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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현 Oct 28. 2024

출근길 단상

한 남자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걸어간다. 오랜만에 입은 듯한 남색 정장은 작은 건 아니었지만 동생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어색하다. 겅중겅중 걷는 걸음 폼새도 추리닝과 슬리퍼가 더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비구름을 품은 날이 담배 연기와 촌스러운 남자의 외출을 어떤 의미로 감싸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몰라도 달콤씁쓸하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언제부터 꿈이 현실보다 더 좋아진 건지, 삶에 쏟아야할 열정이 꿈 속에서 내가 꿈을 현실보다 더 현실같이 살게한 건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는데 아직 새벽 4시였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꿈으로 되돌아 갔다. 기어이 아침이 와서 꿈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무채색의 일상이 나를 맞는다. 나는 잠시 얼떨떨한 채로 감정의 농도 차에 혼란을 겪다가 약한 분노를 느낀다. 꿈을 현실로 끌어오지 못하는 무력한 나를 이불에 남겨두고 하루를 시작한다.


나이와 비례해 꿈의 총량이 줄어들어 가벼운 탄식으로는 반복되는 현실의 더께를 걷어내고 빛나는 날 되찾지 못 한다. 내가 나인 것 만으로도 꿈에 부풀었던 어린 시절이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아이에게서 어른거린다. 나는 아이에게 좀더 많은 경험과 자유를 허용해야 할거라고, 방황조차 그 땐 꿈의 이름으로 찬란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넘어져도 비겁하거나, 비열해지지 않고 솔직했다. 때론 웃기도 하고, 때론 울어도 나는 아름다웠다. 삶은 영원처럼 느껴졌고, 내겐 벅찰 정도로 많은 기회가 남아 있다고 느꼈다. 가능성은 인생 그 자체였다.


약한 혐오를 느껴 아침을 먹지 못하고, 빈 속으로 현관을 나섰다. 축축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아침, 가을이지만 겉 옷을 걸치기에 부담스러운 날씨, 파랗게 마음이 질려도 길 위에 서서 정해진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걸까, 내가 어디서 잘못을 한 걸까. 후회하면 되돌릴 수 있을까. 아니면 씩씩하게 길 위에 선 채로 겅중겅중 걸어가야 할까.


사랑에 빠져봤다면 알 것이다. 카뮈는 말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불운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라고 그는 말했다. 생의 찬란함을 천형으로 알던 카뮈에게 인생은 꿈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는 잔뜩 찌푸린 하늘을 열어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하지만 꿈이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귀한 운명을 인간과 나누기로 작정한 거인이라서 그가 울 때 내가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고, 그가 웃도록 내가 하늘을 열어야 한다. 길 위에서 딱 내 걸음만큼만 걷고 있다. 퍼렇게 멍든 마음도 그대로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해야 할 지 내 심정을 알아주는 건 시지푸스의 운명 뿐이다. 내리막길에서 절망이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쌓여가 이제 꿈을 꾼다는 자체가 비겁하고, 비열한 짓처럼 느껴지지만 울고 있는 거인과 함께 울며 나는 그를 사랑할 것이다. 심장을 찢고, 삶이 부끄러워도 그를 위해서 새 하늘을 열 것이다. 마치 돈키호테처럼 나는 내 어둠을 무찌르고 그를 위해 새 세상을 창조할 것이다. 달콤씁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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