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썰다가 쓰는 글
가을 무 달디 단 가을무의 계절이다.
무는 달지만 나는 쓸쓸해지고 몸은 차디찬 공기에 알레르기가 와서 코는 훌쩍임의 연속이다. 코끝 빨갛게 코를 풀다가 마트에 가을무를 사러 나가본다.
마트에서 아랫둥이 초록인 실한 무를 집어왔다. 매일 아침을 차리면서 저녁메뉴는 무엇을 차리지를 고민한다.
오늘은 무생채이다. 무 하나를 채로 썰어야 한다.
신혼 초 바들바들 떨며 칼을 들고 아주 거북이 같은 속도로 투박하게 썰어내던 나에서 지금은 십 년의 경력을 가진 칼숙련자가 되었다. 가진 칼을 둘러보니 세 식구 살림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과일칼, 빵칼, 중식도, 주방식칼, 용도 모를 칼들까지.
시어머니가 사주신 유명한 쌍둥이칼을 한 자루 슥슥 칼갈이 갈아서 날카롭게 만들면 일단 첫 번째 준비가 완료됨이다. 시어머니는 왜 칼을 사주셨을까? 칼부터 마스터해 보라는 뜻이셨을까?
"옛날엔 이런 칼이 주부의 로망 아니가" 하고 사주셨는데 정작 그때의 나는 쌍둥이칼이 유명한지 몰랐다.
칼로 무를 촥촥 썰다가 십 년을 써니 이렇게 채칼 없이 채칼과 겨루듯 채를 치는 사람이 된 나를 발견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길이 뚫리고 핸드폰은 3g에서 5g가 되었고 이제 질문은 AI가 알려주는 세상에서 나는 칼잡이가 된듯하다.
김밥을 싸든, 빵을 먹든, 묵은지를 꺼내든 나는 칼을 쥐고 산다.
십 년 동안 글을 쓰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을 해본다. 착착착 무 채 썰 듯 글이 술술술 나오게 되는 경지에 이를 것인가. 감히 상상해 본다.
칼로 채 썰기가 하루아침에 되지 않듯, 글쓰기 역시 지름길이 없다.
꾸준히 써 보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매일 칼잡이가 되어 주방에 서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글을 꾸준히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잘 쓰려하지 말기
멋지게 유려하게 잘 쓰려하다가 몇 줄 쓰기도 전에 좌절을 만날 수 있다. 이내 포기해 버린다. 이건 안 쓰는 것보다 더 최악의 결과인 듯하다. 절필을 해버릴지도
수영을 할 때도 더 잘 나아가려면 쓸데없는 부분에 힘을 빼고 조절을 잘해야 한다.
악기 연주도 마찬가지 모든 부분에 힘주어 연주를 해서는 좋은 연주를 할 수 없다.
글도 매우 힘주어 쓰기보다는 일단 마구 써본다. 퇴고라는 과정이 있으니 한 줄이라도 써보기라도 하는 것이다. 초등 선생님들 중 아이들에게 매일 세줄 쓰기를 지도하시는 분이 있다. 어떤 것을 써도 좋고 평가하지 않으신다. 처음엔 한 줄 쓰기도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학기말이 되어서는 세 줄 이상 술술 쓴다고 한다.
2. 적절한 때와 적절한 장소를 찾지 말자.
글쓰기에 적절한 때란 없다. 지금이 그 때다.
학창 시절 잘 정돈된 책상에 반듯하게 필기구를 줄 세워 놓고 먼지 한번 닦으며 마음의 준비만 십 수 번 하고 대차게 공부하려 하니 금세 피곤해 잠이 왔던 경험이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거창하게 준비하고 고민하다 시간이 지나간다. 연거푸 커피만 마시고 있다. 스마트폰을 열어 글쓰기 조각을 모아보자. 조각조각들이 언젠가는 큰 흐름으로 이어져 내 글로 탄생할 지도.
3. 타고난 글솜씨가 없다면 흉내라도 내서 써보자.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문체를 흉내라도 내어 써본다. 솔직히 이 부분은 흉내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만큼 나에게 필요한 연습이 아닐까 한다.
좋은 문장을 보고 있으면, 그 안에 담긴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얼마나 섬세하고 풍부한지 느껴진다. 그렇게 느꼈던 표현들 중 나만의 색깔을 입히자.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내 문체를 찾고, 나만의 표현방식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를 썰다가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며 김영하 선생님처럼 깊은 사유의 능력을 가질 순 없겠지만 바라보는 방향으로 글을 쓰게 되리라.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며 글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