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2년, 그리고 대학원 6년을 공부했으니 사회적 틀 안에서 무려 18년이란 시간을 배움에 사용한 셈이다. 첫 직장은 대학을 마치고 취업한 반도체 회사였다. 새로운 소자와 공정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배치되었는데, 내게 주어진 업무는 어려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순 반복되는 것으로 보였다. 업무에서 다루는 기술 지식은 학부 졸업 신입 사원이 제대로 소화하기에 다소 벅찬 수준이었지만, 일상적으로 수행한 일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루틴과 매뉴얼을 따르면 익숙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회사에 취직하여 첨단 기술 개발 연구소에서 근무한다는 막연한 자부심과 꼬박꼬박 지급되는 월급이 사회 초년생에게 주는 경제적 자신감은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대학원 유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한 결정이 옳았음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3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을 무렵, 회사 생활과 업무에는 그럭저럭 익숙해졌는데, 엔지니어로서의 실력은 정체되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전문 서적을 따로 공부하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아도 크게 발전이 없었다. 전문가로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던 의욕을 단편적인 조각 공부로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내가 하는 일에서의 성취감과 인정받음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 단정하니 취업으로 묻어 두었던 미국 유학을 다시금 결심하게 되었다. 첫 직장 생활은 ‘일의 의미와 성장’에 대해 고민을 한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도전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6년여 미국 유학에서는 첫 직장에서 했던 반도체 분야가 아닌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공부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연구가 활발했고, 소모적이지 않고 환경 파괴적이지 않은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취업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석박사 학위 과정을 마칠 무렵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래 유망 사업으로 인식되어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관련 사업을 시작하고 있던 터라 좋은 취업 기회가 여럿 있었다. 이번에 선택할 직장은 내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야 했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단기적인 수익 추구를 넘어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로 가져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구 개발 조직의 책임자로서 기술 개발 로드맵과 운영 계획을 만들고, 함께 일할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으로 두 번째 직장에서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 개발 투자와 사업화 검토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무수히 반복되었던 경영진 보고 회의는 첫 직장에서 조직의 구성원으로 일할 때는 알지 못했던 조직 책임자의 중요한 업무였다. 5명으로 시작한 조직이 100여 명으로 커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성원들과 함께 실험하고 토론하며 기술적 성장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던 초기와는 달리 조직이 커지고 분업화되면서 나의 정체성은 엔지니어에서 기술 경영자로 변하고 있었다. 기술에 대한 관점은 깊이 보다 넓이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연구 개발 방향성과 사업적 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구성원들과 기술을 토론하는 시간보다 의사결정권자들과의 사업화 논의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성장하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변질되고 있었던 것인지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떠나면서 ‘일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대학원 공부는 내가 지식적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약해지지 않는 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정리한 방향성은 이랬다. 내가 하는 일에서의 성취와 성장이 나만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어떻게, 얼마나? 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지는 못했다. 단지 그런 방향이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학원에서 석박사 연구 주제를 신재생에너지로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 화석 연료보다 깨끗하고 더 경제적인 에너지기술을 개발해서 환경에 도움이 되고 에너지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그런 세상이 되도록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두 번째 직장에서 신재생에너지 연구 개발과 사업화 일을 하면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조금 확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하려던 신재생에너지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은 큰 비용과 많은 기술 인력을 필요로 한다. 나를 고용한 회사의 투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회사는 결과 없는 투자를 절대 하지 않는다. 신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해서 투자금을 회수하고도 남을 정도의 이윤이 보장되어야 연구 개발 비용을 투자하고 제품 생산을 위한 공장을 새로이 만들 수 있다. 회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단지 개발 성공의 성취감과 나의 직업적 성장에 그치지 않는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환경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동시에 회사가 공장을 세우고 직원을 고용하면 나와 직접 관계없는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에도 기여하는 것은 아닐까! 회사는 이윤을 확보하여 그다음 기술과 제품 개발 활동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게 되고, 나와 회사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필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되는 셈이 아닐까! 내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의미는 이런 것이라 정의했다. 새로운 개발 과제의 목표를 좀 더 도전적으로 세우고 싶은 이유, 일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거나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질 때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조직의 정치 게임에서도 일의 본질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세 번째 직장, 네 번째 직장에서도 내가 정의했던 그 의미는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차이는 분명하다. 직장에서 일이란 것은 고용주를 위한 것이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일차원적인 관계를 피고용인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일에 자신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 일을 통해서 자신의 성장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 일이 돈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직장을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더 이상 직장에서 했던 일을 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다른 이의 투자가 필요치 않은 일을 하려 한다. 내가 정의했던 일과 성장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