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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함? 결국 위로받는 작품 <이터니티> 변희상

by 위키더뮤지컬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두려움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뮤지컬 ‘이터니티’는 시간이 지나며 대중들에게 외면받게 된 1960년대 글램록 스타 블루닷과 현시대에서 그의 음악을 여전히 동경하는 글램록 스타 지망생 카이퍼의 이야기를 평행우주라는 개념을 활용해 그려낸 작품인데요. 우주와 인간의 삶을 엮어 풀어낸 이 작품에서 본인의 에너지를 200% 분출하며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인물이 있습니다. 블루닷 역의 뮤지컬 배우 변희상입니다. 잊힌다는 두려움보다 자신의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그는 그 어느때보다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는데요. 무대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그와 함께 ‘이터니티’ 작품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tempImagepcHTVo.heic 사진=알앤디웍스 제공


Q. 공연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었어요. ‘이터니티’ 대본을 읽고 나서 처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사실 처음 읽었을 땐 헷갈렸어요.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잊힘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공감대가 저한테 다가왔고요. 결국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 내고 다시 자기 자신을 마주 볼 때의 순간에서 오는 짜릿함이 있더라고요. 작품을 연습하면서 인간 변희상으로서도 심적으로 해소되는 부분들이 참 많았어요.


Q. ‘트레이스 유’에 이어 다시 한번 록 뮤지컬에 출연하게 되셨네요. 무대에서의 모습이 본인의 주 음악 장르인 것처럼 자연스럽더라고요. 록에 대한 관심이 평소에도 많은 편이었나요?


원래 록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트레이스 유’를 하게 되면서 많이 배웠죠. 록 뮤지컬을 처음 연습할 때는 에너지 있게 불러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한 곡을 다 완창하지 못할 정도였거든요. 근데 하다 보니까 요령도 생기고 발전하는 느낌이 들어서 재밌더라고요. (이번 작품 커튼콜 때 관객들과 여유 있게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솔직히 끝나고 나면 진짜 녹초가 되거든요? 근데 공연 할 때는 그런 걸 진짜 못 느껴요. 관객분들이 함성을 질러 주실 때마다 에너지가 풀파워로 충전되는 느낌을 받아요.


Q. 희상 씨가 연기하고 있는 블루닷은 록스타잖아요. 그중에서도 글램록이라는 생소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고요. 혹시 해당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참고한 인물이 있었나요?


일단 글램록이라는 장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려고 했어요. 일반적인 록은 곡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 있잖아요. 그런데 글램록은 노래를 추천받아 들어보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 처음 이해가 되기 시작한 시점이 데이비드 보위의 무대를 보면서부터였어요. 그분은 자신의 페르소나를 정하고 그 세계관 안에서 개성 있는 무대를 선보이더라고요. 쉽게 말하면 부캐(릭터)같은 거죠. 무대에서 내려오면 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요. 이런 게 글램록이구나 싶어서 그의 무대를 열심히 보며 참고했죠.


tempImagerXxeFD.heic 사진=알앤디웍스 제공


Q. 그럼 직접 대본을 분석하며 알게 된 블루닷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배우들마다 표현하는 블루닷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제가 만든 블루닷은 어린 시절에 생긴 트라우마와 아픔이 내면 깊이 존재하는 캐릭터예요. 몸만 컸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요. 글램록이라는 장르가 말씀드렸다시피 무대 위에서 부캐의 모습으로 서는 특징이 있다고 했잖아요. 블루닷은 무대 위에서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팬들 앞에서는 슈퍼스타로서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가면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땐 어린 시절의 아픔과 외로움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인 거죠. 그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Q. 카이퍼와의 관계성은 어떻게 그리고자 하셨나요?


카이퍼는 제 안에 내재된,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 힘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블루닷은 트라우마가 내재된 인물이지만, 글램록을 접하고 팬들을 만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 부분도 있을 거란 말이죠. 긍정적인 에너지들이 아픔을 뚫고 나오는 순간이 저에겐 카이퍼 존재 그 자체였던 거 같아요. 카이퍼의 목소리가 들릴 때 영감이 떠오르기도,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도 하고요. 제가 봤던 태초의 빛이 카이퍼라고 느끼고 연기하고 있어요.


Q. 결말은 각자의 해석으로 남겨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대신 이 질문을 드려봅니다. 마지막 ‘이터니티 Rep.’를 부른 후엔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마지막 이터니티 Rep. 무대만큼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진짜라고 생각하고 임하고 있어요. 노래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객석을 바라보는 순간 관객분들의 환호성이 들리는데요. 그것까지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지다 보니 감격스러우면서 한편으론 슬프기도 해요. 이건 연습할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거든요. 환호성을 통해 드디어 블루닷이 나로서 인정받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잖아요. 블루닷의 삶이 어떻게 펼쳐졌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행복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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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알엔디웍스 제공(왼쪽)


Q. 회차마다 달라지는 관객들의 즉석 질문에 대한 재치 있는 답변들도 화제였어요.(해당 극은 공연 시작 30분 전까지 질문함에 관객들의 질문을 받고, 공연 중 ‘라잇이어 토크쇼’ 장면에서 블루닷이 랜덤으로 뽑은 질문에 대한 답을 즉석에서 한다.) 혹시 답변하기 전 본인이 마음속에서 정한 기준 같은 게 있을까요?


일단은 블루닷으로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요. 그리고 최대한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려고 해요. 사실 배우로서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긴장되기는 해요. 항상 작품과 맞아떨어지는 질문만 뽑으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웃음)


Q. 공연 중 일어나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있죠. 실시간으로 무대 위에서 메이크업을 직접 하시잖아요. 연습을 진짜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이게 그냥 분장이면 오히려 쉬웠을 텐데, 글램록같은 분장이어야 하잖아요.단지 여장처럼 보이면 글램록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생각해서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어떤 색이 어울릴지, 어떤 속눈썹을 붙여야 할지 등 이것저것 발라 보며 분장 선생님 조언을 받았어요. (디테일한 것까지 각자 정하셨나 봐요?) 네, 근데 분장을 제한된 시간 안에 해야 하잖아요? 무대 위에서 최대한 여유로운 척하지만 감정도 살려야지, 가발도 써야 하지, 노래까지 불러야 하니까 처음에는 진짜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요.


tempImages7hGTo.heic 사진=알앤디웍스 제공


Q. 저는 이 극을 보면서 블루닷의 선택의 순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선택의 순간마다 굽히지 않고 글램록을 고수하는 그의 모습이 잘 공감되셨나요?


그게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블루닷에게 글램록은 본인의 전부잖아요. 그걸 내려놓고 무대에 서는 상황은 너무나 무서웠을 거예요. 나의 나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하니까요. 나를 살게 하는, 모든 공격을 막아주는 최고의 방패가 글램록이니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공감이 되는 게 연습실에서 형광등 불빛에 분장 없이 가소품으로 런스루를 돌면 되게 부끄러울 때가 있거든요. 근데 제대로 의상과 조명이 갖춰진 상태에서 무대에 설 땐 거짓말처럼 딱 캐릭터로 몰입이 되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며 캐릭터로서 이입하려 했죠.


Q. 희상 씨의 배우 인생을 돌아봐도 선택의 순간들이 참 많았죠. 일본 극단 사계에 들어가 3년 동안 단원 생활을 하셨잖아요. 이후 과감하게 극단 생활을 접고 오디션 프로그램 ‘더블 캐스팅’에 출연하기도 하셨고요. 혹시 만약 지금의 내가 과거 당시의 불안한 나를 보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당시에는 망설이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거든요. 결정을 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고요. 만약 과거의 저를 마주한다면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부딪히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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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배우로서 언젠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단 두려움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고민은 없었나요?


의외로 지금까지 그 고민은 안 해봤던 것 같아요. 현재에 대한 고민은 되게 많이 하는데 너무 먼 미래에 대한 고민은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고민해 봤자 소용이 없단 걸 아니까요.그냥 현재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미래에는 그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생각해요.(역시 꿈 전도사답네요) 맞아요. 사실 제 꿈의 일부를 찾았고 이걸 해나가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살다 보면 원하던 다른 꿈이 또 어느 순간 이뤄지지 않을까요? 긍정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보시는 관객분들께 한마디 해주신다면?


되게 어렵고 난해한 작품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막상 와서 보시면 정말 위로가 되는 작품이거든요. 저도 실제로 되게 위로를 받고 있고요. 겁먹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셔서 그냥 위로받고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의 행복한 마음을 무대 위에서 마음껏 발산해서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글/사진 : 공연전문인터뷰어 이우진

공연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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