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주거지역 한복판에 있어서 비교적 눈에 띄는 나 홀로 아파트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집들은 대부분 노후하고 오래된 주택들이었죠. 관심은 갔지만 당시 이 아파트 역시 건령이 약 30년인 데다가 세대수까지 적어 앞으로도 재건축은 고사하고, 인근 재개발 이슈 역시 전혀 없었기에 ‘잘못 샀다가 낭패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보였던 저에게 1억 5천만 원의 감정가 대비 3회 유찰된 최저매각가는(79,360,000원, 감정가의 51%)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름 지역에서 살기 좋다는 인식이 자리한 동네에 있는 공급면적 30평대의 아파트여서 감정가의 절반 수준까지 유찰되었으니 호기심이 들었죠. 감정가가 너무 과대평가되었나?
아니, 과대평가도 근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지.. 그래 권리분석 후딱 보고 시세 조사 한번 해보자.
2단계. 권리 분석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정확히 보는 눈)
권리분석은 일반적인 경매사건들과 같이 특이점이 없었습니다.
말소기준등기인 1순위 근저당권보다 앞선 권리는 없었고, 경매사이트에서 제공한 세대열람내역서를 보니
점유자는 임차인이 아닌 소유자였습니다. 1순위 근저당권을 포함해 이하 모든 권리는 소멸,
대항력 있는 임차인 없음, 낙찰자가 인수할 권리가 없네? 오케이 권리분석 끝.
3단계. 가치평가 (시세조사, 어느 정도의 금액을 쓸 것인가)
먼저 이 아파트가 지금까지 얼마에 거래되어왔나 부터 확인하려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사이트부터 열심히 뒤적였으나 오래된 건물인 데다가 세대수까지 워낙 적다 보니 거래빈도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물건과 가까이 있는 비슷한 아파트들의 거래가액과 현재 나와 있는 매물들의 호가들을 찾아보며 비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확인한 것은 가까운 인근 중소형 아파트 단지 대부분의 집들이 30~40년이 건령을 넘어섰는데 현재까지도 거래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 해당 물건보다 작은 평수인데도 1억 3천 선에서 거래가 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200M 떨어져 있는 나 홀로 아파트는 비교적 젊은 건령이긴 했지만 같은 평수라도 2억 이상에 거래가 되고 있는 걸 보고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주변에 있는 빌라들도 쭉 살펴봤습니다.
실거래가와 직방이나 네이버부동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매물가를 확인했죠. 신축 빌라는 평당 600만 원, 10년 이상된 빌라도 평당 400만 원 선이었습니다. 그제야 지금 3회 유찰된 최저매각가 정도의 수준이면
저평가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확한 시세조사 지표가 부족하면, 주변 부동산들의 시세와 거래가를 조사해 비교한 후 적정 가치를 판단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는 지도와 로드뷰를 이용해 동네를 구석구석 살피며 대중교통편, 학교 위치, 직장과 인근공단 출퇴근 동선 등을 파악했습니다. 조사 결과 해당 물건 주변에는 도보권으로 백화점, 터미널, 공원, 대형마트와
지역 내에서 선호도가 높은 초중고 학군이 자리해 있어 주거수요는 굉장히 높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저 역시 직장 근처의 편의시설이 가득한 동네였기에 택했던 기억이 났으니까요.
실제로 가까운 거리의 대로를 건너면 지역의 대장 아파트들이 줄줄이 서있습니다.
법원에서 제공한 자료는 위와 같았지만, 저는 건축현황도 발급으로 내부 파악을 끝냈습니다. (앞 파트에서 말씀드린 대로)
책상머리에서 열심히 손품을 거친 뒤, 내일부터는 임장 가서 현장을 직접 느끼고 봐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해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직장동료들에게 해당 물건에 대한 생각을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정도였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점심시간에 직접 현장을 찾았습니다.
밖에서 한참을 멍하니 보았습니다. 외부샷시는 30년째 교체를 안 한 모양이고, 현관문 아래는 파손돼있었습니다. 미친 척하고 초인종을 눌러봤는데 초인종이 고장 난 상태였습니다. (사실 대부분 초인종 꺼놓습니다. 채권자들 때문에)
낙찰 시 투입될 인테리어 공사비용에 대한 불안감을 제쳐두고, 주변의 부동산들부터 싹 돌면서 열심히 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동산에서 들은 얘기 중에
30년 전 입주 당시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입주했던 아파트이며, 지하주차장부터 단지 조경 관리까지 지금도 훌륭하다는 것이었죠. (추가로 이 집의 현재 채무자인 소유자가 시의원 출신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오래된 아파트라도 거주요건이 좋아 낙찰 후 집 내부 수리만 되면 본인이 책임지고 매매든 임대든 중개하겠다는 소장님들도 두 분 이상 계셨습니다. 아파트 정문에 앉아 저녁 시간을 지켜보니 진짜 열이면 열 명이 어르신들이었고, 매물로 나온 집이 딱 한집 있어 부동산 소장님 도움으로 집도 구경하고 사람도 만나보았는데 1억 5천 이하로는 절대 팔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참, 희한하다..
그 이후로 임장을 두 번 더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건의 내외부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지만, 주변을 돌아보면서 이 집을 깨끗이 정리해서 월세를 내놓게 되면 시일 내로 연락이 올 것 같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시세조사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부동산 소장님 두 분께
말씀드렸습니다. “이 집 제가 낙찰받을 테니 월세 구하는 분 있으면 소개 잘해주세요”
입찰 전날 밤까지 입찰가를 얼마 써야 되나 고민을 했고 어렵게 최종결정 후 잠이 들었습니다.
4단계. 입찰하기
입찰 당일, 마이너스 통장에서 입찰보증금으로 800만 원을 인출했습니다. 도착했는데 법원에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3회나 유찰된 거라고 다 이거 보고 입찰하러 온 사람들 아니야?
그날 경매법정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경쟁자로 보였습니다. 나름 애정을 갖고 조사한 물건이다 보니 ‘더 써낼까...’ 혼란이 왔습니다만, 어젯밤 잠들기 전에 미리 적어둔 기일입찰표를 그대로 제출했습니다.
다른 경매사건들 개찰을 지켜보느라 서서히 지쳐갈 때쯤,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 2019 타경 100055 최고가매수신고액 95,870,000원 써내신 주○○씨, 앞으로 나와주세요.”
아이고, 낙찰이다. 입찰자는 4명.
‘드디어 낙찰이다.’ 확신이 있든 없든 낙찰의 순간은 돌이켜보면 항상 어리둥절했습니다.
큰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가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표정관리를 하느라 식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오는 길에 대출중개인들이 낙찰 축하한다면서 몰려들었습니다.
주는 대로 명함을 다 챙긴 후, 쿵쿵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법원을 빠져나왔습니다.
5단계. 명도 하기
당시,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경락잔금대출을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만난 대출상담사들부터, 입찰 전에 미리 알아보았던 은행 지점들까지 모두 비교해서 다시 한도와 금리를 비교해 봤죠. 그래서 한 곳을 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못 할 파격적 조건이었습니다.
고정금리 2.4%, 대출한도는 낙찰가액의 90%, 30년 분할상환!
이 수준이면 이자는 월 17만 원, 원금상환은 월 23만 원으로, 월세가 40만 원 이상만 되어도
세입자가 내 이자와 원금을 매달 갚아주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제로금리를 외치던 금융업계가 지금은 금리를 확 올려버렸죠. 그러면 앞으로 또 영원히 금리가 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금리인하 시기는 또다시 돌아옵니다. 반드시 반복됩니다. ‘경매해 봤자 금리 비싸서 낙찰받아도 손해다, 한도도 낮아서 소용없다’
이런 마인드로 접근하지 마시고, 이럴 때일수록 경매 낙찰가액과 낙찰률은 뚝뚝 떨어지므로 내공을 쌓으시며 때를 기회로 보시는 게 좋습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 명도가 남았습니다.
근데 하필 명도 대상이 집 소유주라니... ‘이 사람은 세입자도 아니고 집주인인데 여길 나가면 어디로 가야 된단 말인가’ 출발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당시 저는 무작정 그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 어머니 뻘 되신 사모님이 겁에 질린 얼굴로 나오시더라고요.
“이 집 경매 낙찰받은 사람입니다. 얘기 좀 나누시죠”
그분은 차분한 말투로 대답하셨습니다.
“집 앞에 커피마마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날 사모님께서는 저에게 본인은 아파트 첫 입주 때 들어왔으며, 열심히 살면서 남편은 지역 사회봉사도 많이 하셨고, 본인도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서 출가도 다 시켰는데 한 순간의 빚으로 인해 이런 악몽 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며 우셨습니다. 지금 남편은 사정상 같이 거주하고 있지 않으며 본인은 이 집을 비우게 되면 멀리 있는 동생네 집에 당분간 신세를 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수중에 돈이 없으니 퇴거를 원한다면 본인에게 300만 원을 도와주면, 원하는 시기까지 밀린 관리비와 공과금을 정리하고 이사를 가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하시죠,라고 답하고 싶었으나
3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초보인 저에게도 단번에 승낙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은 아니었기에 그날은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 저는 100만 원을 약속드렸고, 이분은 조금 더 요구하셨으나 나중에는 낙찰자가 이사비를 지급할 의무가 없는 것을 인지하시고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제가 봤던 이분은 동네에서 오랜 기간 부녀회장과 봉사단체를 하셨던 분으로서 성향상 남에게 피해 끼치는 것을 싫어하셨으며 가족 빚을 본인 명의 아파트 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이번 일을 겪으셨던 것이었습니다.
마음 아팠지만 이 분은 약속을 지켜 깔끔히 집을 비워주셨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잘 지내고 계시길 바라봅니다. 이후 비워진 집은 제가 주말 시간을 활용해 페인트칠도 하고 청소도 하며 최소비용으로 정리를 진행했습니다. 얼마 후 낙찰 소식을 전했던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님, 월세 50만 원 해서 5년 계약되냐는 데요? 5년 뒤에는 본인이 이 아파트 매입하시겠대요.
보증금 천만 원에 월 오십만 원, 5년 계약.
투자금 일부를 임대 보증금으로 다시 메우고 나니 실제 투자금액이 모두 다해서 2천만 원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월 대출 이자를 갚고도 33만 원의 임대수익이 발생했지요. 순수 투자금 대비 임대수익률이 년 15% 이상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입자가 요청한 대로 5년 뒤에 팔았다면 6,400만 원의 수익을 확정했겠지만 저는 사실 이 집을 더 오래 갖고 있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 아파트를 다음 해에 서둘러 세입자에게 매각했고 약 1년 뒤 1억 4천만 원에 매각해 최종 순수익 4,200만 원을 보았습니다.
이 경험으로 느낀 것은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본인의 조사와 현장의 감을 믿고 투자하는 것.
못생겨도 돈이 된다면 매력적 투자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