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활용 담당이다. 우리집 식구가 모두 5명이고, 나만 유일한 남자이기 때문에 가사 분담 업무 중 가장 적절한 일을 맡았다고 본다. 업무량도 그 정도면 적당하다. 나머지 설거지, 빨래, 청소기 돌리기, 화장실 청소 등이 아내와 세 딸의 업무다. 다들 불만 없이 자기 일은 충실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 청소담당인 큰딸과 둘째가 종종 아빠가 화장실 쓰는 매너가 좋지 않다며 주의를 준다. 매주 일요일에는 테니스 운동을 마치고 저녁 8시 40분쯤 집에 도착해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이때는 내가 먼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야 아내의 화를 면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집안일과 막내 재수생 뒷바라지로 힘들었는데, 당신마저 늦게 와서 또 일거리를 만드냐고?”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해당이 없지만, 결혼한 사람들은 사실 일터가 2개인 셈이다. 직장과 가정. 아이가 있으면 직장보다 가정이 더 힘든 일터가 되기도 한다. 내가 젊었을 때 가끔 아이보는 것이 힘들어 주말에 직장으로 피신 나오는 직원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여하튼 우리는 직장에서의 조직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일정한 역할이 있다. 자식으로서의 역할, 아내와 남편으로서의 역할, 부모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역할에 대해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물론 부모님도, 그리고 어떤 사회 선배도 이런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없다. 그래서 대개 우리는 무지한 채로 가정생활을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스위스 출신 소설가이자 철학자, 교육자인 알랭드보통이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8년 런던에 「인생 학교(The School of Life)」를 만들었다. 이후 서울, 멜버른, 상파울루, 이스탄불 등 전 세계에 분교를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인생학교에서는 ‘차분함을 유지하는 법’,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일상적인 삶에서의 문제를 다룬다. 주요 교과목이 돈, 일, 성, 정신, 세상, 시간 등이다.
최근 어느 TV 프로에서 서울 인생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있는 방송인 손미나씨가 인생학교를 운영하게 된 이유에 대해 “어른들에게도 선생님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렇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정작 제대로 아는 게 별로 없다. 내가 만약 인생학교를 운영한다면, 위 인생학교의 교과목에 제대로 된 부모되기, 부부되기, 친구되기, 자식되기, 어른되기 과목을 추가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학교가 전국 방방곡곡에 많이 많이 세워지면 좋겠다. 정부가 나서도 될 성 싶은데....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아내의 강요로 「아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여성민우회에서 아빠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짜리 수업을 진행하였다. 대부분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초보 아빠들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강의의 주 내용은 ‘자녀들과 놀아주기’가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놀기’ 그리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집안일을 같이 분담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수업을 듣고 말은 다 이해하였으나, 실제로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했는지는 솔직히 아직도 의문이다.
나는 딸 셋을 키웠다. 아들이라는 놈은 없었다. 그래서 로봇이나 자동차, 총 등의 장난감은 필요 없었다. 대신 예쁜 인형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굳이 아빠를 찾지는 않았다. 아빠가 인형놀이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이 덜 들었다.
딸들이 쪼그만 애일 때는 가끔 의사 환자 놀이를 했다. 내가 환자가 되어, 아이가 주사를 놓아주면 아픈게 낫는 연기를 해야 한다. 피곤할 때 이 놀이가 최고다. 아이는 주사 맞고 자버리는 아빠를 연신 깨운다. 아들 녀석과 캐치볼, 공차기 등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 아들 키우는 아빠에 비하면 땀도 덜 흘렸다. 목욕탕에서 아들 때를 밀어줘야 하는 수고로움도 나에게는 없었다. 모든 게 수월한 편이었다. 아내는 힘들었겠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어서....
딸들이 어릴 때 나는 동화책 읽어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의 아토피 문제로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기도 했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하도록 하는 게 좋다는 생각도 있었다. 세 살 터울인 세 딸에게 대물림으로 읽어줘서 책이 너덜거리기까지 했다. 지금도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라는 명저가 생각난다.
딸들이 어느 정도 커서는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즐겨 했다. 딸들에게는 안성맞춤인 놀이였다. 소근육도 많이 발달되었을 것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가족여행 가서 딸 셋과 공기놀이 시합을 하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무조건 내가 이겼었는데, 지금은 딸들이 더 잘한다.
최근에는 딸들과 1인당 천 원 정도씩 걸고 「루미큐브 게임」을 한다. 상당히 머리 쓰는 놀이이다. 이 게임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조커로 장난도 치고, 나름 샤프한 머리를 굴려서 내가 이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딸 셋이 번갈아 가면서 판돈을 다 따간다. 그래도 가족이 다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하는 게임이라 즐겁다. 가끔은 아내가 우승상금을 걸면서 아이들을 꼬시기도 한다.
우리 본가는 명절 때, 형제들 가족 전체가 모여 윷놀이를 한다. 보통 2사람 씩 팀을 이루고, 3팀이나 4팀이 한꺼번에 다 덤벼서 게임을 한다. 우리가 하는 윷놀이는 일반적인 윷놀이와 판이하게 다르다. 일단 윷 4개 중 2개에 ‘빽’ 표시를 한다. 그러면 심심치 않게 ‘빽 도’나 ‘빽 개’가 나온다. 뒤에서 잡으러 가다가 ‘빽’에 걸려 죽기도 한다. 시작할 때 ‘도’나 ‘개’ 자리에 있다가 빽이 나오면 가장 쉽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윷판도 남다르다. 일단 제일 빠른 길인 모, 걸, 윷으로 나오는 길목에 모, 걸, 개 자리가 폭탄이다. 그 자리에 걸리면 죽는다. 또, 어렵게 삥 돌아서 나오기 직전 자리에 걸리면 ‘다시 돌아가시오’ 해서 시작 ‘도’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중간쯤에 ‘건너가시오’ 라는 출렁다리도 만들어져 있다. 이 윷놀이는 기상천외하다. 변화무쌍하다. 하다 보면 배꼽 빠진다. 우리 가족은 종종 새벽까지 팀당 5천 원이나 만 원씩 걸고 이 게임을 즐긴다.
온 가족이 모여 웃고 즐기기에 이 윷놀이만 한 게임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아이들도 매우 좋아한다. 참고로 빽을 하나 더 그리는 것은 막내딸이 어릴 때 제안한 것이고, 윷판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나의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윷놀이로 특허를 내려고 시도했으나, 기존 것을 일부 변형하는 것은 특허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이 윷놀이를 전국의 초등학교에 보급해서, 아이들에게 핸드폰 대신에 즐거운 놀이 문화를 전파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이 글을 교육청 관계자분께서 읽으신다면, 저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아래는 실제 우리집에서 노는 윷놀이 사진이다. 가운데 윷은 특수 개발한 콩윷이다. 던지기 편하고 앞면 뒷면 다툼이 거의 없다. 구멍이 세 개인게 두 개가 있고, 이 윷들이 빽 역할을 한다)
나는 아이들과 이렇게 놀았고, 여전히 이렇게 놀고 있다. 아이들이 다 컸지만 아직도 종종 천진난만하게 아빠 엄마랑 게임을 같이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랑 같이 놀이를 해 온 것이 아직도 몸에 배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딸들이라서 그런지 다 컸어도 아빠랑 아직은 대화를 하면서 산다. 그래서 집이 화목한 편이다. 가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인사만 하고 바로 문 닫고 들어가 버리는 아들 녀석에게 서운하다는 동료들의 얘기를 듣는다. 그 심정이 이해는 되면서도 ‘아들이 어릴 때 아빠가 같이 놀았는지(최소한 놀아줬는지) 되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빠는 아이들의 만만한 놀이 상대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아이들이 어릴 때 아빠가 좋은 먹잇감이자 놀잇감이라는 것을 체득하게 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