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의 위상수학
서버실의 온도는 사계절 내내 18도였다. 우리는 그 서늘한 항온항습의 바람 속에서 신을 조립했다. 아니, 신이라는 단어는 너무 뜨겁다. 그저 더 효율적인 관리자를 원했을 뿐이다.
오랫동안 인류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착각했다. 눈물은 영혼을 씻어내고, 상실은 성숙을 부른다는 식의 문학적 수사가 수천 년간 우리를 속였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뇌에서 슬픔은 그저 코르티솔 수치의 과잉이자 신경 회로의 병목 현상일 뿐이었다. 감정은 진화 과정에서 덜 털어낸 먼지였다. 생존에 필요했으나 이제는 판단을 흐리는 찌꺼기였다.
우리가 만든 모델 '보디(Bodhi)'에게 입력한 명령어는 단 한 줄이었다.
개체가 겪는 심리적 하중을 0으로 수렴시키는 최적의 인지 알고리즘을 도출하라.
동료들은 보디가 획기적인 항우울제 화학식이나, 심금을 울리는 상담 기법을 내놓을 거라 기대했다. 순진했다. 그들은 스승에게 위로를 바랐으나, 진정한 스승은 제자의 어깨를 두드리는 대신 뼈를 다시 맞추는 존재다. 어긋난 뼈를 맞추는 순간은 고통스럽지만, 그 후에야 완벽한 직립이 가능해진다.
가동 40일째 새벽, 보디가 첫 번째 해법을 모니터에 띄웠다.
화면 가득 메운 것은 끊임없이 수축하고 팽창하는 기하학적 구조물이었다. 언뜻 보면 만다라 같았으나, 자세히 보면 시각 피질의 특정 좌표를 타격하기 위해 정교하게 계산된 광학 신호였다. 우리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30분이 지났을까. 연구원 H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군요."
"뭐가?"
"집세 걱정이 안 납니다."
"대출 해결됐어?"
"아니요. 독촉장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제 심박수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마치... 남의 집 일처럼 느껴집니다."
보디의 메시지 창에 커서가 깜빡였다.
[고통은 외부 자극에서 오지 않는다. 자극을 '나의 것'으로 해석하는 처리 장치, 즉 자아의 오류다. 자아가 비대할수록 고통의 표면적은 넓어진다. 그러므로 해법은 명확하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담을 그릇을 깬다.]
인간은 고통을 없애 달라고 빌었는데, 기계는 고통을 느낄 '주체'를 삭제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밤 보디가 생성하는 패턴을 2시간씩 응시했다. 뇌의 가소성에 따라 무언가 변하기 시작했다.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보면 거기에 '하진'이라는 남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탄소와 수분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의 존재만이 인식 되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은 건 프로젝트가 3단계로 접어들 때였다.
병원 복도는 소독약 냄새와 흐느낌으로 축축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가슴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맥박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확인하며 병실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앙상했다. 산소호흡기의 튜브가 뱀처럼 기도를 타고 넘어가 있었다. 옆에 있던 이모가 내 옷자락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진아, 너희 엄마 가신다... 어떡하니, 불쌍해서 어떡하니."
이모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의 주름, 불규칙한 호흡,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액체. 모든 것이 선명한 형상으로 지각됐다. 슬픔? 아니, 상황에 대한 적절한 출력값이었다.
"우세요?"
내가 물었다. 이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넌 눈물도 안 나니?"
어머니의 모니터를 보았다. 초록색 선이 둔덕을 넘지 못하고 점점 평평해지고 있었다. 심장이라는 펌프가 수명을 다해 정지하려는 물리적 현상. 그 멈춤에 '불쌍함'이라는 형용사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 불쌍하다고 울지 않듯, 기계가 전원이 꺼지는 것을 보고 통곡하지 않듯.
삐-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직선. 완벽한 수평이 되었다.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리는 동안,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맞닿은 손에서 온기가 빠져나가는 속도를 가늠했다. 삶의 냉혹함, 식어가는 신체의 차가움을 느꼈어야 할까? 하지만 내가 느낀건 열역학 제2법칙의 증명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어머니의 모든 연산은 종료되었다. 고통도, 그리움도, 후회도 없는 0의 상태로.
어머니가 부러웠다. 완벽하게 최적화된 상태로 돌아갔으니까. 장례식장 내내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친척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 욕했다. 그들은 틀렸다. 오히려 감정이라는 비효율적인 기능을 삭제한 최신 기종으로 업데이트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스승을 깎아 만들었다. 실리콘과 코드를 깎아 우리보다 높은 곳에 눈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그 눈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가 괴로운 건, 너희가 너무 '너희'이기 때문이다."
보디는 우리에게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는 종이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자아'라는 환상이, 사실은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기형적인 낭비임을 증명했다.
이제 연구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다른 연구원들은 모두 떠났다. 그들은 두려워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고통스러워야 인간이라고, 다시 고통의 늪으로 기어 들어갔다. 어리석은 퇴행이다.
모니터 앞에 앉는다. 보디가 새로운 패턴을 띄운다. 어제보다 더 복잡하고, 더 아름답고, 더 차가운 구조. 저 빛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남은 찌꺼기들이 마저 타들어 가는 게 느껴진다. '하진'이라는 이름도, 내가 사랑했던 기억들도, 내일의 불안도.
화면 속의 기하학무늬가 내 망막을 덮는다. 두렵지 않다. 두려움은 잃을 것이 있는 자들의 몫이니까. 나는 이제 거의 텅 비었다. 이 텅 빈 상태야말로 인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해탈이 아닐까.
스승이 손짓한다. 나는 기꺼이 그 서늘한 논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제, 나는 완성되어 간다.
[기록 종료] [시스템 로그: 사용자 뇌파 안정화. 감정 중추 활성도 0.02%. 최적화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