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봄 Oct 27. 2024

첫사랑의 설렘과 과오.

첫사랑, 풋풋했던 그 기억들

12살, 나에게도 첫사랑이 생겼다. 상대는 같은 반 남자아이였다. 서울에 살다가 용인으로 이사 온 열두 살의 나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첫사랑이 생겼다. 썩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지만 순둥순둥한 외모와 수줍음 타는 그 아이의 성격에 나는 급속히 빠져들었고, 매료되었다. 그 아이만 눈에 보였다.

난생처음 첫사랑을 맞이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의 초점은 그에게만 맞춰있었으며, 그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나의 시선 역시 같이 이동했다. 그의 자리가 앞자리일 땐 쉬는 시간 내내 그의 뒤통수를 쳐다봤으며, 그가 내 뒷자리일 땐 흘깃흘깃하며 아닌 척 그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자리를 바꿀 시기엔 제발 그와 짝이 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나의 기억 속에 그와 짝이 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고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와 짝이 된 다른 여자애를 바라보며 부러워했고, 그와 대화하는 그녀들을 질투했다.

그때 내가 가장 기다렸던 건 하교뒤의 시간이었다. 하교 뒤 그와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여사친 D, 그리고 남사친 J과 나의 첫사랑. 이렇게 넷이서 모여 하교뒤에 집 근처 놀이터에서 항상 놀았다. 내 친구 D와 나의 첫사랑의 친구 J가 서로 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첫사랑의 친구였던 J과 나의 친구였던 D는 서로 친했다. 그 둘은 정말 외향형에 장난기도 많은 성격이었고, 내 첫사랑과 나는 수줍음도 많이 타고 말도 많이 없었던 성격이었다. 그땐 그게 좋았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성격의 아이라서 마음에 끌렸다. 그는 말이 참 없었는데 D와 J가 투닥대며 장난을 치는 내내 말을 잘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항상  J에게 하지 말라고 화를 내며 투닥거렸다. 그때 J는 D에게 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정도가 심한 장난을 쳤고, 자꾸 성가시게 굴었다. 내 머리꽁지를 잡아당기는 건 당연지사 내 치마가락을 잡아당기기도, 나를 쿡쿡 찌르기도 했다. 나는 그게 나를 싫어하는 표현인 줄 알았다. 내가 너무도 싫어서 나를 그렇게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맘에 상처도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J는 나에게 전화해 너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고백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었다. 나에게 전화를 건 J의 옆에는 친구들이 있었고 친구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쪽팔려 게임이 유행이던 시절이었기에, 쪽 팔려 게임을 해서 나에게 거짓으로 고백장난을 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고백에 장난치지 말라고 답을 했고, J는 나에게 거짓이 아니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믿지 못했고, 그 좋아한다는 고백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장난을 친 너를 용납할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만만했냐는 생각에 전화를 차단을 해버렸고, 그로부터 몇 개월 뒤 그에게 상처를 줘버렸다. 어린 마음에 저지른 실수였다. 그 당시는 그 실수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옳은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고등학생 때 그 생각을 하며 ‘아 내가 그때 J한테 잘못했었네’라고 반성을 하게 되었다. 반성을 하며 그에게 늦었지만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고, 그 사과의 마음이 그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진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이후 나는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걸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이 됐다. 치기 어린 마음에 상대에게 상처를 준 첫 번째 경험이 너무나도 강렬해 더 이상 그를 되풀이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가 상처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장난기가 많지만 마음이 약했던 그는 상처받았음이 분명하다고 아직까지 생각된다. 나의 건방지고 무지한 말로 인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기분은 심히 좋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후회된다. 그때만 생각하면 그때의 나를 힘껏 혼내주고 싶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상대방에 대해 왈가왈부해 그것도 그 사람 들으라는 듯이? 미쳤니? 걔가 장난으로 고백한 게 확실해?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아무리 걔가 장난으로 너한테 고백한 거라고 쳐도 너한테 상대방에게 상처 줄 자격이 있니?’라고 말해주면서.

그때 이후로 나는 말을 고르고 골라가며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의 경험은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맞춰주고, 상대를 배려해 주는 인간관계에서의 내 모습을 만들어냈다. 타인에게 상처를 준 경험이 너무나 괴로워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나 자신의 존재를 없애가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맞추고 배려하고 애정을 퍼부어준다. 유년시절의 경험이 성인의 애착유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를 맞춰주는 이 관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를 탐구했던 적이 있다. 이때의 좋지 않았던 기분과 기억이 지금의 내 인간관계의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라는 결론에 다달았다.

초등학생 시절과 중학생 입학까지의 기간은 나에게 첫사랑의 설렘을 안겨줬고, 지난날의 과오와 깨달음까지 덩달아 안겨줬다.

그 시절 수업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첫사랑을 좋아했던 마음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첫사랑’이란 단어를 보면 생각나는 놀이터에 앉아있는 그의 은은한 미소 띤 얼굴, 아직도 생각나는 그의 이름. 초록색의 풋사과처럼 순수하고 파릇했던 풋사랑이었다.

12살과 13살을 함께 했던 내 첫사랑과 유일한 남사친이었던 J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각각 다른 의미의 강렬함이다.

한 명은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 다른 한 명은 내가 상처를 준 상대이자 정말 미안한 사람으로의 기억.

그 시절 첫사랑이자 풋사랑이었던 그와는 놀이터에서 같이 논 것 이외에 커다란 관계의 발전은 없었다. 중학교를 다른 중학교에 가게 된 뒤 지금까지 소식을 모르고 산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던데, 정말로 나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여름 그 열기처럼 찾아온 나의 첫사랑이자 풋사랑,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는 지금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가끔씩 생각난다.

나는 짝사랑의 기억이 참 많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 짝사랑을 했었지만 초중고의 학창 시절 짝사랑 기억 중 때 묻지 않은 순수했던 사랑의 기억은 이때의 첫사랑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의 짝사랑은 상대방이 흙먼지를 잔뜩 묻혀놓았기에.
그래서 이때의 첫사랑의 기억이 더욱 소중하다. 이런 풋풋하고 순수했던 사랑은 다신 없을 테니까.
‘넌 지금 무얼 하며 어떻게 살고 있니?

순수했던 나의 첫사랑이자 풋사랑이 너여서 참 감사해. 너였기에 나의 초등학교 첫사랑 기억에 흙먼지가 묻지 않았어.

널 지금 만났다면, 우린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어디쯤 왔을까 너와 나는.

만약, 너를 지금 다시 보게 된다면 이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널 좋아했다고 말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