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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현 Oct 23. 2024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 (2)

20대 청년의 로컬 이주 도전기 - 시작! 백수 라이프

퇴사하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계획이 있냐는 것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유행하고 있는 MBTI 검사에 의하면 나는 계획적인 J 성향의 사람이나 퇴사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서서히 뜨거워지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탈출해야 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사실 일단 퇴사하면 길이 있을 것이라는 조금은 안일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첫 한 달 동안은 사람이 얼마나 게을러질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사람처럼 지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었다. 졸업하고 계속 일했으니까 한 달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스스로와 약속한 한 달이 지나고부터는 아침 러닝을 시작했다. 러닝은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아침 루틴 중 하나였다.

상상 속에서 나는 화이트 톤의 깔끔한 침실의 주인이다. 얼굴을 살며시 비추는 아침 햇살과 새들의 지저귐에 자연스레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방금 일어났지만 영화 주인공이 그러한 것처럼 눈곱 하나 없고 머리는 까치집이 살짝 지긴 했어도 자연스럽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직접 내리고, 밖으로 풍경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신다.(커피를 좋아하진 않지만 커피를 마셔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조금은 쌀쌀하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가볍게 러닝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한다.

현실은 상상과는 조금 다르다. 아침이 되어도 해가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원룸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음에 눈을 뜬다. 습관처럼 폰을 켜고 반쯤 눈을 감은체로 유튜브 쇼츠를 본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냉수 한잔 들이켜고 밤새 가득 찬 방광을 비우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거울을 보니 머리는 폭탄을 맞은 것 같고 입가엔 침을 얼마나 흘린 건지 침자국이 잔뜩이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칼칼하고 후덥지근한 서울의 아침 공기를 느끼며 가볍게 러닝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한다.

화이트 톤의 깔끔한 침실도 없고 영화배우처럼 분위기 있게 커피를 한잔 하며 아침을 시작하진 못했지만 집 근처 하천을 따라 달리며 느낀 것은 상상했던 그 기분 그대로였다.


백수 3개월 차가 넘어가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신을 차리고 로컬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각종 로컬 커뮤니티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고 인스타를 팔로우했다. 전국 곳곳에 청년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만들고 여러 활동들을 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고 직접 가서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이주할만한 곳인지 확신이 필요했다. 우선 한 곳을 정해 직접 가보기로 결심했다.


탈 서울을 결심했을 때부터 생각하던 이주지 선정 조건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로 서울을 벗어나고 싶지만 서울의 각종 편의 시설들과 기반 시설들을 완전히 포기하긴 힘들었다.

두 번째는 '인구가 너무 적은 지역은 안된다'였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알고 있는 정도의 작은 지역은 부담이 될 것 같았다. 또한 완벽한 내향인인 나는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너무 작은 마을이나 공동체는 경험 상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려웠다. 익명성에 숨어 쉴 수 있을 정도의 인구 규모가 다.

세 번째는 '자연경관이 좋은 곳'이다.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서울의 빌딩 숲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살아보기로 했는데 보이는 풍경이 이뻐야 했다. 바다와 산이 둘 다 있으면 좋고, 안된다면 둘 중 하나라도 있어야 했다.


여러 지역들을 살펴본 결과 위 3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이 '강릉'이었다. 마침 [강릉살자]라는 곳에서 진행하는 한달살이 프로그램이 있어 지원했다.

로컬로 이주하겠다고 선언은 했지만 토익을 30일 만에 완성해주겠다는 책처럼 '로컬 이주 30일 완성!'이라는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은 흐르지만 상황이 진전되는게 없어 한달살이 프로그램에 합격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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