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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25. 좋은 오라버니와 나쁜 동무

by juyeong

-좋은 오라버니네.

-네.


오랜만에 들었다. 작은 의심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네.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만주에서 이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더라. 밀정으로 투입시킨 동무가 적진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그때, 책상에 앉아 그가 변절했네 안 했네 떠드는 사람들을 보자니 고운은 토기가 올라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금 민형이를 의심해요?

-걔는 뭐 달라?


총 좀 쏜다고 오냐오냐해 줬더니.

후 이게 진짜.

뭐, 이게? 너 몇 살이야?

그날, 백탁 아저씨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놈 모가지를 따는 거였는데.

들판에 멍하니 있으니, 아저씨가 왔다.


-왜 왔어요.

-너 연초 태우나 감시하러. 그거 내비둬봐, 나중에 죽어서 니 아버지 만나면 그 인간이 날 가만두겠어? 죽이지.

-죽은 사람 또 죽어 봤자.


에헤이 두 번 죽으면 억울하잖냐. 이해해라. 저놈이라고 그러고 싶겠냐. 여러 사람 목숨 달려서 그러지. 그리고 너도. 평소엔 잘도 참는 애가 민형이 얘기만 나오면 성이냐. 난 반대다.

뭐가요.

너랑 민형이.

… 가 뭐요.

에헤이.

놀려먹으면 좋아요?

좋지 그럼. 좋을 때다.

아저씨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백탁 아저씨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놈 모가지를 땄다면, 아니, 못해도 그 겁쟁이 코에 주먹을 날렸다면, 놈이 상해 작전에 함께 가는 일은 없었을 거고, 작전 중 겁먹고 소리 내는 일도 없었을 거고, 우리를 쫓던 군인에 발각될 일도 없었을 거다.

민형을 짓밟으며, 도망친 쥐새끼를 잡았네, 신나게 말하던 군인. 그의 오른 볼에 깊이 팬 보조개. 그 모든 것이 고운에게 여전히 생생했다.


-동무로는 안 좋았어요?


숙희의 물음에 고운은 멈칫했다.

민형이는 내 동무로도, 민우 형으로도 좋은 사람이었다. 너는 왜 만주로 왔어? 내 아우랑 어머니를 지키려고.

하지만 네 오라버니는


-아니,


네 오라버니는 널 두고 가버렸는 걸.

고운은 뱉고 싶었다. 날카로운 말로 숙희의 견고한 믿음에 상처를 주고 싶었다.


-좋았어. 좋은 동무였어.


사실은 내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쁜 동무는 결국 나였어. 민형이를 상해에, 그 지옥에 두고 떠난 건, 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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