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면 여성이 키를 가지고 있다
저출생은 그 자체로 인구절벽 나아가 인구 소멸을 가져오지만,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저출생·고령화는 그 자체로 경제, 사회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먼저 경제적인 영향에 관해서는 2024년 5월 30일자 서울경제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국내 매출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일단 응답기업의 68%가 우리나라의 급속한 저출생·고령화로 인하여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응답기업들은 이대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될 경우, 평균 11년 이내에 인력 부족이나 내수기반 붕괴 등과 같은 경제위기가 올 것으로 전망했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가장 큰 우려로 응답 기업의 46%는 ‘원활한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꼽았다. 이어 ‘시장 수요 감소에 따른 매출 하락(19%)’ ‘인력 고령화에 따른 노동 생산성 저하(18%)’ 순으로 답했다. 그렇다. 저출생·고령화는 경제구조 자체를 무너뜨린다. 지속적이고도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무슨 임시 처방이 안 된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저출생·고령화는 최근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1인 가구화와 함께 사회를 분절화시키고, 나아가 세대 간 단절 및 개인주의화로 사회 전체의 고립화를 촉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내가 함께 사는 사회’라기보다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행동양식이 보편화되면서, 우리사회는 점점 더 살맛을 잃어갈 수 있다. 급기야 철학자 홉스가 이야기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까지 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저출생에 관해서 문제를 말하라면 한도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지만, 해결책을 말하라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게 이 문제의 핵심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급격한 저출생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보자. 그리고나서 원인별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저출생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펜데믹 때처럼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동시에 겪고 있는데, 다만 그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북한에서도 저출생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북한도 2022년 기준 출산율이 1.9로 떨어졌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또 잘 산다는 선진국만의 문제도 아닌 것이다. 저출생은 현 인류의 공통적인 현상이고 대세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특별하다는 것일 뿐....
저출생의 원인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현상과, 그 현상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저출생은 일단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아서 생기는 결과다. 최근 한국사회의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20대 여성 10명 중 3명만 결혼할 생각 있다”라는 제목의 2023년 12월 동아일보 기사가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에 따르면 결혼할 의향에 대해 20대 여성은 28%, 30대 여성은 32%, 20대 남성은 42%, 30대 남성은 49%가 결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결국 결혼 적령기의 2~30대 여성은 약 30%, 남성은 약 45% 만이 결혼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혼해도 절반 가까이(44%)는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가장 최근(2024년 9월) SK사회적가치연구원의 조사에서는 그것도 42%만이 자녀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쉽게 말하면, 반 이하가 결혼하고, 결혼한 사람 중 반 이하만 아이를 낳겠다는 결과다. 2024년 출산율 0.72가 나온 연유를 통계자료가 그대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충격적이다.
2024년 3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가장 최근 통계자료도 비슷한 결과를 말해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의 만 19~4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결혼할 생각이 있다는 남자는 56%, 여자는 47%’이고, 또한 결혼을 해도 ‘46%는 아이 안 낳겠다’였다. 결국 반만 결혼하고, 그 중에 반만 아이를 낳겠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다시 확인된 셈이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남녀 간 응답에 차이가 컸다. 남자는 결혼식 비용이나 신혼집 마련 등 경제적 부담(89%)이, 여자는 결혼에 따른 가사·출산 등 역할 부담(93%)으로 답했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젊은 20대 여성 중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비율은 34%에 불과했다.
위의 통계자료에서도 나타나듯이, 상대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비율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다. 내가 보기엔 남성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비율 중 상당 부분도, 결혼할 여성을 찾지 못해서 포기한 사람들의 비중이 꽤나 높을 것으로 본다.
우리 직장에서만 봐도 주변에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여성들은 생각이 확고하다. 그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한 자발적 결정이다. 비혼주의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혼자 사는 남성도 많다. 이런 남성들을 보면 왠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엔 그들의 의지가 아닌 경우가 상당히 많으므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결혼을 하고는 싶지만, 경제적 문제로 상황이 녹록치 않으며, 특히 결혼할 만한 상대를 구하기 어려워서 포기한 측면이 강하다고 멋적은 웃음을 짓는다. 남성들은 상당수가 그들의 자발적 의지가 아닌 것이다. 그저 미혼상태로 남은 것일 뿐....(내가 모든 남성을 인터뷰한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생각임을 다시 한 번 말해둔다)
나에게도 다 큰 딸이 셋 있다. 큰딸은 99년생이니, 엄마가 결혼한 나이인 26세다. 남자친구는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둘째 딸은 대학 4학년인데 그 흔한 미팅 한 번 안 했다. 남자가 아예 필요가 없단다. 다행히 셋째는 재수 중인데, 대학가면 멋진 남자친구를 사귈 생각은 있다고 한다. 다만 엄마랑 쭉 살고 싶단다. 결국 셋 중에 한 녀석이라도 결혼이란 걸 할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딸이 셋이니 예전 같으면 손주 6명은 기대할 수 있는데, 어쩌면 한 명도 없을 수도 있겠다. (제발 4명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딸들에게 결혼에 관해 특별히 이야기한 것은 없다. 그들이 결정할 문제이므로 내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한 인생은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이며,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과정에서 결혼은 선택의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방송인 신동엽씨가 후배 연예인의 결혼식 사회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편하게 살려면 혼자 사는 게 낫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결혼해야 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부가 정말 노력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고. 물론 자녀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았지만,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키우고, 그러면서 슬픔과 기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껴보는 것이 우리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꼰대스런 생각을 해본다.
다시 돌아와서, 결국 우리가 사는 시대의 결혼과 출생의 키(Key)는 주로 여성이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결정에 좌우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지의 사실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대폭 증가되면서,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한편, 가치관이 변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리라. 과거처럼 남성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얼마든지 사회생활 또는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면서 결혼을 당연시했던 생각이 급격하게 변한 것이다. 여성들은 “결혼하면 가정부터 아이까지 내 인생에서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라고 말한다.
여성들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나름 본인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데, 결혼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결혼을 왜 해?)고 생각하는 게 대세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틀에 매이고 싶지 않고, 더구나 출산으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경력단절도 겪고 싶지 않아 한다. 원천적으로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고, 심지어 결혼은 불필요한 것, 내 행복에 방해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비율도 점점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크게 확대되었지만, 아직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성이 결혼과 출산으로 인하여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충분치 않다. 특히 여성들은 출산 및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가 볼 때 이처럼 여성 스스로 생각이 변화하는 흐름에, 요즘 남성들의 행태변화도 한몫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체로 남녀 공학인 대학교에서 여성들의 학점이 높다. 남성들이 알아서 깔아주니까... 각종 시험이나 채용 면접 등에서 여성들의 기가 더 강하다. 서울시만 해도 신규 직원의 다수가 여성이다. 수렵·채취, 농경, 산업사회를 이끌어 온 남성들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慨世)는 이제 더 이상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전반적인 여성 상위시대에 맞추어 ‘남성들이 기죽어 지내는 것은 아닌지?’ 남성 선배로서 염려스럽다. 한편, 나는 요즘 여성들이 예전과 달리 남성을 조금은 가볍게(?) 보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내 둘째는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더더욱 여성들이 근원적으로 웬만한 남성들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나 이러다 전국의 건장한 남성들한테 맞아 죽는 것 아닌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아니, 요즘 세상엔 이런 이야기 자체를 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주로 여성의 관점에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꼭 여성만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 공히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보고 이 꼭지를 마무리 하겠다.
여기서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흙수저들은 경제적 부담으로 아예 결혼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결혼을 하겠다 또는 해야겠다 라는 생각 자체를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결혼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청년들이 다수다. 나아가 현재의 소득 수준으로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치솟은 주거비용과 생활비 급등, 고용시장에서의 불안, 감당하기 어려운 고비용 구조의 결혼자금(주거비용 포함 최소 1억에서 2억원 내지 3~4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등이 원천적으로 결혼이란 걸 생각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배우자의 연봉이나 소득을 4,000만원에서 5,000만원 수준으로 기대한다는 데, 젊은 시절에 이 기준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자료에 따르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20대의 비율이 81%로 경제적 독립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은수저나 금수저들은 어떨까?
이들에게도 경제적인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보다도 결혼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가치관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특히 현대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의 확대와 가치관 측면에서 자율적인 ‘행복한 삶’을 위해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배우자와 같이 사는 것 또는 부모가 되는 것 외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젊은 남녀가 점점 늘고 있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좀 더 깊숙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어릴 때부터 경쟁 지옥이다. 엄청난 교육열이 잿더미 속의 대한민국을 지금의 선진국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매우 크다. 대학을 향한 입시 경쟁, 대학 가서도 취업 전쟁, 취업하면 또 생존 경쟁 등으로 하루라도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과정에서 패배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고, 승리자라 할지라도 살아남기 위해 또는 더 나은 지위를 위해 계속 뛰어야 한다.
이로 인해, ‘연예’까지 가기 전에 일단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공감’ 자체가 없으며, 하루하루가 그저 생존을 위해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별일이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드러낼 틈조차 없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상당수의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직접 들은 내용임을 밝힌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아직도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하는 가부장적 인식이 남아있다. 육아는 여성의 책임과 역할이 더욱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게 움직여진다. 더구나 산업화가 가속화 되면서 남성의 장기간 근로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여성에게 자녀 돌봄의 책임이 집중되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요즘 주변에서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 의외로 남자 입장에서 연상연하 커플이 많다. 남성은 결혼하게 되면 짊어져야 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소 감면받을 수 있고, 여성은 괜찮은 남편감을 어렵게 찾느니 똘똘한 후배를 잘 키워서 내가 조정(?)하면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서로 들어맞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상으로 저출생으로 파생될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해 내 개인적 생각을 포함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문제나 원인에 대해서는 누구든 할 말이 많은데 정작 "해결책이 뭐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도 개론 수준의 대책만을 이야기할 정도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보자. 하다 보면 뭔가 좋은 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