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남자에게 친구란 무엇인가?
스스럼없이 포옹하거나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사람
이 꼭지만큼은 여성분들은 스킵하기를 권한다.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타당치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어서다.
여성에게도 당연히 친구가 있지만, 내가 여성으로 살아보지를 않았기에 여성에게 친구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남자로 살면서 느낀 친구가 어떤 의미인지를 적어보는 것이기에, 자칫 여성분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남성이란 동물들은 어떤지를 간접적으로 알고 싶으신 여성분이라면 읽어보는 것도 무방하리라.
이 꼭지 제목을 달면서, 친구라고 할까? 벗이라고 할까? 살짝 고민했다. 친구로 결정했다. 왠지 벗은 예전에 쓰던 말이기도 하고, 고상하고 정신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 요즘 시대에 꼭 들어맞는 말 같지는 않아서다.
나는 친구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우정과 의리. 영화 「친구 1,2」에서 우리는 우정과 의리 그리고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배신과 그로 인한 죽임과 고통이라는 감정을 진하게 볼 수 있었다. 사실 난 별로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의리도 그렇고, 깡패 사이에서의 의리를 우리가 장려할 만한 것이라고 오인하게 만드는 크나큰 부작용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난 친구 사이의 잔잔한 우정이 좋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호식과 인권의 우정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진정한 우정의 한 단면이다. 드라마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오열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남자들끼리 뭐 저렇게까지,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아니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그런 가슴 저린 우정을 보여 준다.
시인 구상과 화가 이중섭의 천도복숭아 우정 이야기도 유명하다. (인터넷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으니, 여기서 내용은 생략한다)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으면, 인생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라는 말이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려보라. 나에게 그런 친구 하나 있는지? 언제든 전화해도 반갑게 맞아주고, 내가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와 줄 친구 말이다. 그가 돈이 있건 없건, 지위가 높건 낮건, 내가 어려울 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건 없건 그건 중요치 않다. 내가 그 친구를 생각하면 조용히 미소 지어지면 그게 바로 친구다. 오래 안 보면 보고 싶고, 그 친구는 요즘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면 친구다. 친구가 밥값이 없어서 돈을 못 내더라도 기꺼이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 내가 요즘 뭘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얘기해주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나는 주변에서 이런 사람이 가장 안타깝다.
첫째가 가족이 없는 사람이다. 부모형제 그리고 배우자 또는 자식이 없는 사람, 천애 고아. 이 세상에 내가 사랑하는, 내가 사랑해 줄,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런데 이건 내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일 수도 있다.
두 번째가 진정한 친구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다시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면, 그런 경우가 생겼을 때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불쌍하다. 허나 그것은 어쩌면 내가 자초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잘 나갈 때는 친구의 중요성을 알기 어렵다. 모를 수 있다. 내 곁에 항상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를 좋아해 주고 같이 기뻐해 주고 하는 사람들이 내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늘 곁에 있으니....
그러나 내가 뜻하지 않게 견디기 힘든 억울하거나 슬픈 일을 당했다 또는 내가 잘못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는 경우가 다르다. 친구가 아니면 곁에 누가 오려하지 않는다.
나 혼자 해결하기에는 벅차서 누군가 최소한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 편을 들어주고, 나를 응원해 줄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전화해서 “친구야 나 이런 일이 있는데....”라고 하면, 만나서 소주 한잔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취한 나의 등을 두드려 주고 “다 잘 될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니 잘못이 아니야. 오늘은 일찍 들어가 자라”라고 말하며, 가는 길에 어깨동무해 주는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나에게도 엄청 힘든 때가 있었다. 내가 사회적경제과장 시절에 일 욕심을 부린 탓에, 일이 내 맘처럼 되지 않을 때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와, 사무실에 약 한 달여간 출근을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주말마다 집으로 찾아왔다. 초기에는 혼자서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나를 데리고 북한산에 가고, 시내로 데려가서 밥도 사주고, 무엇보다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 없어”라고 위로해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물론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도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편하게 해 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이럴 땐 가족의 위로보다는 마음을 터놓는 친구의 위로가 더 위안이 된다. 비슷한 경험치를 가진 같은 사회인 직장인으로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빠르니까. 또한 나의 입장에서 가족은 가장으로서 내가 챙겨야 하는 의무가 있는 대상이지, 나를 챙겨줄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당시 가족과 친구들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무실 동료들의 넓은 이해로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사무실에 출근을 했고, 서서히 우울증을 극복해 나갔다. 가장 힘들 때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의 우울증세는 훨씬 길게 이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괜히 요즘 젊은이들이 혹시나 사는 게 바빠서, 친구 사귈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결과적으로 친구 없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내 염려가 근거 없는 편견이나 선입견이길 바라면서도, 아직도 혹시나 우리 때랑 달라서 그럴 여유가 없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면 참고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결론적으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꼭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나부터 마음을 터놓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지금 친구가 있다면 잘 간직해야 한다. 친구도 사람이니 내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그 친구도 마음이 점점 멀어질 수 있다.(그렇다고 진짜 멀어지면 그건 친구가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지금 주변에 이래저래 지인들은 많은데, 막상 무슨 일이 있을 때 ‘누구에게 전화하면 되겠다’ 싶은 친구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럼 친구가 없는 거다. 물론 ‘나는 누구에게 친구인가?’도 동시에 생각해 볼 일이다.
친구라는 존재가 평소에나 무슨 상황이 발생했을 때나 정신적으로 주는 위안과 든든함은 돈이나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 종교인에게는 늘 자신을 의탁할 신이 존재하지만, 비종교인은 그나마 없다. 어쩌면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보이지 않는 분보다 보이는 친구가 현실적으로는 좀 더 보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친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가만히 있는데 어떤 친구가 “나 너랑 친구 할래!”라고 오지는 않는다. 나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 시간과 금전과 나의 진심 어린 마음을 투자해야 한다.
특히 내가 친구 하고 싶은 그 사람이 어려울 때 말이다. 같이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불행은 누가 진정한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 형님의 쪽집게 가르침도 있다.
ㆍ친구는 꼭 나이가 같아야 하거나, 성별이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뻘 무슨 삼촌뻘 정도는 어렵겠지만, ‘객지 밥 10년이면 대충 5년 내외로는 친구 한다’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꼭 친구 아니어도 좋다. 친구 같은 형이나 친구 같은 동생이나, 친구 같은 누나도 좋다. 나도 그 친구도 어려울 때 서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간의 나이 차이나 성별의 다름은 문제가 안 될 것이다.
나는 솔직히 친구가 많다. 고딩 친구들도 전체로 만나는 친구 그리고 그룹별로 따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도 성향이 있으니까, 같이 술을 좋아하는 친구,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 친구들끼리의 진지한 대화나 시시한 농담을 좋아하는 친구 등 제각각이다.
그리고 직장이나 사회에서 만난 동료 지인들도 많다. 동생들도 있지만, 주로 친구 같은 형님, 누나들이 참 많다. 그동안 내가 어려울 때마다 현실적인 도움과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다.
나 또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말이라도, 소주 한 잔이라도,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그리고 평소에도 가끔씩 안부를 묻는다. “잘 있나고, 별일 없냐고” 그저 간단한 전화 통화나 카톡일 뿐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잠시나마 미소 짓는다.
내가 위에서 얘기한 그런 「혹시 외로운(?) 젊은이」라면 내가 추천하는 방법 한 가지만 실천해 보기를 권한다.
내가 친구하고 싶은 사람 명단을 만들고, 그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는 것이다.
매일 1명이든 2명이든 돌아가면서 잠깐이라도 서로를 공유한다. 그 대상이 많을 필요는 없다. 꼭 하고 싶은 사람 몇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교분을 이어간다. 물론 중간에 시큰둥하는 사람이 있으면 명단에서 지우면 된다. 굳이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므로....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좋아진다. 때론 직접 만나고 싶어 진다. 같이 무언가 공통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더욱 좋다. 그러다 그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진심으로 곁에 있어 준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좋은 핑계가 아니다. 하루에 단 5분이나 10분의 짬을 내어, 내가 살면서 웃음과 눈물을 같이 하고,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을 만들 수 있다면 해 볼 만하지 않는가?
지금 당장 친구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단 명단부터 작성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