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언제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학생들마다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했고, 특히 수업 방식에 대한 의견 충돌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단어를 외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로 유도하려 했지만 학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대화 못해요. 단어만 외울 거예요." 시험 준비를 이유로 수업 참여를 거부하는 태도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말했다.
"시험 준비만 하려면 교실에 있을 필요 없잖아. 나가."
교실 안은 싸늘해졌고, 학생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문을 나서며 그는 작은 목소리로 부모를 욕하는 듯한 말을 중얼거렸다. 교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 후에도 학생은 여전히 교실에서 나를 노려보며 그때 했던 욕설을 입 모양으로 반복했다. 샤오딩은 나에게 조언했다. "이선생님 그 학생에게 반응하지 마세요. 괜히 선생님만 손해 봐요."
샤오딩과는 전과 다름 없이 그냥 동료로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계속 도움을 받고 있다.
알고 보니, 이 학생의 집안은 상당히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집안이었다. 중국의 부자들은 돈뿐만 아니라 경찰과의 관계 같은 권력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을 가진 학생과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 학생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는 소위 '소황제'로 불리는, 집에서 왕처럼 자란 외동이었다. 돈 없는 외국인 선생님이 공개된 교실에서 자신을 무시한 사건은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이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고,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나도 그와 최소한의 인사는 나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례한 태도로 일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다양한 가치관과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의 교류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배웠다. 학생들과의 갈등 속에서도, 그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며 더 나은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결국 이 학생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마음이 열렸다. "선생님, 잘 참으셨어요. 선을 더 넘었으면 내 친구들 불렀을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살려줘... 여기 나 혼자라고 ㅎㅎㅎ"
이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학생들이 갖고 있는 습관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가진 방식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나는 교수법에 대한 책을 펴고 더 나은 가르침을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학생들과의 갈등과 성장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수업에서 권위에 대한 도전을 받는 일은 한 번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내가 한국어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도전해야 했다. 발음 교정을 위해 매일 300쪽에 달하는 소설책을 정독하고, 틀릴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발음을 다듬었다. 문법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예상 질문에 대비하며 한국어 문법책과 교과서를 비교하며 문법 지식을 반복해서 쌓아갔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교원자격증에도 도전을 하고 매년 중국에서 TOPIK 시험에 직접 응시하며 실전 경험을 쌓아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깊이 있는 수업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학생들에게 나의 권위가 도전받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그거 아니에요. 우리 선생님은 다르게 가르쳐 주셨어요."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차분히 되물었다.
"네 선생님이 누구니?"
그는 길림에 있는 조선족 선생님에게 배운 내용을 이야기하며 나의 발음까지 지적했다. "왜 ‘어’랑 ‘오’가 다르죠? 선생님 발음 좀 안 좋은 거 같아요. 우리 선생님은 두 발음이 비슷하던데요??"
요즘 말로 긁혀서 혈압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조선족이 사용하는 언어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사용하는 한국어의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조선족의 언어는 '조선어'라고 명확히 구분해서 가르쳤다.
"조선족이 사용하는 말은 조선어고, 한국어와는 다르단다. 문법적으로 비슷할 수 있지만 표현과 억양, 사용하는 단어들이 크게 다르지."
학생은 처음엔 반발했지만, 차이를 알아야 더 깊고 풍부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파한 결과. 우리는 결국 오해를 풀고 밥을 함께 먹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한 달쯤 지나 학생이 한국으로 가게 되었을 때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말했다.
"선생님, 말씀하신 게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차이를 더 잘 이해하도록 노력할게요. 감사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학생들과의 갈등이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의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은 나에게도 큰 배움이었다. 이와 같은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한국어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다.
이러한 갈등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학생들과의 신뢰를 깊게 만들어 준 소중한 경험임을 깨달으며 나는 오늘도 책을 펴고 더 나은 교수법을 고민한다.
"선생님 밥 사주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학생들이 참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갑 속에 있는 돈을 생각한다. 지금은 핸드폰 안에 있는 전자지갑 속에 돈을 생각한다.
항상 모자라다.
한 달 한 달 쓰고 쪼들리는 월광족의 인생으로서는 참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가 없지만 학생들과의 많은 교류를 위해서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했었는데. 그래서 그중에 하나가 같이 하는 식사였다.
나는 식당이나 이런 곳에서 밥을 사기가 어려워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학생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직접 요리를 하거나 요리를 같이 만들면서 정을 쌓아가고 같이 밥도 먹고 사진도 찍고 이런 식으로 많이 했다. 정말 격이 없이 지내는 그런 사이가 됐다. 그래서 중국인 선생님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중국인들은 자기 집에 초대하는 것은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밖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의 집에는 전혀 가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럴 기회도 없다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좀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학생들과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음식도 만들고 게임기 게임도 하고 그런 식으로 서로 알아가며 고민이나 어떤 삶의 방향에 대해서 조금씩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
"왜"
"선생님 혹시 우리 엄마한테 연락이 오면 저 그냥 선생님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해 주세요."
나는 쉽게 생각하고 화상 통화를 통해서 어머니에게 집에서 자고 간다고 얘기를 했다. 그 학생은 실제로 우리 집에 자진 않았다. 다른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다음 날 학교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 학생이 우리 집에서 잔다고 한 그날 안 좋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집에 어머니는 학교로 찾아오셨고 나는 둘러대느라고 바빴다.
그 어머니가
"선생님이 선생님 집에서 잔다고 했잖아요.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아 그래요..."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될지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을 했다.
"제가 자고 있는 순간에 어디 자고 있는 도중에 어디 나간 것 같아요. 진짜 같이 자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다른 방이 있어서 저는 잘 알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관리를 못 했네요. "
사실 집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다. 근데 그 집으로 올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로 이렇게 얘기를 한 거다. 사실 그렇게 내 생각에는 그게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일이 점점 커지고 있겠다 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샤오딩에게 물어봤다.
"야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나 어떡하면 좋냐?"
샤오딩은 "저번에 했던 것처럼 그냥 가만히 있어요. 학교에서 알아서 얘기를 해줄 거예요. "
의외였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사람이 굉장히 담담하게 하는 걸 봐서 그녀도 전혀 이런 일이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말 그대로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 잠깐 오늘은 일찍 퇴근해"
그래서 나도 집에 일찍 갔다. 그다음 날 샤오딩이 말했다."이 선생님 일 다 처리됐어요. 뭐라고 했어요. 내가 얘기했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면 된다고..." 그래서 생각보다 학교에서 날 괜찮게 보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나에 대해서 보증을 서주고. 그런 식으로 잘 대답을 해서 괜찮게 넘어간 듯하다. 나는 굉장히 기쁘면서도 조금 찜찜했다. 그래서 그 학생을 찾았다.
"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는데 걔를 만났어요. 이제 사실은 우리 어머니가 너무 엄격하시거든요 그리고 저도 결혼을 해야 하고요..."
그 친구는 유학을 목적으로 학교로 온 게 아니었다. 항상 여자 학생들에게 추근대는 그런 학생이었다 전에도 한번 물어봤는데 결혼을 하고 싶어서 학원에 왔다고 했다.
아마도 결혼 상대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었다.
"아 선생님 감사합니다."
" 내가 뭘 감사해."
" 아 그냥 감사해요."
그렇게 된 후 1년 후 그 둘은 결혼했고 지금도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본의 아니게 그들에게 내가 중매쟁이가 된 것이다. 이것은 학생과의 갈등 아니 부모와의 갈등이 될 뻔한 것은 학교에서 다행히 처리를 해주고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