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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 Nov 21. 2024

21. 이것이 「적극 행정」이다(1)

신명(神明)과 소명(召命)

   

지방공무원법에 따르면, “적극행정이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마디로 소극행정의 반대다. 공무원이 업무를 소극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관료제가 생긴 이래 오늘날까지 이 문제는 문제가 되어 왔다.      


20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 겸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가 역사상 관료제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연구하였다. 그는 관료제를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관료제는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기본 틀이며, 이상형이라고도 이야기했다. 오늘날에도 정부기관, 대기업, 민간단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은 관료제 형태를 가진다.     


막스 베버는 관료제의 특징과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먼저 관료제의 특징은 1. 계층과 구조를 갖는다 2. 규칙과 절차에 따라 운영된다 3. 업무의 전문화를 강조한다 4. 비개인성을 원칙으로 한다 5. 구성원의 직업 안정성을 근간으로 한다.     

한편 관료제의 장점은 효율성, 공정성, 전문성, 안정성이다. 모두 위의 특징이 잘 발현될 때 결과적으로 이루어지는 좋은 점들이다.     


이에 비해 단점은 경직성, 비효율성, 창의성 부족, 관료주의(조직의 유연성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로 꼽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의 관료제는 어떤 모습일까? 장점이 클까? 단점이 더 부각되고 있을까?     


나는 서울시 경력 28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점점 더 단점이  커지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관료제 자체의 내재된 속성이기도 하고, 단체장 즉 정치인이 행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적인 측면도 있다. 점점 더 행정이 정치에 종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조직이 상대적으로 작은 시··구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각한 게 현실이다.     


또 하나,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런 풍조를 더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젊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개인적인 성장배경과 아울러 공무원을 대하는 이 사회 전체의 잘못된 시각과 대우로 공무원의 잠재력을 앗아간 게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적극 행정은 신명이 나야 가능하다. 신바람이 없는데 그 무슨 이유로 적극적으로 일을 하겠는가? 더구나 윗사람들이 대부분 단체장 또는 그 주위의 정무직이라는 사람들에게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직원 수준에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느냐 말이다. 그저 나한테 아무 일도 없기를,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게 전반적인 흐름으로 보인다.     


뭔가 일을 제대로 하고 바꾸려고 하면, 부딪히는 게 많다. 먼저 윗사람이 그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까지 골치 아프게 하려고 하느냐?”라고 오히려 질책할 수도 있다. 우리 팀이나 부서는 해보려고 하는데 관련된 다른 부서나 팀에서 그건 안 된다고 잘라버릴 수도 있다. 소위 부서간 칸막이다. 그 일과 관련된 부서장의 노력이나 협조가 필요한데 그분은 온통 윗분이 시킨 다른 일에만 관심이 있고, 이 일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뚫고 나갈 수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직원이나 팀 또는 부서 단위로 소위 핑퐁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어 고양이 파크이라는 새로운 업무가 생겼다고 해보자. 한쪽은 고양이니깐 동물보호과 일이라고 하고, 그쪽에서는 파크니까 공원과 일이라고 한다. 서로 자기 일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귀찮으니까.... 결국 윗사람이 누구 일이라고 조정해준다. 그래도 그 일은 진행이 잘 안 된다. 하기 싫은 일을 떠맡았고, 여전히 내일이라는 생각이 안 드니까....     

이러저러한 이유들이 우리 공무원들의 적극 행정을 방해한다.        


한의학에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는 원리가 있다. 물은 위로 불은 아래로. 우리 몸은 차가운 기운을 올라가게 하고, 뜨거운 기운은 내려가게 해야 건강이 잘 유지된다는 뜻이다. 몸에 좋다는 반신욕이 이 수승화강의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이 말을 지금의 우리 조직에 대입하면, 직원들의 에너지는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위의 뜨거운 에너지만 밑으로 내려온다고 비유할 수 있다. 유식한(?) 말로 Bottom Up은 어렵고, Top Down만 강하게 있다는 얘기다. 조직이 건강할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고치려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시에서는 시장님께서 이런 역할을 하신다. 창의행정과 적극행정을 강조하고 계신다. 오세훈 시장님께서 얼마 전 직원 정례조례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다. “미리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두루 생각하는 세 가지 행정마인드가 감동·공감의 핵심이다. 공무원의 적극적인 시도와 새로운 도전으로 행정서비스를 개선할 것     


직원들이 이 말을 듣고 뭐라고 생각하였을까? 자못 궁금하다. ‘, 나도 시장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한 직원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울리지 않는 메아리처럼 공허하다는 느낌도 있다. 실질이 없다.     


한편, 중앙정부(구체적으로는 인사혁신처)에서 전 정부기관이 적극행정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강한 지시를 몇 해 전부터 내리고 있다. 사전컨설팅 제도도 이것의 일환이다.      


이에 내가 몸 담고 있는 서울시에서도 사전컨설팅과 적극행정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다. 사전컨설팅으로 안 풀리던 문제도 쉽게 해결해 주고, 적극행정에 대해 심사를 통하여 표창과 함께 공무원 개인에게는 특별승급, 성과금, 특별휴가 등의 인센티브로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가지, 특별승진은 왜 없는지 아쉽다)     


처음 우리시에 적극행정을 도입할 때 있었던 웃지 못할 헤프닝을  소개 안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의 참 모습이니까....     


당시 위에서 이야기한 고양이 파크의 예처럼 적극행정도 기존 어느 부서에 딱 속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신규업무인데다가, 일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누가 이 업무를 담당할 것이냐를 놓고 상당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때 나는  감사과장을 맡고 있었다.      


그 당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17개 시·도 가운데 10여 개 이상에서 기획실이 적극행정을 맡고 있었다. 당연하다. 시 전체를 총괄하는 부서에서 적극행정을 지휘해야 맞는 것이다. 관련 부서 과장들끼리의 열띤 토론에서는 결론이 안 나고, 결국 관련된 세 분의 실장 국장님들(기획조정실장, 행정국장, 감사위원장)이 모여서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시는 결국 감사위원회에서 이를 맡게 되었다. 당시 세분 중에 가장 힘이 없으므로... 표면적으로는 전부터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적극행정 면책제도는 적극적으로 행정을 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면 그 잘못을 면해줄 수 있다는 것이고, 그야말로 적극행정의 최말단에서 시행하는 제도에 불과하다. 적극행정은 말 그대로 앞단에서 이끌고 나아가는 것이지, 뒷단에서 정리해주는 것이 아니다. 힘없는 게 죄인 거지. 지금도 그때 정해진 대로 서울시는 적극행정을 감사위원회에서 총괄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의 자료에 의하면 적극행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일하는 직원들의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각자가 자기 일하기 바쁜 탓이다. 다소 서론이 길었는데, 그래서 이 글은 요즘 젊은 직원들이 적극행정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실전에서 적용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이해해 주기 바란다. 2편에서 실제 예를 들어 이야기하겠다.     


적극행정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직장 분위기가 신명나야 한다. 거기에 각 개인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적극행정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신명(神明)과 소명(召命)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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