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아파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남 김해시에 있는 990세대의 신축아파트였습니다.
입주 3년 차에 접어드는 이 아파트는 당시(물론 지금도) 동서남북으로 황무지 상태에 있어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아파트였습니다. 호갱노노 어플을 들어가서 단지 이야기 게시판을 둘러보니 990세대 단지임에도 거주 후기가 많이 없었고, 그나마 올라온 후기는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어 불편하다는 의견 일색이었습니다.
김해시 부동산카페에 접속해 단지명을 검색했더니 비슷한 여론이더군요. 자차 없이는 거주하기 힘든 아파트라며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초보였던 저는 ‘저렴한 신축’이라는 사실만으로
이 물건이 엄청 끌렸습니다. 누가 되었든 간에 수요자만 있다면 매매든 임대든 거래는 반드시 될 것이고저는 경매로 싸게 사서 다른 일반 매물들보다 더 싸게 시장에 내놓으면 되는 거니까요.
물건검색 시점인 당시를 떠올려보자면, 2020년 이후의 본격적인 부동산 활황기가 오기 전 시점이며
경남 김해시의 경우 몇 년 동안 대규모 아파트 공급이 이어져 왔었기에 아파트 수요자들 대부분의 시선은 신축 분양 및 무피투자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무피(無+Premium) 투자란, 전세가와 매매가 차익이 없어 매수자가 돈을 들이지 않고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혹은 집값 하락기에 최초 분양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없을 때, 집을 구매하는 것.)
당시 이 물건을 보고 네이버부동산부터 들어가 현재 단지 세대수 대비 매물로 나와있는 집이 몇 집이나 되는지와, 과거 거래내역을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보다 세대수 대비해서 매물로 나와 있는 집은 많지 않았고 급매로 나왔던 물건들은 오래 걸리지 않아 매매가 이뤄진 듯해 보였습니다. 그래, 인기가 많지 않을 뿐이지, 분명 수요는 있어.
주변이 휑하긴 해도 시내와 매우 인접해 있으며 교통편이 워낙 좋아 ‘조용하고 깨끗한 집을 저렴하게 살길 원하는 사람’의 경우는 여길 선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경매라는 도구를 활용해 시중에 나와 있는 급매물들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경매로 아파트를 사려고 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주택담보대출보다 경락잔금대출의 대출한도가 더 많이 나오며, 금리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니까요.
따라서, 되도록 경매를 통해 부동산 매입 후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저평가되어있는 물건을 찾기 위한 검색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 물건은 입주가 시작된 지 3년이 된 아파트라, ‘내가 만약 낙찰을 받게 된다면 아주 긴 호흡으로 들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23년 차 아파트니까요.
20년 이상 된 아파트를 사고팔고 했던 경험이 있던지라 3년 차 아파트를 보면서 시간을 많이 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부동산 활황기는 적어도 한 두 번 더 올 것이며 임대로 장기간 돌리다 보면 장기간 원금상환도 자동으로 될 것이니까요.
때가 오면 원하는 가격에 매도해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세 조사를 하고자 인터넷에 해당 아파트단지 이름을 입력하고 각종 사이트 및 뉴스 기사들을 둘러보았더니 예상과 달리 주변에 예정된 호재가 많았습니다. 법안통과는 물론 이미 진행 중인 사업들도 있었고요. 왜 황무지에 이런 아파트가 먼저 들어섰을까 하는 궁금증이 조금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 이거 싸게 사놓으면 괜찮겠는데?
당시 법원에서 제시한 감정평가서의 감정가는 1억 9천만 원이었으며, 1회 유찰된 상태였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2단계. 권리 분석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정확히 보는 눈)
마찬가지로 해당 경매사건의 권리분석 역시 여느 일반적인 경매사건들과 같이 특이점이 없었습니다.
말소기준등기인 1순위 근저당권자보다 앞선 권리가 없네요. 낙찰자가 추가로 인수할 것이 없으니 안심이죠.
위 등기부등본 상에서 근저당보다 앞선 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등기부등본에는 나와 있지 않은 ‘임차인 현황’을 봐야겠죠?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매각물건명세서를 봤습니다.
임차인이 있네요. 하지만 다행히도 임차인은 말소기준권리인 1순위 근저당권 설정일 (2017.02.08) 이후에
이사를 왔고,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2017.09.18)
따라서 1순위 대항력은 없습니다. 그런데 전입신고 일자를 보니, 이 세입자 전입신고 날짜가 근저당권 바로 다음 순서네요. 차례에 맞게 기존 2순위 권리보다 먼저 배당 2순위로 들어옵니다.
당연히 낙찰금액의 배당이 돌아가는 순서는 자연스럽게 1순위 근저당권 다음 날짜로 접수된 임차인이 쏙 들어오겠죠.
어? 1순위 근저당권 채권금액을 보니까 110,000,000원이네요. 2순위 임차인 보증금은 20,000,000원이고요. 그렇다면 낙찰금액이 130,000,000원을 넘게 되면 말소기준권리는 물론 임차인도 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수 있겠네요. 좋습니다. 1억 3천만 원 이상으로 낙찰받으면 명도도 쉽겠군요. 1순위 근저당권을 포함해 이하 모든 권리는 소멸, 대항력 있는 임차인 없음. 낙찰자가 인수할 권리가 없네? 권리분석 끝.
3단계. 가치평가 (시세조사, 어느 정도의 금액을 쓸 것인가)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 단지는 시세 조사가 가장 쉽습니다. 인터넷상에 시세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아파트가 지금까지 얼마에 거래되어왔나 부터 확인하려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사이트부터 열심히 뒤적였습니다.
법원에서 제시한 감정가는 190,000,000원. 각 집 내부상태에 따라 매매가는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얼마에 입찰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지난 거래가를 참고하고, 네이버부동산과 호갱노노등의 사이트를 찾아가 현재 나와있는 매물들의 가격을 확인했습니다.
1회 유찰되어 최저입찰가로 써낼 수 있는 금액은 152,000,000원.
저는 얼마에 써냈을까요? 175,001,000원을 써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손품, 발품 열심히 팔고 나서 저 스스로 ‘이 정도 금액이면 낙찰을 받을 수 있겠다’는
손품, 발품을 팔면서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이 불가능한 임대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치평가를 하면서, 아무래도 신축급 아파트니까 과거의 분양 당시 공급가가 궁금해져서 알아보았더니
지역 커뮤니티와 부동산블로그 등을 통해서 예전에 아파트 분양 당시 평당 770만 원 수준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27평형이니 약 210,000,000원 수준으로 분양이 되었을 테고
‘나는 경매로 분양가보다 3,500만 원 정도 싸게 살 수 있으면 만족’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입찰 전날 밤, 욕심을 좀 내려놓고 입찰표에 금액을 미리 써 내려갔습니다.
4단계. 입찰하기
입찰 당일, 마이너스 통장에서 입찰보증금으로 1,520만 원을 인출했습니다.
'조금만 덜 쓸까... '
미리 입찰표를 다 작성해서 갔지만, 막상 법원에 들어가니 욕심이 났습니다. 딱 한번 유찰된 물건이고, 지금 실제 거래되고 있는 시세와 별로 차이가 없는 입찰가를 써내려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더라고요.
그냥 눈감고 제출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해당 사건의 개찰이 시작되었습니다.
“ 2020 타경 100697 최고가매수신고액 175,001,000 써내신 주○○씨,
앞으로 나와주세요.”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제 이름이 호명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명도 하러 출발.
5단계. 명도 하기
이 물건의 경우는 명도가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제 낙찰금액으로 세입자는 보증금을 전액 회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만약, 이번 경우와 같이 세입자가 배당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다면 법원에서는 배당신청을 한 세입자에게 한 가지 숙제를 내주게 됩니다. 바로 ‘명도확인서’입니다. 낙찰자가 써주는 서류입니다.
세입자로부터 이상 없이 낙찰자가 집을 명도 받았다는 확인서인데요,
(명도확인서란, 임차인이 배당금을 수령하기 위해서 매수인에게 임차부동산을 명도 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입자는 낙찰자에게 이것을 작성받아 법원에 제출해야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리한 이사비를 요구하거나 낙찰자의 심기를 건드리면 낙찰자는 명도확인서를 써주지 않을 것이고 배당받아야 하는 세입자는 곤란해집니다. 간혹 명도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불이 붙어
낙찰자는 명도확인서를 써주지 않으려 하고, 매수인은 다른 방법을 통해 본인이 알아서 배당금을 찾겠다고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현실은 원만한 협의로 명도확인서를 주고받는 게 서로에게 이롭습니다.
사실 더 걱정이 없었던 이유는 이 집이 빈집 상태였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물건은 아래 그림과 같이 등기부등본상의 ‘임차권등기’가 있었습니다.
‘임차권등기’는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면서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했을 경우, 집문서인 등기부등본에 ‘여기 보증금 회수 못한 임차인 있습니다’ 하고 표기해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주택임차권이 등기되어 있는 집에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사 나가고 없는 사람의 보증금 회수 권리가 살아있는 상태기 때문입니다.
다시 명도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물건 역시 본격적인 명도에 앞서 낙찰 후 법원 경매계로 찾아갔습니다. 왜냐고요? 네, 서류열람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류열람은 명도공략집이라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이번에는 서류열람 했으나, 임차인의 연락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하나 알게 된 것은 ‘임차인의 직장명’이 기재돼있더군요. 그래서 네이버검색을 해서 직장으로 전화를 드렸고, 자재관리부서에 임차인과 동명인 분이 계시 다하여 다행히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연락드렸더니 명도확인서를 보내주면, 키를 택배로 보내준다고 합니다.
순간 갈등이 좀 되었습니다. 명도확인서 받더니 배당신청 하고 나서 갑자기 키는 안 주고 이사비 달라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문자로 나눈 대화 내용이 있으니,
혹여나 갑자기 말을 바꾸면 배당 전에 법원으로 연락해서 명도확인서를 무효화시키던지 사기죄로 넣던지 하면 되니까 신뢰의 징표로 명도확인서를 먼저 보내드렸습니다.
3일 뒤 카드키가 배송되어 왔습니다. 명도가 끝난 거죠.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오픈했습니다.
문을 열고 세입자분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비록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퇴거를 하셨지만
좋지 않게 나가는 순간에도 본인이 있던 자리를 깨끗이 하고 가셨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명도 이후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을 딱 맞춘 세입자 부부께서 바로 입주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유 만 2년이 지나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왔고,저는 고민 끝에 집을 시세보다 4~5천만 원 싸게 급급매 처리해서 3,200만 원의 순수익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