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도에 도착한 지 4일째,
나는 계속되는 긴장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손에 쥔 돈은 얼마 남지 않았고,
아직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청도라는 도시는 내게 낯설었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날도 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하던 걸 해야겠지."
한국에 있을 때 줄곧 디자인업에만 종사했으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디자인 회사들뿐이었다
그렇게 디자인 회사 목록을 하나씩 찾아보며,
이력서를 보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작은 희망이라도 붙들기 위해 여러 회사를 검색하고, 그들의 요구 조건을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가며 면밀히 살피며
나의 경력을 최대한 부각해 작성한 이력서를 보냈다.
그러나 며칠 후. 결과가 나올 법했지만
상황은 여전했다.
응답은커녕 이메일 읽음 표시도 바뀌지 않았다.
고요한 이메일함을 바라보며,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럼 한국어 교사를 해보는 건 어때?"
친구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디자인을 전공한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생소했다.
하지만 한국어 교사라면 내 모국어를 가르치는 일이기에,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긴 고민 끝에 결심을 내렸다.
학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메일을 보내며 차근차근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아니 여기 왜 이러냐? 이메일을 안 봐.."
다시 한번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친구는 나에게 전화를 직접 걸어보라고 조언했다.
'중국에서는 이메일보다 전화가 더 효과적이야'
이 말은 내게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휴....."
전화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몰려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과 전화통화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었고, 그때마다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친구가 알려준 중국어 발음을 익히기 위해 영어 병음으로 된 문장을 외우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한국어 교사가 필요하신가요?"
몇 번을 연습하고 나서야 간신히 용기를 내어 첫 번째 전화를 걸었다.
예상했던 대로,
"필요 없어"
"이미 있어요"
그중 몇몇은 나의 어눌한 중국어 때문에 불편해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네, 필요해요, 내일 한 번 면접 볼까요?"
처음 전화 내용을 들었을 때는 그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면접 전 날 나는 침대에서 잠을 이루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이번에 떨어지면 끝이다."
벼랑 끝에 서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학원으로 가는 길, 나는 수없이 머릿속에서 면접 장면을 그려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디자인 회사 면접은 수백 번을 해봤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지만, 중국인 앞에서의 면접이어서 긴장감이 백 배였다.
학원에 들어서자, 나는 준비한 모든 문장과 자료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하지만 막상 면접관 앞에 서자, 긴장이 밀려와 말을 잇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나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준 학원은 시강을 먼저 제의받았다.
그렇게 나는 첫 수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수업 준비를 하며,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문득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학생들의 이름을 과일 이름으로 만든 목걸이를 준비해 주기로 했다.
사과, 수박, 오이 같은 친근한 이름들로 학생들을 불렀고, 이 새로운 시도에 학생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첫 수업이 시작되자, 긴장감은 여전했지만 나도 모르게 입을 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학생들 앞에 서서 말문을 열었을 때, 마치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의 환한 미소가 따뜻하게나를 반겼다.
그 순간,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 길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운명의 낯선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앞으로도 수많은 도전과 난관이 있을 테지만, 나는 그 첫걸음을 떼는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Epilogue
학생들의 이름을 과일로 부른 이유는 학생들의 중국이름을 편하게 부르기에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게 신의 한 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