던 메모리가 노출되고 자아 내에 기재되었던 정보가 드디어 꿈을 통해서 표출된다. 반대로 그 잠재의식이 다시 무의식 안으로 들어갈 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층으로 사라진 상태이기에 안으로 들어간 정보는 더 이상 확인 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내용은 [Maxwell Maltz]의 [Psycho Cybernetics]에서 요약한 것입니다."
의사였던 맥스웰 몰츠가 1960년대 쓴 사이코 사이보그네틱스개념을 몰츠박사은 더 알기 쉽게 심리학의 적용을 했다. 자아 이미지와 잠재 능력의 상관관계에서 자기가 스스로 부여한 한계점, 그 한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자기가 세운 자아 이미지의 한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대중들을 설득했고, 이걸 위해서 그의 남은 평생을 강연자로 보냈다.
본인의 그 잠재의식에 대한 것, 자아 이미지를 본인이 그려 놓는 한계밖으로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 더 심층적으로 예를 들어본다면 그중 하나가 쐐기어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야인시대에 보면은 건달, 김두한이 나온다. 김두한의 쐐기어가 뭐였냐면 “장군의 아들”이다. 김두한에겐 이것이 각인되어 있었다. 거기에 따라다니는 장군 아들이란 끈이 김두한 하면 항상 함께한다. 장군의 아들이란 말을 어린 김두환이 그 뜻을 모른다 할지라도 장군의 아들이기 때문에 큰 일을 할 인물과 엮여 있음을 본인이 인지하게 된다. 실제 김두한이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는 북로군정서를 지휘하고 있였고 어머니는 젖도 다 못 띤 김두한을 두고 사망하였기에 거의 고아처럼 자랐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걸쳐가며 동냥젖을 얻어먹어가며 자랐다. 일제 강점기 때 1920년도 청산리 전투를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얻는 장군, 김좌진이지만 그가 암살당할 시기까지 가족을 거의 왜 면한 체 살았으니 거의 고아나 다름없던 김두한이란 얘는 왜 살아야 되는 이유는 몰랐지만 이 어린 김두한에게 들려졌던 끈(String), 즉 각인되었던 쐐기어가 현실은 녹녹지 않을지라도 앞으론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함을 암시한다. 이 것이 김두한이란 어린아이를 따라다니면서 채찍질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마을에 같이 자란 아이들처럼 똑같이 남의 고구마도 서리해먹고 싶겠지만, 그다음엔 수박도, 그리고 다음엔 옥수수도 따먹고 싶을 거지만 안 먹으면 배고픔을 아는 육체를 남들과 동일하게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군의 아들이기 때문에 고구마를, 수박을, 옥수수를 서리할 기회가 있어도 그 행위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를 어기고 만에 하나 그리 했다면 그가 가지고 있던 쐐기어가 그의 마음을 견디지 못하게 찔러 댔을 것이다. 종로의 깡패가 됐더라도 장군의 아들이어서 그는 남과 달라야 했다.
혹여 자기가 장군의 아들인지? 혹여 장군의 아들이라면 그 장군의 아들이 뭣을 해야 하는지? 는 확실친 않았더라도 자기도 그렇게 알고 있는 이상 장군의 아들로 행동케 되고, 우리 알고 있는 김두환으로 빗어 간다. 그다음에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본인도 모르지만 일본인들한테 대들고 싸울 수 있는 힘도 같은 그곳, 쐐기어에서 생긴다. 일제 강점기는 “일본 순사가 온다”는말에 애들도 울다가 다 끊친다는 그 시대였단다. 왜? 어디서? 어린 김두한에겐 그런 깡다구가 생길까? 다른 깡패는 순사란 말이 나오기 전에 벌써 숨은 지 오래되었는데 말이다. 김두환의 주먹보다 센 히라소니도 한땐 그렇게 눈물 끊이며 자랐던 아이 때가 있어서인지 일본 순사가 온다는 말에 어른, 히라소니도 슬금슬금 꽁무닐 뺐지만 김두한이는 그 특별난 쐐기어 때문에 순사하고 대면할 용기가 있었다. 그래서 행방 이후엔 일본순사 놈 앞에 당당히 앞서던 자를 국회의원으로 뽑혀야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당연한 일이 된다. 우리말에 좋은 말이 있는데 이럴 때 뼛속 깊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뼛속에 깊이 맺힌 저장된 메모리가 사람을 계속 조종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김두한이란 사람은 그의 쐐기어가 그 사람의 운명을 만들어 갔다,
우리 어머니가 47살에 날 임신했었다. 너무 노년 임신에 몸까지 건강하질 않아서 시립병원에 아주 자주 입원하셨다. 이 노부부는 밤새 논의 후에 결론을 내렸다. 그게 바로
“낙태”
였다. 낙태! 세상에 눈 한번 떠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다. 정말 이거 나겐 불공평한 일이었지만 어찌 내 의견이 존중될 리가 만무였다. 산파는 돈 벌생각에 초급행으로 집을 박차고 들어와서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날카롭게 가라 온 칼날은 차곡차곡 산모 옆에 쌓아 놓고 있을 바로 그때 우리 집을 지나가던 동네 유지였는 교장선생님이 어느 초장집에서 얻어드신 낮술에 벌그레한 얼굴로 집 앞까지 오셔서 한마디 하셨다.
“애들을 다들 자기 복은 자기가 다 타고 나온 거야”
“이 아이는 하늘의 복을 이미 타고난 거라고……”
교장 어르신은 방금 초상집에서 나오시면서 살아보겠다고 하던 자는 망자가 되어 소천을 했다는데 이 집에선 태어난 생명을 죽이려 하다니 교장선생님의 입자에선 이 두 부부가 하는 짓거리가 한심해 보였는지 한마디 더 하셨다
“이 아인 하늘에서 큰 복을 받았어 세상에 큰 일할 거야”
“세상이 필요한 아이라고”
“특별혀 ~ 특별한 아이여~참”
교장선생님은 이 노부부에게 약이 올라서, "애의 생명에 관한 귀함이 집안의 축복이다"라고 설파해야 이 짓거리 중단할 쭐 아시고 잔뜩 복, 필요, 특별란 단어를 번가라 가면서 중얼대시다가 돌아가셨다. 가시던 길에서 몇 번 돌아서서 쯧쯧 대셨다고 들었다. 교장 선생님이 가신 후에 이 두 노부부가 고민이 시작됐다. 한참의 고민 끝에 결국 산모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6개월 뒤에 기적적으로 나왔다. 그러니 나의 쐐기어는 “세상에 필요한~”정도로 다행스럽게 태어났다였다가 이게 5 공화국이 지나면서 바뀐다.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민족중흥까진 갈 일이 없을 것 같고, 더군다나 이렇게 평화로운 시기엔 역사적일 필요도 더 없을 것도 업고 해서단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로 바뀌었다. 무슨 사명인지? 는 살면서 찾아지는 것일테고…… 중요한 것 이렇게 해서 그때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