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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24. 소공녀

by juyeong

고운이 서연에게 사탕 한 움큼을 건네고 얻은 건 단 하나


-영자, 숙자, 말자, … 숙희


이름이었다.

그게, 다음 질문을 건네기도 전에 서연이 홱 몸을 돌려 가버린 탓이다. 손이 하얘지도록 주먹을 쥐고 뛰어가는 서연을 보며 고운은 한 가지 더 깨달았다. 이 소녀와 그 소녀의 관계.


코우즈키 집을 지켜볼 때마다, 서연은 늘 숙희 지척에 있었다. 감시를 하나 보네, 고운은 막연히 생각했다. 숙희가 청소하고 빨래할 때,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지켜보는 서연의 눈이 꽤 날카로웠으니까. 숙희가 일하는 게 영 어설프기도 했고.

그런데 숙희가 삼층 복도 끝방에 들어갈 때면, 서연은 지금처럼 주먹을 꽉 쥐고 홱 돌아섰다. 다른 아이들이 방문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잡아끌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그 집 소녀 중에 서연만 숙희와 코우즈키 딸 사이를 안다?

당장 필요한 얘긴 아니었지만. 뭐, 그동안 숙희를 경수 동생, 애매하게 불렀으니, 사탕으로 얻은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결국,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공중전화로 들어간 고운은 수화기를 들었다.


-모시모시 남방


전화를 받은 교환수는 목소리가 낮았고, 늘 무심한 말씨였다. 코우즈키씨 댁으로 연결해 달라는 말에 스르르 사라졌고.


-여보세요?

-숙희 안녕. 나, 경수 동무.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라버니가 어떤 편지를 보냈을까, 작은 목소리에 기대감이 차오르는 걸 듣고 있으려니, 고운은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은 편지가 안 왔어. 네가 기다릴까 봐. 연락했어.

아.

아이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전화를 끊으려나, 걱정이 되는 찰나. 숙희가 뜻밖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언니에게 전화를 받고부터 잠을 잘 자요. 한동안 못 잤거든요.

한동안? 언제부터?


그날. 어르신 집 앞에서 나를 붙든 오라버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건지, 더불어 집이 망했다는 충격의 여파인지, 하나뿐인 동생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무거운지, 그것도 아니면, 동경 유학은 신나지 않는 일인가?


-숙희야. 잘 지내. 잘 지내고 있어. 오라버니가 꼭 데리러 올게. 이 책은 오라버니가 돌아와서 읽어줄게. 가지고 있어.


그날. 어르신 집에 들어간 내가 소공녀를 끌어안고 밤새 운 걸 오라버니는 알까. 아마 알 것이다.

오라버니니까.


-숙희야 자니?


내 방. 오라버니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숙희야 자니? 오라버니는 나긋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럴 때면 나는 두 가지 맛의 사탕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것처럼 세상 심각해졌다. 눈을 뜨고 계속 읽어달라고 할까? 잠든 척 토닥여주는 손길을 계속 받을까?

그럼 오라버니는, 토닥임을 그치지 않고, 계속 책을 읽어주었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오라버니가, 지금 내 마음을 알면 안 되는데.

걱정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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