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길은 없다. 어릴때부터 걷는 것을 좋아해서 많은 날, 많은 시간들을 걸어다녔다. 오늘처럼 지치고, 몸이 무거운 채로 걷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17살, 많은 고민을 품고 있을 때였다. 그때와 다를 건 없다. 출근길을 포기하고 집에 들어가서 도로 눕고 싶은 기분이 급습했지만 나는 내가 이 길을 사랑하는 사실을 안다.
때때로 내가 스쳐 지나가는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처럼 내가 약하다는 기분이 든다. 걷는 것을 포기하고 버스를 타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고, 이렇게 걸어선 울퉁불퉁한 길 위에 주저 앉아 백기를 들고 사무실에 전화를 걸 것만 같다. "저 오늘은 일하기에 적당한 컨디션이 아니예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기력도 없어요. 저 좀 어떻게 해줄래요?)"
하지만 길처럼 명백한 사실은 연차가 단 하루도 남지 않았고, 나는 올해 남은 삼 개월 간 출근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와 길 섶 가로수들이 증언하길 오늘 난 몸이든, 마음이든 간에 아프다. 하지만 연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내게 일깨워주는 것 같다. "넌 불평은 많아도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개근상만은 놓치지 않은 애야."
길은 나의 운명이다. 오늘도 걷는다. 동네가 살아나는 걸 곁눈질하며 이 글을 쓰면서 걷고 있다. 지하철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씩씩한 행렬, 며칠 간 이어진 강풍에 날린 낙엽을 쓸며 하루를 여는 가게 주인들, 어디론가 달려가는 버스들과 불평을 하고 싶은 입에 담배를 물고 우직하게 주유하며 일을 하는 주요소 직원들.. 모두 안녕하다. 나도 그렇겠지.
쓰레기를 수거하는 차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내게 명백한 아침을 선언하며 지나간다. 나는 일하는 소리들이 좋다. 아직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지만 내 발이 기억하는 내 일터로 나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씩씩하게 나아간다.
어제는 야근을 했다. 퇴근 시간을 훌쩍 지나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을 때 항상 만원이던 지하철은 넉넉하게 날 맞았다. 아무 빈 자리에나 몸을 던지고 나는 집을 꿈꾸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땐 아이가 먹고 설겆이통에 담가둔 그릇들과 빨래통에 벗어놓은 옷들과 하나도 정리가 안 된 집이 개구진 아이처럼 웃으며 날 반겼다. 나는 소탈하게 웃어넘기며 너는 있는 그대로도 아름답다고 다독이고 이부자리에 쓰러져 이불을 끌어당겨 현실을 덮었다.
인생은 완벽하지 않다. 때때로.
하지만 그런 날들과 그렇지 않은 날들이 교차하며 일상이 이루는 앙상블에서 나는 부족함을 느끼진 않는다. 내 삶은 적당하다. 무엇보다도 오늘이 금요일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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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쓴 글이다. 그 뒤로 몹쓸 감기가 독하게 지나갔고, 월요일엔 출근하다 말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지금도 콜록거리고 있다. 심지어 의사선생님에게 목의 점이 흑색종일 수 있으니 조직 검사를 받아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병원 예약을 간신히 하고 보니 내년 3월 말이다. 남을 탓하고 싶진 않지만 파업때문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평범한 해프닝, 또는 너무 늦은 진단.
난 만약에 너무 늦더라도 남을 탓하며 죽고 싶진 않아서 즐겁게 3월을 기다리기로 했다. 멋진 날들을 보낼 것이다. 즉, 늘 그랬듯이 완벽하진 않아도 나는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좋아하는 밴드의 내년 공연 일정을 받으려고 sns를 다시 시작했고, 새벽에 일어나서 어제 읽던 사이코패스에 관한 소설을 계속 읽었으며, 출근하기 위해서 씻고, 담배도 두 대나 피웠다. 그리고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다.
집을 나서서 올려다 본 하늘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감사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