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시선
등장인물:
마커스 (인간): '지구 통합 입국 관리국'의 심사관. 과도하게 친절하고, 과도하게 세련됐으며, 'PC(Political Correctness)' 용어를 남발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편협하다.
크로그 (외계인): 규소 기반의 암석 생명체. 온몸이 거칠고 뾰족한 흑요석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소리는 돌 굴러가는 소리처럼 굵다.
[SCENE START]
장소: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얗고 깨끗한 심사실.
마커스가 서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맞은편에는 의자가 부서질 듯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크로그가 앉아 있다. 크로그의 몸에서는 간헐적으로 붉은 마그마 빛이 새어 나온다.
마커스: (과장된 제스처로) 오, 크로그 씨. 당신의 종족, '리소이드' 분들을 뵙는 건 정말 영광입니다. 당신들의 그... 텍스처? 질감? 정말 끝내줘요. Authentic 하잖아요. 날것 그대로의 그 느낌.
크로그: 고맙소. 우리는 4천 년간 이 형태를 유지해왔...
마커스: (말을 자르며) 바로 그거예요! 4천 년! 그 역사! 그 깊이! 우리 지구는 다양성을 사랑합니다. 정말 미친 듯이 사랑하죠. 우리는 무지개예요. 우리는 샐러드 볼이라고요.
크로그: 그래서, 입국 비자는 나오는 건가?
마커스: (입술을 쩝 다시며 곤란한 표정) 음... 네. 물론이죠. 나오죠. 나오는데... 아주 작은, 정말 아주 미세한... '조정' 절차 하나만 거치면 됩니다.
크로그: 조정?
마커스: 네, 그냥 뭐랄까. '문화적 연마(Cultural Polishing)'라고 해두죠.
크로그: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이건 내 긍지다.
마커스: (손사래를 치며) 오, 오, 진정하세요, 빅 가이.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우린 그냥 당신이 조금 더... '접근 가능'해지길 바라는 것뿐이에요.
크로그: 접근 가능?
마커스: 솔직해져 봅시다, 크로그. 당신 지금... 좀 뾰족해요. (손가락으로 크로그의 어깨 뿔을 가리키며) 저거 보세요. 저 예리한 각도. 아이들이 저걸 보고 안아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아이들은 피를 흘릴 거예요. 우린 피를 원하지 않아요. 우린 포옹을 원하죠.
크로그: 나는 전사다. 아이를 안을 일은 없다.
마커스: (답답하다는 듯) 아, 크로그. 여긴 지구예요. '전사'는 비디오 게임에나 있다고요. 당신은 여기서 회계사나 바리스타가 되어야 해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내리는데 손님이 "아악! 바리스타 팔꿈치에 찔려서 내 경동맥이 나갔어!"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그건 다양성이 아니에요. 그건 산재죠.
크로그: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가. 내 껍질을 깎아내라는 건가?
마커스: (속삭이듯) 깎다니요. 야만스럽게. 우리는 '업그레이드'를 할 겁니다.
(마커스가 책상 아래에서 고글 같은 기계 장치를 꺼낸다. 렌즈가 초록색으로 빛난다. 옆면에는 'MEDUSA-X'라고 적혀 있다.)
마커스: 이게 당신의 분자 구조를 아주 살짝 재배열해 줄 겁니다. 고통은 없어요. 그냥... '찰칵' 하면 끝이죠.
크로그: 그게 날 어떻게 만드는데?
마커스: 당신을 '클래식'하게 만들어줍니다. 시대를 타지 않는 아름다움. 들어봐요, 크로그. 흑요석? 화강암? 너무... 투박해요. 너무 '지질학적'이라니까요. 우리는 좀 더... '미술관적'인 걸 원해요.
크로그: 미술관?
마커스: (흥분하며) 네! 하얗고! 매끄럽고! 우아한! 대리석 말이에요! 생각해봐요, 크로그. 당신이 매끄러운 이탈리아산 대리석이 된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당신 옆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할걸요? 비둘기들이 당신 어깨에 앉아서 평화를 노래할 거예요!
크로그: 난 하얀색이 되기 싫다. 난 검은색이 좋다.
마커스: (정색하며) 와우. 크로그. 방금 그거 좀... 위험한 발언이었어요. 색깔을 따지다니. 우린 지금 '재질'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왜 자꾸 인종 문제로 끌고 가요? 지금 당신이 분위기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거 알아요?
크로그: (당황하며) 아니, 내 원래 색이...
마커스: (말을 자르며) 당신은 지금 '다양성'을 거부하고 있어요. 우리는 당신을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겠다는 건데, 당신은 고집스럽게 뾰족하고 시커먼 돌덩이로 남아서 위협감을 주겠다고요? 그게 당신이 말하는 공존입니까?
(침묵. 크로그는 혼란스럽다. 마커스의 논리는 말이 안 되지만, 너무나 당당해서 반박하기 힘들다.)
크로그: ...그냥 매끄러워지기만 하는 건가? 내 의식은? 내 생명은?
마커스: (가볍게) 아, 물론 100% 보존되죠! 단지... 움직임이 좀... '절제'될 뿐이에요.
크로그: 절제?
마커스: 네. 아주 고요해지죠. 명상적인 상태랄까? 걱정 마세요. 요즘은 '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이 트렌드니까.
(마커스가 기계 장치를 크로그의 얼굴에 갖다 댄다.)
마커스: 자, 웃으세요. 다양성이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3, 2, 1.
(강렬한 녹색 섬광)
(치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가 걷히면, 크로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더 이상 흑요석 괴물이 없다.)
(대신, 완벽하게 조각된, 르네상스 스타일의 백색 대리석 조각상이 있다. 근육은 과장되게 묘사되었고, 포즈는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을 괴고 있다. 표정은 공허하다. 완전히 굳어버린, 완벽한 서양식 조각상이다.)
마커스: (조각상을 톡톡 두드리며) 세상에. 이것 봐. 질감 미쳤네.
(마커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조각상에 '입국 허가: 모범 시민' 스티커를 이마에 딱 붙인다.)
마커스: (인터폰을 누르며) 다음 분 보내세요. 아, 그리고 관리팀? 여기 로비에 놓을 '장식품' 하나 나왔으니까 카트 좀 보내줘요.
(문이 열리고 다음 외계인이 들어온다. 액체로 된 슬라임 생명체다.)
마커스: (다시 활짝 웃으며) 오! 환영합니다! 액체 생명체시군요! 너무 멋져요! 너무 유동적이야!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좀 축축하잖아요? 우리 바닥 카펫이 비싸거든요. 당신을 좀 '건조하고 딱딱하게' 만들어도 될까요? 역시 대리석이 좋겠죠?
(카메라가 줌아웃하며 마커스의 사무실 뒤편을 비춘다. 그곳에는 이미 수십 개의 백색 대리석 조각상들이 '다양한' 포즈로 굳은 채 전시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재질, 똑같은 미적 기준을 가진 채 완벽한 침묵 속에 갇혀 있다. 마커스가 콧노래를 부르며 슬라임 생명체에게 기계를 들이댄다.)
(강렬한 녹색 섬광)
(슬라임 외계인 역시 완벽한 대리석 조각상으로 변한다. 이번에는 비너스상 포즈다.)
마커스: (만족스럽게 기계를 내려놓으며) 완벽해. 오늘도 지구의 평화를 지켰어. 다양성 만세!
(마커스는 기지개를 켜고는 책상에 놓인 거울을 본다. 자신의 완벽한 헤어스타일과 미소를 확인한다.)
마커스: 넌 정말 대단해, 마커스. 넌 진짜 '깨어있는 사람이야.
(그때, 책상 위에 놓아둔 'MEDUSA-X' 고글이 저절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초록색 렌즈가 불길하게 깜빡인다. 마커스는 눈치채지 못한다.)
마커스: (거울 속 자신에게 윙크하며) 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
(고글의 렌즈가 완전히 초록색으로 빛나며, 렌즈 안쪽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그것은 뱀의 형상이다. 마커스가 고개를 돌려 고글을 본 순간, 고글이 렌즈를 통해 강렬한 빛을 쏘아 보낸다. 이번엔 마커스의 얼굴을 향해서.)
마커스: (당황하며) 어? 잠깐, 이거 왜 이래? 작동 버튼이...
(강렬한 녹색 섬광)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잦아들고, 연기가 걷힌다. 마커스가 있던 자리에는, 그가 평소에 짓던 '과장되게 친절한 미소'를 띤 채 굳어버린, 실물 크기의 백색 대리석 조각상이 서 있다. 그의 손은 여전히 자신의 완벽한 머리를 쓸어넘기는 포즈를 하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줌아웃하며 사무실 전체를 비춘다. 사무실 뒤편을 가득 메운 수십 개의 외계인 대리석 조각상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똑같은 재질과 색깔로 굳어버린 마커스의 조각상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섞여 있다. 그토록 찬양하던 '획일화된 다양성'의 일부가 된 것이다.)
(책상 위의 'MEDUSA-X' 고글은 여전히 초록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