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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누남 책임 Oct 18. 2024

직장인에게도 방학이 필요하다

20년 차 직장인의 소망

남들보다 조금 늦은 20대 후반에 취직을 했다. 재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군대를 다녀오며 3년 휴학을 했고, 대학원을 2년 다녔다. 여기까지는 종종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다중전공을 한다고 학부를 2년 더 다녔다. 학교마다 용어가 조금씩 다르지만 다중전공이란 학부 전공을 마치고 전공 63학점을 추가로 수강하면 또 다른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전공만 63학점이다 보니 한 학기당 20~22학점을 듣는다고 해도 최소 3학기를 다녀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필수과목과 여러 조건을 따지면 4학기를 다니게 된다. 남들보다 조금 많은 나이이지만 2~3살 많은 나이에 대해 취업 시 불이익이 있던 시절은 아니었다. 지금에 비하면 취업이 쉬운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올해 초, 그러니깐 취업 20년 차가 되는 시점에 결심을 하나 했다. 나에게도 방학이 필요하다. 물론 그동안 휴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계휴가로 1주일 가끔은 2주까지 쉰 적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니 휴가(休暇)를 "명사. 직장ㆍ학교ㆍ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직장인들은 휴가를 쉼 보다는 자신을 위해 바쁘게 쓰는 시간일 것이다. 여행을 가더라도 휴양보다는 여러 관광지를 빠르게 돌아보거나, 짧은 시간 동안 휴양지를 방문하는 시간 또는 밀렸던 은행이나 관공서 업무를 보는 등으로. 게다가 직장인의 휴가란 회사를 안 나갈 뿐 내가 맡은 업무를 누군가 해야 하고 그래서 회사와 계속 연결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다 보니 휴가 기간임에도 간간히 연락을 받게 된다. 물론 미안함 마음으로 연락을 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1개월 이상 회사를 나가지 않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내가 하던 업무가 계속 진행이 되어야 하기에 다른 사람이 담당을 하게 된다. 그 이상 쉬면 돌아와서 내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수준이 된다. 


2~3년 전 번아웃으로 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40대 중후반의 나이로 쉬었다가 이직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일이 지나가면 6개월쯤 폼나게 쉬어주리라 생각했지만,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와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던 윗사람들이 다른 팀으로 옮겨갔다. 보통은 팀원들이 나가떨어지는데 운이 좋았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똥덩이를 정리하고 숨을 돌리니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니 힘들었던 시절은 까마득하게 잊히고 굳이 휴직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월급이 안 나오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보다는 카드사가 더 아찔하려나. 

그래서 '조금 더' 있다가 쉬어라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런 식으로 미루다 보면 ‘조금 더’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친구들 중에도 10년 또는 15년 뒤에 은퇴하고 여행 다니고 취미생활 해야지라는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은퇴의 날이 와도 또 다른 돈걱정과 체력저하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어에 ‘seize the day’라는 문구가 있다. 이번에는 영어니 옥스퍼드 사전을 찾아보면 "make the most of the present moment."라고 되어 있다. "현재를 최대한 즐겨라 또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라는 뜻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업무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타협한 안이 1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3개월 휴직이다. (휴가와 휴직이 포함된 형태이지만 편의상 휴직이라고 하겠다) 팀장에게 구두로 허락을 받았고 이제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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