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는 몸으로, 위로는 방망이 소리로
어릴 적, 나는 자주 엄마를 따라 마을의 빨래터에 갔다. 어디선가 졸졸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돌사이를 타고 내려오던 그곳은, 내게 작은 놀이터이자 신기한 구경거리 었다. 맑은 물은 금방 거품으로 덮였고 조금 지나면 금방 사라지는 그 모습이 그저 재미있었다. 더러운 빨래 물은 아래로 계속 흘러내려가고, 힘이 부치는 큰 빨래는 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탕탕 있는 힘을 다해 내리치며 방망이질을 한다. 삶을 털어내듯 말이다.
나도 엄마 옆에 앉아 조그만 손으로 작은 천 조각을 올려놓고, 엄마 흉내를 내며 방망이질을 했다. “탕, 탕.” 그 소리가 어찌나 맑고 경쾌했던지, 나는 그 소리가 좋아서 신나게 빨래 위를 두드렸다. 빨래터에 모인 동네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야무진 아이, 엄마 도와주는 효녀”라고 칭찬했지만, 사실 나는 그저 그 소리가 좋아서, 그 맑은 소리와 함께 놀고 싶었을 뿐이다.
그때의 방망이 소리는 나에겐 놀이였고, 엄마에게는 고된 삶의 위로였다는 것을 철이 들면서 알았다. 인생의 무게를 씻어내는 엄마의 두드림 속에, 30대 40대 엄마의 삶의 피로와 고단함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소리를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아리고 먹먹하다.
엄마는 할머니의 치매로 인해 몇 해를 하루 건너 하루로 이불을 싸고 더러워진 옷가지를 큰다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빨래터를 다니셨다. 빨래터는 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감정 해소의 해우소 같은 공간이었다. 서로 삶을 털어놓고, 웃고 울던 그곳에서 단지 옷을 빨고 헹구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말수도 적은 엄마는 마음속에 쌓인 피로와 서러움을 함께 헹궈내고 계셨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과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눈치 빠른 나는 삶이 단순하지 않음을 그곳에서 이미 배웠던 것 같다.
빨래터에서 들려오던 방망이 소리는 단순히 빨래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모두의 엄마들이 짊어진 고단한 삶을 털어내는 소리였다. 나의 엄마도 두 분의 시어머니를 모시며,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엄마의 삶은 쉬운 날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힘겨운 감정을 탕탕탕, 방망이를 힘껏 내려치며 그곳에서 쏟아내셨을 것이다. 그 리듬감 있는 소리는 마치 엄마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던 눈물, 분노, 체념, 슬픔, 그리고 다시 다잡는 굳은 의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기억 속의 그 소리는 어린 나에게는 항상 컸다. 리듬감 있어서 좋았고 철없었기에 신났다.
빨래를 끝내고 젖은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엄마의 얼굴은 오히려 밝고 시원해 보였다. 고단함과 젖은 빨랫감으로 더 무거워졌을 텐데도 말이다. 그 환한 얼굴은 어쩌면 감정을 씻어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해방의 표정이었던 같다. 힘든 과제를 하고 나면 해방된 그런 얼굴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엄마의 소리도, 탕탕탕! 방망이 두드리며 빨래하는 소리도 사라졌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있다. 어디선가 비슷한 탕탕 소리가 들리면, 나는 순간 고개를 돌려본다. 엄마가 생각나고 그립다. 의기소침하고, 고단할 때 엄마가 탕탕탕하며 해소했던 그 소리를 기억하며 힘을 내보기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빨래터에서 감정을 씻어냈고, 나는 그 소리를 기억하며 오늘의 내 감정에 그 소리를 담아 씻어낸다. 누구나 살다 보면 자신만의 감정 해소 해우소도 소리도 필요하다. 그게 어떤 소리이든, 어떤 공간이든 모두 소중하다. 각자는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 가장 자신에게 맞는 것으로 기억한다.
탕탕탕~~!! 빨랫방망이 소리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쌓인 부정적이고 힘든 감정을 조용히 풀어내는 위안의 소리다. 그 소리는 그리움이고, 치유이며, 내 마음 깊은 곳을 향해 '잘한다' '괜찮다'하며 탕,탕, 두들겨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