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나는 어느 자리까지 올라갈 것인가?
공무원의 꽃 승진을 말하다
공무원의 꽃은 승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월급도 적고, 최근에는 사회적 인식마저 좋은 편이 아니니, 승진으로 보상받을 수밖에... 실제로 승진을 해야 월급도 차이 나게 오르고, 남들에게 명함도 조금은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다. 그래서 그나마 승진이 공무원들에게 현타를 벗어나게 해 주는 열쇠이자 희망이다.
공무원으로 입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각각 9급, 7급, 5급(소위 고시) 시험을 봐서 일반직 공무원이 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참고로 일반직 공무원은 9급부터 1급까지 있다). 다음은 임기제(계약직)으로 채용되는 것인데, 일반직 공무원이 수행하기 힘든 업무에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근무기간을 정해 뽑는다. 정무직은 선거로 취임하거나 정치적으로 국회 또는 지방의회의 동의로 임명되는 사람들이다. 이 밖에도 법률이 정한 특정한 지위에 해당자를 뽑는 별정직이 있다.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일반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이야기한다.
9급이든 7급이든 5급이든 들어오면서부터 직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빨리 승진해서 더 높은 자리에서 좀 더 편하게 일하고 월급은 더 많이 받고 하는 것을 원한다.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원하지 않는다면 바보지. 특히 중간 관리자를 포함하여 관리자로 승진하면 직접 몸으로 안 때워도 되고, 상대적으로 아랫사람에게 지시할 수도 있고, 권위도 서고 등등 더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공무원에게 승진은 희망이고 탈출구이다.
나는 어디까지 승진할 수 있을까? 공무원으로 들어온 후에 누구든지 이런 생각 내지는 희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원한 답을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럼 과연 승진하면 행복해질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 누구든 불행해지려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행복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그 경로가 다양하다. 돈이 많거나, 명예나 지위가 높거나, 가정이 평안하고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하거나, 건강하거나, 일상이 즐겁거나, 나는 그냥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느끼거나 등등.
내 생각으론, 행복은 적극적 행복과 소극적 행복으로 나뉜다. 적극적 행복은 부와 명예, 학벌, 권력, 권위 등을 가졌을 때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껴서 행복한 경우다. 소극적 행복은 아프거나 스트레스나 불안감 등의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다. 소확행이 그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적극적 행복을 중요시하고, 어떤 사람은 소극적 행복을 중요시할 것이다. 보통 지위가 높은 사람은 적극적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은 그런 희귀 물건들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소극적 행복만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우리네 공무원의 실제 일상생활과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내 주변의 소위 국장급 이상 중에 “요즘 사는 게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자신있게 “행복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힘들어 죽겠어요”가 마치 정답인 것처럼 얘기한다. 나랑 친한 어느 부구청장들이 흔히 하는 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어떨 때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내가 두 개 있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국장급 이상이 되면, 회의로 시작해서 수많은 결재, 보고, 보고서 검토, 시장님께 보고 준비, 언론 및 시의회와의 문제 해결 등등으로 하루가 바쁘다. 비단 국장급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승진하려고 하는 과장급, 팀장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후배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도 요즘은 대답이 대체로 비슷하다. “뭐 사는게 재밌어서 사나요? 그냥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죠. 선배님도 아시잖아요. 요즘 우리시 빡쎈거. 피곤해서 시간 나면 자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람은 적극적 행복은 최대로 하고,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만드는 요소는 최소한일 때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맘대로 되나? 행복 총량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나는 적극적 행복과 소극적 행복 간에는 상승작용 보다는 보통 상쇄관계가 성립한다고 본다. 적극이 많으면 소극이 적고, 소극이 많으면 적극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나는 5급으로 시작하여 당연히 부시장까지 간다고 생각했었다. 해서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를 원했다. 항상 머릿속에서 업무가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들과 정말 오랜만에 며칠 휴가를 떠나서도 항상 직장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모든 게 승진과 연관되었다.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여유가 없이, 계절이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모른 채 한해 한해를 보냈다. 부질없이...
특히 사무관 고참 때는 서기관 승진을 위해, 서기관 고참 때는 국장 승진을 위해 난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 기간 동안은 집에 일찍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어쩌다 일찍 집에 가면 낯설어서 집을 찾기 어렵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매일 별 보기 운동이었다. 덕분에 국장까지 승진했다.(엄밀히 말하면 승진 했었다)
국장이 되니 마음이 무척 바빠졌다. 시장님이 바로 코 앞에 계셨다. 시장님의 주문사항을 빨리 그리고 완벽하게 소화해서 보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항상 머릿속에 박혀있다. 시장님은 언제든 나를 찾으실 수 있고, 부르시면 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을 항상 긴장하게 만든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스트레스 만땅이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다 할 수도 없다. 불안, 초조가 늘 있다.
위로 올라가면 업무 관련해서, 많은 부하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시장님을 비롯한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어머니 같은 시의원, 언론과의 관계에서 등 수많은 스트레스 요인들이 한시도 마음 편하게 놓아주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불똥이 튈지 모른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직장에서 승진만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건강은 나빠지고 가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기에 아내와 아이들과의 사이가 당연히 좋지 않다. 물론 친구들 만날 시간과 여유도 없다. 독고다이로 살아야 한다. 기껏해야 직장 동료나 후배들하고 쓴 소주 마시면서 고리타분한 직장 얘기를 안주 삼아 잘해보자고 다짐 내지는 독려하거나, 누군가의 뒷담화를 까거나, 때로는 신세 한탄하는 정도다. 희생해야 되는 것이 많다.
실제로 얼마 전에 내가 1인가구추진단장일 때 같이 일한 여자 팀장께서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당시 같이 일한 팀장 몇몇과 같이 저녁을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한 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시에서 서기관 승진하려면 세 가지가 빠져야 한 대요. 이가 빠지고, 눈도 빠지고, 머리가 빠져요”라고. 옆에서 듣던 승진을 한 장본인은 한술 더 떴다. “저는 거기에 어깨가 빠지고, 꼬리뼈도 빠진 것 같아요. 너무 앉아있었더니 앉아있다 일어나려면 꼬리뼈 쪽이 아파서 힘이 안 들어가요” 슬픈 얘기다. 허나 상당 부분 사실이다.
우리 공무원 후배분들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떻게 공무원 생활을 하며, 어디까지 올라갈 것으로 희망할 것인가? 또는 욕심(?)을 낼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든다면, 먼저 내가 위에서 언급한 적극적 행복과 소극적 행복과 관련하여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판단해 봐야 한다.
요즘 우리 후배 공무원들은 누구나 엘리트 출신이다. 엘리트가 아니면 공무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될 수 있는 한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망.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느 쪽이 나에게 보다 더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를 차분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적극적 행복을 좇을 것인지, 소극적 행복을 좇을 것인지 결정하고, 나의 에너지를 그쪽에 좀 더 쓰는 것이다.
공무원은 더 이상 철밥통도 아니지만, 경쟁이 없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사이좋은 조직도 아니다. 처음
시작부터 모든 직급에서 경쟁관계에 놓여진다. 승진하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 또 그 자리에서도 실제 승진하기 위해서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동료, 선·후배들과 경쟁해야 한다. 누구나 다 열심히만 하면 승진하는 것도 아니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만약 적극을 선택하였다고 해도 중용을 지키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 세상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므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행복이나 지켜야 할 가치는 어느 한 방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직장이 우리 생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가정과 기타 개인의 사생활 그리고 건강 문제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골고루 챙겨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실제 다양한 일을 통해서 사회가 굴러간다. 누구나 다 우두머리가 될 수는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다 거창한 일, 남들이 알아주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크고 작은 일, 하기 싫은 일들이 모여져야 사회가 완성된다.
난 후배들이 스스로를 무한경쟁에 뛰어들게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한 방향만 보고 아등바등 살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나의 귀여운 세 딸이 다 커서 최근에 나는 딸들에게도 그렇게 조언하고 있다. 작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보람도 느끼고 행복도 느끼고...
그렇다고 승진을 아예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승진에만 목을 메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승진은 제때제때,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너무 뒤처지면 그것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니까.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정상에 가장 빨리 올라가는 방법은 경쟁이 아니라, 자기 페이스대로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 활동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아프면 모든 게 끝이다.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부부가 함께 집안일과 아이들 양육을 적절하게 분담하고, 아이들이 크는 동안 같이 몸을 부대끼며 놀아야(놀아줘야 아님) 한다. 정신적으로 아이들과 일체가 되도록...
동료나 친구 관계도 나이가 들수록 매우 중요하다. 평상시에 인간관계가 풍성해야 사람 살맛이 난다. 나이 들수록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소중하고 절실해진다. 시간과 에너지 배분이 관건이다.
다만 다음 두 가지는 꼭 부탁드리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난 승진에 관심 없어, 가늘고 길게 살거야”라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정말 승진에 관계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생각도 하지 마라.
혹시 소극적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서 직장 일에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직장에서 자기 맡은 일과 대인 관계를 잘해야만 나머지도 원만하게 이룰 수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어느 골프 프로가 레슨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골프는 가만히 서 있는 공을 때리는 운동인데, 내가 저 공을 세게 쳐야지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고, 자세는 흐트러집니다. 내 스윙 중간에 자연스럽게 공이 맞아 나간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야 공이 힘있게 똑바로 나갑니다.”
직장을 내 출세의 터전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없어진다. 어렵지만, 직장을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일하자. 어느 시점에서는 만족스런 자아를 발견할 것이다.
“어! 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 있네. 괜찮게 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