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서부터 오는 행복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주이소!"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매번 들리는 소리다. 작은 공간의 카페이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키오스크 없이 사장님이 직접 주문을 받는다. 귀가 어두워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들의 메뉴 되묻는 소리가 쩌렁쩌렁 카페 안에 울린다. 사장님은 큰 목소리로 웃으며 다시 또박또박 대답해 주고 덕분에 주문을 완료한 어르신들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음료를 기다리신다. 이 사랑스러운 카페의 사장님은 나의 고등학교 친구인 가영이다.
가영이네 카페 주변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카페를 찾는 시간이 더 잦아졌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카페로 달려가 패션후르츠 에이드를 하나 주문한 후 자리에 앉는다.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가영이 옆에 가 일하면서 있었던 일들(대개 화나는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가영이는 딸기를 한 알 한 알 올리며 내 말에 대답해 주고 같이 화내준다. 속이 시원해진 나는 다시 자리로 들어가 앉아있으면 가영이는 쿠키를 하나 내어주면서 힘내라고 해준다. 일하면서 박살 난 인류애가 항상 가영이 덕분에 채워졌었다. 점심시간 전까진 금방이라도 이 거지 같은 회사 퇴사해 버릴까 하다가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거짓말처럼 조금만 더 버텨 보자가 된다.
매일매일 점심시간을 가영이네 카페에서 보내다 보니 손님이 없을 땐 같이 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가영이 덕에 카페 이곳저곳에는 이름 모를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햇빛이 들어올 땐 카페가 은은한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걸 보며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이라며 스킨답서스와 아단소니를 잘라 한 개씩 주며 키우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고 덕분에 식물만 키우면 한 달 만에 죽여 버렸던 내가 10개월 동안 잘 키우고 있는 식물이 생겼다. 사랑이 사랑을 낳은 결과라고 멋대로 판단한 후 아침 기상 후 사랑스럽게 초록빛을 뿜어내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가영 사장님의 카페 한쪽에는 여러 장르의 책들로 가득 찬 책꽂이가 있다. 나에겐 점심시간을, 정신건강을 책임져주는 나만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나는 공간에서 나누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수다 소리가 거슬리지 않는, 포근하고 정겨운 도서관.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 다 못 읽고 나가야만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일 또 와야지 다짐하며 카페를 나선다. 가끔은 결말이 너무 궁금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런 나를 본 가영이는 들고 가서 읽고 다시 갖다 놓으라 한다. 그 말을 듣곤 해실해실 웃으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창문을 반쯤 열고 이불을 덮은 후 노란 조명을 켜고 책을 마저 읽는다.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완벽한 루틴이다.
하루는 휴일 아침 일찍 카페에 가 원고작업을 하던 날이었다. 시간은 부족한데 작업해야 할 글은 많아 앉자마자 부랴부랴 노트북을 켜던 중이었고 가영이는 커피를 건네주며 내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했다.
"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너무 뜬금없나, 나 친구들한테 이런 질문하는 거 좋아하거든."
평소에 행복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살지 않는 터라 질문을 듣고 잠시 벙쪄있었다. 금방까지 바쁘게 허둥지둥 짐을 풀던 내게 행복이란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잠시 하곤 의자에 앉으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했다.
일상을 일상답게 보낼 수 있는 것.
큰 고민이나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것.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해할 줄 아는 것.
생각해 보면 기본적인 일들, 행복은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뜬 후 두 다리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일,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잠시 통장 잔고를 생각하다 충동적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일, 친구들에게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시원하게 속 썩인 사람 욕 한 마디 해주는 일들. 작지만 생각해 보면 행복인 것들이다.
행복의 기준치를 낮춘 후 행복은 별 거 아니라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 삶은 여유로워진다. 아침부터 행복이라는 단어를 상기시켜 준 가영이는 대답을 듣더니 귀여운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나도 서미 덕분에 오늘이 행복해, 우리 둘 다 행복으로 하루 시작하네."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다.
사랑과 행복 가득한 가영사장님 덕에 카페는 항상 내 기억 속에서 푸른빛 비눗방울처럼 둥실둥실 떠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