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 하늘을 얼기설기 걸친 선들 너머로 조각난 하늘이 보이고 새들이 높이 난다. 멀리서 까마귀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자동차 엔진 소리와 바퀴 굴러가는 소리도 들리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주머니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지난 밤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무겁고, 나른한 발걸음은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돌아서며 어떤 꿈도 꾸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한다.
나무들이 잠든 듯 조용하다. 그 너머로 뭉게 구름이 높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고, 체감 온도는 영하권이다. 어제 저녁 퇴근길에 날리던 낙엽들이 여전히 길 위에 구르고 있는데 갑작스런 한파에 모든 것이 꼼짝 없이 얼어 붙었다. 어떤 것이 끝나고 어떤 것이 시작될 때, 그 경계선은 정육점의 빨간 불빛처럼 아무리 겪어도 낯이 설다. 그래서 나는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조심스레 걸어나간다.
골목을 나서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어르신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경적을 울린다. 점점 많아지는 자동차와 사람들은 오늘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웃고 싶다. 찬 공기에 발가락이 간지러워 내려다보니 양말도 안 신은 채 로퍼만 신고 나왔다. 발치에서 낙엽들이 부스러진다. 나는 걸치고 나온 겨울 코트를 여민다. 삶은 계속된다. 더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