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연: 새로운 경험의 기록

by leolee

히말라야 플랫폼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음성 라이브를 시작할 때, 나는 그저 목소리로만 팬들과 교류하는 것이 전부일 줄 알았다. 목소리 하나로 청취자들과 교류하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디지털 공간에서도 충분히 인연이 쌓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방송을 시작할 때는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고, 한국 사람으로서 중국에서 살아가는 일상이나 차이점들을 소개하곤 했다.

카메라 각도를 생각을 안 하고 있다가 한 메시지가 올라왔다.


"선생님, 청소 좀 하셔야겠네요!"


깜짝 놀라면서 각도를 바꾸긴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게 화면에 노출되는 모든 것에 신경 써야 한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이후 몇 번 더 방송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레 팬이 생겼고, 중국 곳곳에서 다양한 청취자가 참여했다. 내가 몰랐던 작은 마을에서까지 참여해 주는 모습을 보며, 중국이 얼마나 넓고 다채로운지 새삼 깨달았다. 방송을 하며 간단한 생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한국과 다른 중국 문화에 대해 소소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조금씩 주제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라이브 방송에서 선보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는 내게 항상 큰 즐거움을 주었다.

월급날에는 언제나 노래방에 가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노래들을 신나게 불렀다. 중국의 노래방은 한국의 옛 노래방처럼 동전으로 작동되는 곳이 아닌, 고급스러운 시설과 장비가 갖춰진 곳이었다. 마이크와 조명, 터치스크린으로 이루어진 시스템 덕분에 노래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마치 공연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후, 집에서도 노래방처럼 프로젝터를 통해 가사를 띄워놓고 즐기게 되었다. 결국에는 핸드폰의 앱을 다운 빚이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험을 라이브 방송에 접목해 한국 노래와 중국 노래를 번갈아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가수 소경동(萧敬腾)의 노래를 부를 때는 시청자들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사람이 중국 노래도 부를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가 소통을 통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점점 팬이 늘어가면서 매일 같은 청취자들과 소통하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노래, 또 어느 날은 한국어 책을 읽어주며 그 내용을 나누기도 했다. 또한 내가 주로 교육 현장에서 사용하던 단어나 표현들을 교류하면서 내 중국어 실력도 차츰 향상되었다. 이러한 소통의 경험은 디지털 교실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가능성을 더욱 깊이 고민하게 했다.


비디오 라이브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기존의 음성 방송과는 달리, 비디오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지니 더 많은 시청자들과 시각적으로도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번에도 이야기했듯이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비디오 라이브를 개설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친구의 계정을 빌려 방송을 시작했다. 생소한 장비와 기술에 어색하기도 했지만 점차 익숙해지며, 마치 새로운 차원의 수업을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진짜 얼굴이 보이는 수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양한 교육 플랫폼을 찾아보았다. 마침내 얼굴이 주로 보이는 라이브 수업을 열 수 있는 플랫폼을 발견하게 되었고,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플랫폼은 전 세계의 학생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특히 브라질, 말레이시아,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접속한 학생들과 소통하며 국제적인 인연을 만들어갔다. 그들에게 공부하는 법, 각 분야별 질문, 발음, 문화에 대한 서로가 궁금증을 나누었다.

특히 브라질이 고향인 웨딩 드레스 디자이너 마리라는 학생은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며 나와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시간 차이를 고려해 정기적으로 소통했다. 그녀와 나는 시차가 12시간으로 나의 밤방송은 그녀의 오전을 열어주는 수업이다. 그녀는 밝은 미소와 리액션으로 나를 받아줬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중국인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고, 결혼할 예정이라고 했다.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참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결혼을 축하했고, 응원의 마음을 담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내 방송에 들어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 날에는 프로필 사진이 결혼사진으로 바뀌고, 내 연락처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보내며 진심으로 축하해 줬는데, 연락이 끊긴 사실이 아쉽고 씁쓸했다.

참고로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매해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작은 정성을 담아 보냈지만, 답장을 받거나 감사 인사를 들은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짧은 인연이라도 의미를 두며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금도 한 해 평균 40장 정도의 카드를 만든다.

그렇게 1년이 지났지만,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카드가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없다. 그저 작은 인사라도 돌아왔다면 좋았겠지만, 인연의 흔적을 남기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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