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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현 Oct 26. 2024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 (3)

20대 청년의 로컬 이주 도전기 - 이주는 어려워

'... 인원 관계상 이번 기수에는 안타깝게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 전달드려요...'

 

[강릉살자]에서 진행하는 한달살이 프로그램에 떨어졌다는 문자를 받았다. 강릉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탱자탱자 놀던 나로서는 아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퇴사한 지 5개월 되는 시점이었다. 


잠시 고백하자면 나라는 사람은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열과 성을 다해 무엇인가를 이룬 경험이 없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본 적도 없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게으름뱅이 또는 극한의 효율충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또 최소한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에 만족하는 욕심 없는 사람이다. 무엇인가를 잘 시작하지도 못한다. 걱정이 앞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돌리다 끝난다.


인생에서 그나마 제일 열심히 했던 것이 축구와 야구였다. 재능도 있고 흥미도 있었다.  

학교 끝나고 해가 질 때까지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포지션은 골키퍼였는데 하도 몸을 날려대는 탓에 팔꿈치와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실력은 옆 학교까지 "00초에 골키퍼 잘하는 놈이 있다더라" 소문이 날 정도였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축구부가 있는 학교에 가서 테스트도 봤다. 테스트 결과 재능과 센스는 있지만 기본기가 부족해 1년 정도는 기본기를 다져야 하고, 축구가 재미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부모님께 "축구 재밌으려고 하는 건데 1년 동안 재미가 없다면 안 할래요"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력을 하고도 보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리 포기했던 것 같다.

공부 쪽은 어땠는가 하면 "우리 애는 머리가 좋아서 하면 잘할 거예요"라는 말의 우리 애가 딱 나였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영재교육원에 합격했고, 중학생 때는 다른 친구들 전부 늦은 시간까지 학원 뺑뺑이 돌 때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듣고 시험 전에 교과서 한번 보고 반에서 5~10등 안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는 워낙 특수한 환경이었어서 패스하고 대학생 때도 매일 같이 놀러 다니고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과제했지만 그래도 4.5 만점에 3.49라는 준수한 학점을 들고 졸업했다. 재수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조금만 투자해도 꽤나 만족할만한 결과를 받았다.


로컬이주 준비도 마찬가지였다. 퇴사라는 큰 결단을 내리고 시작한 일이지만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조금만 노력하면 뭔가 일이 일어나고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건 없었고 귀찮음과 무기력함이 내 몸을 잠식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뭐라도 찾아서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찾아왔다. 허리띠를 졸라매 나가는 돈을 최소화해도 줄어들어가는 통장 잔고는 너무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닐까 하는 후회까지 들게 했다. 강릉 한달살이의 무산은 이런 불안감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팔로우해놓았던 [부여안다]라는 청년 커뮤니티 계정에 부여 일주일 살기 참가자 모집 글이 올라왔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5개월 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나름대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이주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부여로 이주한 청년들과 온라인 만남을 가진 것도 있었는데 그때 들은 부여 생활이 궁금하기도 했고 지금 나의 상황에 너무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됐다. 고민은 짧았다. 


그렇게 <부여 상상 위크 캠프>에 지원했고 이번엔 다행히도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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