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하고 하는 후회', '안 하고 하는 후회'
죽기 아니면 까무라 치기
방송인 김어준씨가 2010년 어느 청춘 페스티벌에서 「지금 청춘에게 뭐가 필요한가」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에서 김어준씨는 청춘들에게 언제 행복한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누군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해왔던 습관으로, 막상 독립된 청춘이 되어서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부모든 주변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분간해 내지 못한다. 우리는 보통 내가 진짜로 뭐가 되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를 정확하게 모른다. 나하고 1대1로 만나서 내가 정말로 뭘 하고 싶은지를 대화해라. 자기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어라. 자기가 들뜨고 행복한 일을 찾아라. 그 다음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실패했을 때 얼마나 타격이 큰가?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 일을 당장 하자.”
당장 그 일을 한 예로, 김어준씨는 본인이 젊은 시절 유럽에 배낭여행 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믿자. 김어준이 대놓고 한 말이니..). 어느 날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근처 길을 걷다가, 양복점 쇼윈도우에 걸려있는 멋진 양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사 입은 이야기를 한다. 배낭여행에 아무 상관도 쓸모도 없는데... 홀린 듯이 양복을 입어 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계획했던 나머지 2달간의 여행에 쓸 경비 전액 120만원 정도를 주고 명품 보스 양복을 입고 나왔다고 한다. 거울에 비친, 자기도 처음 보는 멋진 사람(자기 자신)을 거기에 두고 올 수가 없었단다.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란다. 고민했지만, 나중에 돈 벌어서 양복을 사 입는다 해도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을 대체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다행히 그 양복 덕에 돈을 벌어서 배낭여행을 잘 마쳤다는 해피엔딩이다. 물론 지극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우리 인생을 이렇게 얘기한다. 인생은 B와 D사이 C의 문제라고. 「Birth와 Death 사이에서 Choice의 문제다」라는 말이다.
우리네 인생을 통틀어 출생과 죽음 두 가지만큼은 유이(有二)하게 우리가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살면서 매 순간 선택을 한다. 또는 해야 한다. 이쪽 길로 갈지? 저쪽 길로 갈지?, 아니면 하기 안 하기.... 선택은 늘 어렵다. 대표적으로 노름은 선택에 따라 결과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어쩌다 잘 선택하면 대박 나지만, 대부분은 쪽박으로 끝난다. 그리고 후회한다. 하지 말 걸, 다른 걸 선택했으면 ... ㅎㅎ 소용 없다.
그럼 선택은 왜 하는가? 자세히 보면, 선택은 한정된 자원이나 돈이나 시간이나 타인의 인정이나 뭐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행위이다. 보다 좋은 것을, 좀 더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때로는 당장은 별로 득이 안 되지만 나중에 득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그렇게 하기로 또는 안 하기로 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다. 더구나 현실은 변화무쌍하다. 사람 마음도 너도 나도 수시로 변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이것이 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지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현자는 “본인에게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려라” 라고 말한다. 선택을 최소화하라는 얘기다. 선택이 후회를 남길 수 있으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로 후회를 한다. 집사람 말을 들을 걸, 2차를 가지 말 걸, 진작 운동을 시작할 걸, 담배를 끊었어야 했는데, 그때 여행을 갈 걸,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등등...
어느 조사에서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들을 대상으로 살아올 걸 되돌아볼 때 어느 것이 가장 후회되는지를 물어보니, 다음의 다섯 가지를 가장 후회했다고 한다.
1)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왔다.
2) 직장 일에 너무 바빠서 가족과 친구에게 소홀했다.
3) 원만한 관계를 위해 내 진심을 표현하지 못했다.
4) 나의 행복을 위한 시간 배분이 적었다.
5)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을 못했다.
내가 시한부 인생은 아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체로 공감이 간다.
후회는 하고 하는 후회와 하지 않고 하는 후회가 있다. 위 다섯 가지 예를 보면, 1번은 하고 하는 후회고, 나머지는 안 하고 하는 후회이다.
대체로 하고 하는 후회는 여운이 짧다. 그에 비해 안 하고 하는 후회는 오래도록 남는다. 위에서 김어준씨는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닥치는 대로 해라”라고 조언해 준다. 해보라는 얘기다.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또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안 해보고는 알 수가 없다. 찍어 먹어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다.(물론 보기만 해도 아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지만...)
생각해 보라. 내가 하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안 하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꽤 많다. 중·고딩 때 공부 쫌 더 열심히 할 걸, 대학 들어갈 때 다른 전공을 선택할 걸, 대학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해보다가 공무원으로 들어올 걸, 공무원 들어와서 직장에서 주는 해외유학이나 연수를 다녀올 걸,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과 연락을 자주 못 해서 친구들이랑 멀어져 버림, 사귀던 사람에게 더 잘해줄 걸, 그 때(헤어질 때) 한 번은 더 내 진심을 표현할 걸, 사람들이 하자고 할 때 같이 운동할 걸, 정년 이후를 대비해서 자격증을 따 놓을 걸.... 등등
반면에 하고 나서 후회하는 일도 많다. 주식 투자나 돈을 빌려줘서 경제적 손실을 입기도 하고, 과도한 음주로 몸이 상하기도 하고, 여러사람과의 인간관계로 관계가 복잡해지고, 휴식이 필요한데도 기어이 운동을 빡쎄게 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기도 하고, 괜히 폼 잡고 술값을 냈더니 괜히 냈나 싶기도 하고, 그때 사귀던 친구(애인)와 사소한 말다툼 끝에 헤어지고, 상사나 동료 또는 부하직원에게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말할 걸.... 등등
여러분은 어떤 후회가 있는지 한 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생활 주변의 사소한 것도 있을 수 있고, 두고 두고 후회되는 나름 큰 일도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면 후회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하고 하는 후회보다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가 오래 가고 미련이 많이 남는다.
하지 않아서 남는 후회는 사실 눈에 보이는 큰 피해는 적다. 한 게 없으니까. 그에 비해, 하고 하는 후회는 당장 뭔가 손실이 있다. 저질렀으니까. 경제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는 주로 하고 나서 후회하는 편이다. 일을 저지른다는 얘기다.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성격 탓이다. 나는 지금도 다음 두 가지를 가장 크게 후회한다.
한가지는 사려 깊지 못하고 성급해서 생겼다. 엄청난 돈을 사기당한 것이다. 그것도 내가 가진 현찰이 아니라 다 은행 빚으로.... 돈 욕심이 앞을 가려 아내 몰래 저질렀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 다시는 같은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다음은 참지 못해서 생겼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주요 고비고비마다 윗사람에게 대들었다. 그 한순간 한순간을 참지 못하고.... 덕분에 네 번의 원치 않는 좌천발령을 받았고, 승진도 많이 늦어졌다. 후회스럽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다. 참는 게 가능한지는 솔직히 아직도 자신은 없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나는 상대적으로 하지 않고 하는 후회는 적다.
50대 초반에 헬스클럽 1년 등록해놓고 두어 번 가고 못갔다. 괜히 끊어 가지고...
담배를 여직 핀다. 30이 다 되어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끊었다. 이틀을 못 넘기고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서 3일째 다시 피었다. 작심 이틀. 그래서 결심했다. ‘앞으론 나 스스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하리라’. 그리곤 여태 핀다.
아내 말을 듣지 않은 건 정말 후회된다. 남자의 자존심도 가장의 권위도 아닌데... 매번 아내한테 혼나면서 ‘아내가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확인했던 거 같다.
자 이제 후회 없이 글을 마치자.
후회 없이 사는 인생은 없다. 그렇다면, 더구나 우리가 청춘이라면 일을 저지르자. 내 마음이 하고 싶다고 얘기하면 일단 하는 거다. 그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거나 남들한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하자!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서 후회하자. 그래야 나이 들어서 후회가 적다. 해 봤으니까, 그게 뭔지 아니까.... 다음에 안 하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지금 얘기하자.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당장 전화해서 만나자고 말하자. 좋아하고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시도해 보자. 시간이 지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저축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 더해가는 것이란다.
전과 똑같이 행동해서는 변하는 것이 없다.
지금 당장 해보자.
까이꺼 죽기 아니면 까무라 치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