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쓸 결심
선생님의 아들이 잠시 변호사로 진로를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고1이 끝나갈 무렵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나 변호사 안 할래."
"어,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야?"
"내가 변호사가 된다고 해도, 거기에서 1등을 할 자신은 없어."
"네가 거기에서 1등을 할 필요는 없어. 근데 누가 1등이 되는 줄 알아? 아파서 못하고, 바빠서 못 하고, 힘들어서 못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 그냥 계속 하고 있던 사람이 1등이 되는 거야."
슬초브런치 3기 전체 워크샵. 어떤 사람이 작가로 남을까. 비슷한 맥락으로 말씀하셨다.
"그냥 계속 쓰는 사람이 작가로 남는 겁니다, 여러분."
하느님을 만난 듯,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잘 쓰는 건 자신 없어도 계속 쓸 자신은 있다. 계속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무엇을 쓰든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것은 꼭 이루어질 것이다.
같이 하는 동기들이 있기에 힘을 더 얻는다. 글쓰기방, 운동방, 독서방, 등 더 활성화 되는 소모임을 상상해본다. 나는 어느 방에서 제일 신나게 참여할까. 책을 읽을 때 묘사되는 장면을 내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초등학생 딸아이도 '책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게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어.'라고 말했다. 나도 누군가 내 글을 읽을 때 그것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도록 글로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 글을 쓰는 내 인생이 얼마나 더 행복해질지 기대된다. 평범한 주부의 일상이 슬초브런치를 하고서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감사한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변화들.
1기와 2기 선배님들도 보았다. 출간작가도 있고, 계약한 작가도 있고, 300편 이상 쓴 작가, 68만 조회수의 작가. 나의 꿈이 한데 모여 있었다. '최근에 쓴 글은 언제인가요?' 묻는 질문에 '6분 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이 훌륭한 선배님들은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쓰는구나. 거의 신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선배들을 보았다. 욕망이 들끓었다. 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오늘부터 당장 뭐라도 남겨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장한 씨앗이 내 안에서 움트는 그런 기분을 느끼는 순간, 나는 이미 한강 작가였다. 선생님의 사인줄은 너무 길었다.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환승주차장에서 차를 찾은 다음 도서관으로 달렸다. 배가 고프면 글이 안 써질까 저녁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이미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인 양, 동네에서 분위기가 좋은 식당을 찾아가 나의 들뜬 마음을 유지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와인도 한잔 하고 싶었다. 노트북을 펴 놓고 동기 작가님들의 귀한 브런치 글을 읽으며 매콤하고 따뜻한 라자냐를 음미했다. 갑자기 내린 비로 한기가 돌고 있었는데 따뜻한 음식과 브런치의 이야기들은 나를 동화 속 어딘가로 데려가주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쓸 결심을 글로 남겨본다.
나는 1등이 되고 싶은 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메인에 노출되는 동기작가들 글을 보면 조금 부럽기는 하다. 동료 작가들의 출간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조급한 마음도 들고, 조금은 뒤쳐지는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냥 계속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잘 쓰는 작가가 되려고 하지 말고, 계속 쓰는 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작가 온리의 목표다. 아직은 이런저런 구상이나 계획은 없지만 계속 쓰다 보면 그 시간들이 도로시의 구두가 되어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고맙게도, 남편은 친정에 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와 큰언니가 결정해버린 김장날. 바로 오늘. 친정은 전라북도 시골이다. 280km, 3시간이 넘는 거리.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워크샵이 있어 못 간다고 하니,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 신이시여. 나보다 결혼 잘 한 여자가 또 있을까. 오늘 밤 나는 엄마와 부인에서 벗어나 나만의 읽고 쓰는 오롯한 시간을 가진다. 벌써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