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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묘사하기

소설쓰기 2주차

by 아타마리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불붙은 봉을 들고 수영장 물가 옆 모래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에워싼 어두운 밤의 공기, 수영장에 반사된 검은 하늘, 그리고 리조트를 등지고 앉아 이 광경을 응시하는 관객들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타원형 수영장의 왼쪽 편에는 띄엄띄엄 관객들이 서 있었고, 수영장 물가를 따라 360도를 돌면 더 많은 이들이 앉거나 서서 이 불의 향연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춤을 추는 남자들은 상의를 벗은 채 반바지 차림이었고, 여자들은 수영복과 같은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불붙은 봉은 끊임없이 연기를 피워 올렸다.


수영장 속 물은 거울처럼 고요했다. 그 푸른빛과 녹색빛의 반사는 수영장 바닥의 고유색과 검디검은 밤하늘, 모서리의 조명, 그리고 희디흰 달빛이 뒤섞여 만들어낸 오묘한 색이었다. 유독 밝아 보이는 한가운데에는 조명의 형광빛이 물에 반사되어 야자수 잎에 닿아 있었다. 그 야자수의 반영은 마치 낮 동안 머금었던 뜨거운 열을 물속에서 내뿜어내는 듯, 한 겹씩 멀어질수록 은은한 빛을 발산했다. 불빛은 수영장 가장자리로 올수록 옅어지며 굳어갔다.


가장자리는 모래와 맞닿아 있다. 물에 닿은 모래는 열을 흡수하는 대신 물기를 머금고 정적만을 비췄다. 말이 없는 가장자리의 모래는 식어버린 연인의 마음과 같아서, 물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아 웅크리고 달빛을 피하는 중이었다.


수영장의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낮 동안 해를 가리던 그늘막이 서 있었다. 흰 프레임에 걸친 회색 패브릭은 6시간 전, 따가운 태양광을 막아내느라 지쳐 더 짙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태양을 가리던 그 온도는 서늘한 달빛을 만나며 비로소 중화되어 갔다.


수영장 바깥은 다른 모래가 차지한다. 정적의 모래 대신, 열정의 모래가 누군가의 발 밑에서 여전히 열기를 뿜으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낮의 붉음을 머금은 밤의 갈색 모래는 불붙은 봉 아래 오렌지색으로 변모한다. 변한 모래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나는 변한 게 아니야. 당신이 여섯 시간 전을 기억해야 해."


이 모래를 밟은 다섯 사람의 발바닥은 희미한 무색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강렬한 불과 마주하며 끓어오르는 핵의 모래를 밟고 살아왔으리라. 발바닥은 그 모래에 닿는 매 순간 채도가 변할 것이다. 검었던 발바닥이 오늘의 무색이 되기까지 몇 번이나 용광로 같은 모래를 밟았을까. 그 횟수는 불붙은 봉을 쥔 손과 노란 도깨비불이 얼굴을 스친 횟수와 같았을까.


노란 불은 아마도 춤을 추고 있었을 것이다. 흔들리는 불의 잔상을 카메라가 포착하며 왜곡을 만들어 냈고, 빛 없는 밤하늘은 움직이는 불을 마음껏 담을 기회를 주었다. 한 사람은 불을 위아래로, 한 사람은 양옆으로, 또 다른 사람은 45도 각도로, 제각기 다른 불의 형상을 그려낸다. 불을 손에 쥔 자는 마법처럼 봉을 돌려댄다. 불은 원을 그리려다 멈춰선다. 3초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그란 모양을 찾을 수 있을것이다. 카메라는 순간과 남은 흔적만 미세하게 잡아낼 뿐이었다.


한 여자와 남자는 거친 모래 대신 누군가의 무릎과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다. 중심을 잡기 위해, 올라탄 이는 아래를 지탱하는 이의 굳은 피부에 발로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아래로 전달되는 그 힘은 피부를 타고 서서히 모래를 밟은 발까지 밀려 내려갔고, 모래는 반대편에서 그 힘을 힘껏 밀어낸다. 발바닥은 두 힘이 만나는 장소이다. 땅과의 접촉을 통해 힘이 이동하는 길을 내어준다. 무게를 버틴 자도, 위에 올라탄 자도 얼굴은 말이 없었다. 모래 또는 타인의 피부에 발을 최대한 깊게 붙이고, 손에 쥔 불봉은 공기를 갈랐다. 폭발하듯 움직이는 붉은 덩어리와 땅의 역동적인 힘을 버티는 그들의 눈, 코, 입은 조용할 뿐이었다. 세월은 그들을 조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길들여짐이 소리를 앗아가고 다문 입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들의 주변은 황금색 스포트라이트로 변해갔다. 가장 밝은 구의 중심부는 검은 종이 같은 밤하늘을 태우고, 불붙은 것처럼 허연 연기는 퍼져나갔다. 어둠은 뿌연 연기를 허락하지 않고 곧장 지워버린다. 깊은 하늘은 흔적을 지우개로 지우듯이 사라지게 했다. 이것은 아마도 밤하늘이 형광 금색의 향연을 고요히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금색 주변으로 검은색이 드리워진 붉은 그림자가 다가오지만, 빛은 그림자를 덮어간다. 빛과 그림자는 하나가 되어 색의 단층 경계를 지우고, 무엇이 빛이고 그림자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빛을 쥔 자들의 시선 끝에는 누가 있었을까. 카메라 앵글 너머, 빛을 절실히 원했던 누군가가 보였을 것이다. 앵글에 담기지 않은 그 누군가의 눈망울이 불이 밤공기 속에 영원하리라는 것을 말했을 것이다.


야자수의 큰 잎사귀는 검은 하늘에 맞닿아 있다. 짙푸르게 검은 하늘은 언뜻 사물을 지우려는 의도를 품고, 큰 잎사귀의 가장자리를 물들인다. '곧 어둠이 몰려올 거야.' 어둠은 목소리가 낮지만 또렷하다. 모든 것을 덮을 것 같았지만, 수영장도, 불을 쥔 사람도, 빛도 그림자도,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있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리조트 건물은 본래 흰색이었으리라. 색을 드러내지 않는 어두운 밤 공기 사이, 세 개의 층으로 나뉜 똑같은 방 몇몇에만 불이 켜졌다. 이곳은 새로운 것을 찾아 온 이들에게는 낯선 공간이고, 익숙한 것을 찾아 온 이들에게는 오래된 공간일지 모른다. 그래서 리조트의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자신의 세월을 비추는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비출 뿐이다.


수영장 앞의 커다란 태닝용 소파는 텅 비어있다. 낮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앉았을 자리였다. 막 신혼여행을 온 젊은 남녀가 에메랄드빛 수영장을 안주 삼아 칵테일을 마셨을지도 모른다. 돌도 되지 않은 아기가 엄마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을지도 모른다. 70번째 결혼을 기념하러 온 노부부가 서로의 희끗한 머리를 감싸고 마지막 붉은 해를 눈에 담았을지도 모른다.


소파는 말이 없지만, 그곳에 앉았던 이들의 온도는 여전하다. 젊은 여인의 샤넬 향수가, 갓 태어난 아기의 체취가, 노부부의 여문 살결의 향이 남아 있을 것이다. 비어있는 소파는 불을 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이 꺼지기 전에, 검은 바다 빛 밤하늘이 모든 것을 삼키기 전에, 관객들의 커다란 함성이 미지근하고 짭조름한 공기 속으로 퍼지기 전에, 이곳을 눈에 담은 모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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