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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JUU Oct 31. 2024

『사랑이라니, 선영아』 과연 사랑이 무엇이길래,

김연수 지음, 2024년 10월 읽음


연희동의 독립서점에는 "생일문고"라 하여 나와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을 표지가 보이지 않게 포장하여 구매할 수 있는 서가가 있었다. 몇 년 전의 생일에 방문하여 구매했을 때 포장을 뜯으니 김연수 작가의 책이 들어 있었다. 제목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그리고 몇 년 뒤의 생일, 선물로 김연수 작가의 책을 다시 받았다. 두 번을 겹치면 운명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 2003




1. 사랑이 무엇이길래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사랑이라니, 선영아』 p. 45

사랑에 빠졌어요. 수동형으로 쓰인 이 말은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사랑에 빠졌어요. (나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어요. (일부러) 사랑에 빠졌어요.

어떤 말을 붙여도, 의도적인 것 같아도 왠지 발을 헛디뎌 퐁당, 빠져버리는 모습이 수반되어야만 할 것 같다. 사랑을 스스로 맺거나 이루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랑은 나도 모르게 빠져 버리고, 혹은 사랑에 의해 버려지고 만다. 내가 의도적으로 사랑을 일으켜 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 사랑일까?



2. "_ _ _ _ _, 선영아"


실은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이 무엇을 하는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잘하게 될지, 결국 이혼을 하게 될지보다는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말을 빌리거나 혹은 직설적으로 나에게 하는 말에 더 집중이 됐다. 이야기되는 사랑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하는지 계속 생각했다. 내가 만난, 만날 사랑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다. 다행히 길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짧게 생각하고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 이야기는 또 처음이다.



3. 내가 사랑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나?


사랑은 '나'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 죽음은 비가역적인 과정이다. 사랑의 종말도 그와 마찬가지다. 확장이 끝난 뒤에는 수축이 이어지게 된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p. 46

이별을 하고 나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었다. 사실 상대가 아니라 사랑을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좋은 것 아니냐고. 하지만 단언컨대, 그 사랑을 하는 나의 모습들은 너무 한심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상적인 나는 사랑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냥 단언하기도 어렵게 된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도 한없이 행복해하는 모습. 당장 해가 뜨면 할 일이 닥쳐오는데도 어디 한번 떠보라는 듯 밤을 지새우던 날들. 평소에는 그렇게 무던하다가도 작은 감정에 무참히도 흔들리던 기분. 

결국 나는 그 상대들을 사랑한 건지 그런 다양한 모습의 나를 즐기고 사랑했던 건지는... 죽기 전에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4. 끝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p. 47

시작을 한다는 것부터가 어쩌면 축복이다.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든다는 것? 정말 최고의 행운이다. 하지만 혼자 시작했든 함께하든 결국은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사랑이 나보다 빨리 끝나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뼈아프게 아느니 모르고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5. 기억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p. 105

남겨진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은 기억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터널 선샤인>을 이별한 사람들이 엉엉 울며 보겠는가. 기억이 더 오래가지 않고 사랑이 더 오래가면 좋을 텐데. 그렇다면 기차를 탈 때마다, 언 강을 볼 때마다 힘들어할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과 남겨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끝난 사랑의 기억을 남겨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의 기분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언젠가 알게 된다면 정말 기념 케이크라도 자르고 말 것이다.



0. 


작가의 말이 쓰인 해는 2003년이다. 글에서도 운동권 이야기가 몇 번을 나오는 만큼, 사실 내 나이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서사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저 사랑을 이야기하는 문구들에는 20년의 시간을 거쳐서 공감하고 혹은 반항하게 된다. 이야기 안에 들어 있는 감정의 힘이다.

"선영아, 사랑해"가 전국을 뒤덮은 것이 2000년이라고 하던데, 그 문구가 제목에 영향을 미쳤을까? 덕분에 전국의 선영 씨는 많은 사랑을 들었을 것이다. 

사랑 따위는 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책의 뒷장에는 적혀 있다. 홧김에 맞아,라고 하고 싶으면서도 결국은 나는 사랑을 하는 삶을 택할 테다. 원망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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