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질투의 무게 추
'쓰는 사람'이 되면서 생겨난 감정과 변화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 없이 반 오십을 살아왔었다. 그렇다, 과거형이다. 지금의 내 마음속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글드글 욕망의 도가니처럼 끓고 있으니까.
과거에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난 글을 쓸 줄 모르니까! 글이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글’에 대해서 문외환이자 이방인의 삶을 살아왔다. 글을 좋아해서 책을 좋아하고, 활자중독이어서 영상보단 텍스트를 더 좋아하며 활자를 안 읽으면 심심해 어떤 것이든 활자를 읽는 나였지만,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 세월이 무색하게, 지금의 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업으로 삼는 건 아니다. 그저 취미로 글을 쓰는 거지만, 사실 너무 보잘것없는 글이라 글을 쓴다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어찌 되었든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래서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으며, 나는 그 불확실함이 불안하면서도 재밌다. 어떻게 변화할지 미래의 내 모습을 예상할 수가 없어서 또는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어서 즐겁다. 물론 슬플 때도 많지만.
생각해 보면, 나의 질투와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글을 쓰면서, ‘쓰는 사람’이 되면서부터.
생각이 많고 감정형인 나는 ‘쓰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머릿속이 뿌연 안개로 자욱했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가슴 한편에 엉켜있었고, 머리는 뿌연 안개로 가득 차있으며 생각 또한 엉킨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엉켜있어 풀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생각이 많은 민지 씨는 글을 써야 해요. 글이 민지 씨의 해소방법이 되어줄 거예요. 시도해 봐요”
마음이 너무 괴로워 갔던 심리상담센터에서 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말은 글을 쓰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심드렁했다.
내 속마음은 이랬다. ‘아니, 선생님.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데요.. 전 글을 쓰는 방법을 모르는데요..?”
그렇게 글 쓰는 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처방은 머릿속 한구석으로 처박히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며 글을 쓴다면 인생이 좀 더 수월해질 것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다.
‘그니까 그 글을 어떻게 쓰는 건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과 답답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런 내 삶을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이 송두리째 바꿔놨다. ‘기록’에 관련한 책을 읽으며 다양한 방법의 기록을 실행해 보게 되었고, 기록을 하면서 자연히 쓰는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한 자 한 자를 쓰다 보니 어느새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여러 사람들의 말처럼 쓰면서 나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의 감정을 제삼자의 시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으며, 나의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감정파도를 어느 정도 유연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내가 ‘쓰는 사람’이 되면서 얻게 된 장점이다.
모든 것엔 일장일단이 있듯이, 단점 또한 덤으로 얻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얻게 된 단점이란, 나의 질투와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질투는 비교로 이어지고, 비교는 질투로 이어진다.
바로 불행의 시작이다. 그 불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단순히 글을 읽고 맛보며 즐거웠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그 감정에 더하여 새로운 감정들이 추가되었다. 부러움, 동경, 내 글과의 비교, 그리고 마지막으론 자괴감까지.
왜 나는 저렇게 유려하고도 멋들어진 글, 재밌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을 자주 느끼게 되었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마저 미워지게 되었다.
질투와 동경은 한 끗차이다. 질투를 느끼면서도 나는 그들을 동경한다. 부러워하면서도 그런 그들이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닮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지금은 질투와 동경의 비율이 거의 동등하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질투 쪽으로 무게추가 강하게 기울어지면 내 삶의 파국을 불러올 것이고, 동경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삶의 성장을 불러올 것이다.
질투를 하며 그들을 미워하고 그만큼 글을 쓰지 못하는 나 또한 미워하는 방향보단, 그들을 동경하며 배울 점을 찾고 내 글을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건강한 마인드를 탑재한 사람이 되고 싶다.
‘쓰는 사람’이 되면서 여러 감정들을 덤으로 얻었지만, 나는 그럼에도 글을 계속해서 쓸 것이고, 읽고 쓰고 말하는 삶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집어넣을 것이다.
글이 나에게 주는 치유를 이미 경험했고, 무언가를 쓰면서 정리되는 내 마음과 생각들, 그로부터 후련해지고 안정적으로 변한 내 정신건강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글의 효과는 위대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고 고됨을 동반함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글의 효과, 쓰기의 효과를 체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미 그 효과를 체감하였기에 더 이상 벗어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새벽에 잠에서 깨었을 때 갑자기 쓰고 싶은 주제 또는 쓰고 싶은 말 등의 영감이 생각나 메모장을 켜서 활자를 작성하는 내가 좋다. 글쓰기에 진심인 내가 좋다.
그리고, 괴로워하면서도 쓰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의 모임이, 그리고 그 일원인 내가 좋다.
여전히 난 질투와 동경, 쪼그라듬등이 섞인 총체의 감정을 가지고 가겠지만 그런 내 마음을 비난하기보단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파생된 그런 감정임을 알아주려고 한다.
‘그래 너 잘하고 싶구나? 그만큼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잘하고 있어. 이렇게 쓰고 쓰다 보면 나중엔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오늘밤 나에게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