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게 솟은 빌딩들,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목이 약간 칼칼해지는 공기, 날카롭게 귀를 때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부여의 모든 것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10년 넘게 살아온 서울이 낯설게 느껴졌다. 확신이 들었다. 서울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걸.
다시 부여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다. 로컬로 이주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다 보니 나의 공간을 만들고 운영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폐가나 빈집을 구해 직접 집을 고치고, 꾸며 아주 매력 있는 게스트하우스 또는 호스텔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본이 많은 것도 아니고 "로컬에서 뭘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그럴싸하게 대답하기 위한 답일 뿐이라 자조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스터를 만나면서 어두운 터널 속 한줄기 빛처럼 작지만 강렬한 희망이 싹텄다. 끝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빛을 따라 따라가 보고 싶었다.
마스터뿐 아니라 부여에 이미 이주해 온 다른 청년분들의 활동도 정말 재밌어 보였고,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부여의 풍경도 좋았다. 부여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쯤에서 마스터란 존재에 대해 소개를 해야 할 것 같다. 마스터는 부여 청년들이 존경과 감사와 애정을 담아 부르는 별명으로 본명 보다도 마스터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마스터는 60이 넘으셨다. 하지만 20, 30대 청년들과 얘기하고 노는데 위화감이 들지 않는 신기한 분이다. 정말 좋은 어른들과도 함께 하다 보면 세대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마스터는 다르다.
마스터는 만능이다. 누군가 "ㅇㅇ이 고장 났어요!", "ㅁㅁ좀 도와주세요!"라고 도움을 요청하면 마스터가 짜잔 하고 나타나 해결해 준다. 용접, 전기공사, 집수리, 목공 등 못하는 게 없다. 살고 계신 집도 직접 지으셨다. 비행기 조종도 가능하실 것만 같다.(진짜 하실 줄 아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마스터는 재밌게 사시는 분이다. 표고버섯 농장을 운영하지만 아침에 2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엔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 일을 처리하거나 놀러 다닌다. 드럼, 피아노, 독서, 자전거 타기, 스포츠댄스, 서각 등 취미도 많으시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느낀 마스터는 이런 분이다.
부여에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주거 문제가 '소행성B' 덕분에 쉽게 해결된 덕분이다.
'소행성B'는 부여에 친구들이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솔과 히힛이라는 청년분들이 개인임대하여 만든 공간이다. 3개월~6개월 정도 살아보며 부여를 좀 더 경험해보고 싶다고 얘기하니 흔쾌히 머물러도 된다고 해주었다.
소행성에 짐을 풀고 마스터에게 부여에 돌아왔다고, 따라다니면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상상 위크캠프> 일자리 상상 시간에 뚱땅뚱땅 일하던걸 좋게 봐주셨었는지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마스터의 일정을 보내주셨다.
본격 로컬 살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