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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복현 시인 Oct 24. 2024

같은 1학년

수화하는 누나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아나운서 곁에서 이상한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거리는가 하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팔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열심히 수화를 하는 누나를 본다.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세상에는 소리를 잘 못 듣는
사람이 참 많다고 하신다.
 
입술을 씰룩거리며 손짓 몸짓을 하는

누나가 참 우습기도 했지만

고마운 누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하는 누나, 고마워요!

호호호   






수줍은 능금
 



능금은
볼이 참 빨개요.
 
부끄럼 많이 타는
우리 누나 같아요.
 
잘생긴 옆집 수혁이 형이
힐끗 쳐다만 보고 지나가도
 
금방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돌아서서 도망치듯이
문 닫고 방안으로 쏙

숨고 말지요.
 
볼이 빨간 능금은 꼭
예쁘고 부끄럼 많이 타는
우리 누나를 닮았어요.
 
능금을 누나라고 불러볼까요?

누나를 능금이라 부를까요?                                                       






자판기         

 



나는 초등학생
나이가 어려서 큰누나처럼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다.
 
장난감 하나 사는 것도
엄마 눈치를 봐가면서
해해 웃고 애교를 부리며 사정해야 하니,

휴- 용돈 한번 타내기가 너무 힘들어!
 

그런데 자판기는 말도 할 줄 모르는 대도

돈벌이 장사를 곧잘 하니 부럽다.
 
나는 자판기보다도 못한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성적이 좋거나
하기 싫은 심부름을 잘 해내면
용돈을 주시곤 하지
 
나도 자판기처럼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부러워할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하지만 말도 못 하는 자판기가
물건을 팔고 돈을 번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하지만 자판기야!
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너도 이제 알았으면 좋겠어.  






하필이면 수업 시간에
      



하필이면 수업 시간에
호주머니 속 구슬이 빠져나와

떼구루루-

교실 바닥으로 떨어질 게 뭐람!
 
바지 주머니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줄도 모르고서
자습 시간에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구슬치기 하던 것을
주머니 가득 빵빵하게 넣어뒀으니!
 
말없이 빙긋이 웃으시던
담임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게 뭐야, 구슬 다 이리 가져와, 압수야, 압수"
 
내 얼굴이 빨개졌다.
 
아 참, 내가 바보지!
혼나도 정말 할 말이 없다.






고마운 청소기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자마자
나는 동생과 이부자리를 개고
어머니는 신나게 청소기를 돌린다.
 
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남들이 더럽다고 싫어하는 것들을
청소기는 닥치는 대로 날름날름
다 먹어 치운다.
 
요리조리 구석진 곳까지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는 모두 깨끗하다.
 
오늘 아침은
청소기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다.
 

참 고마운 청소기


청소기는 제 할 일을 다 마치고는

조용히 입 다물고

다시 부를 때까지 언제까지나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다.  





나무들은 참 이상해
 


나무들은 참 이상도 하지
 
땡볕 내리쬐는 여름철엔
푸른색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찬 바람 쌩쌩 몰아치는 한겨울엔

옷을 홀라당 벗은 채로

알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산기슭에 서 있는지 몰라
 
엄마에게 이유를 여쭤봤더니
나무들은 옷을 갈아입을 때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그렇지
가을에 헌 옷을 훌훌 다 벗고 나면
봄이 되어서야 겨우 새 옷 한 벌

갈아입을 수 있다니,
 
그 거참 이상하죠?
우린 금방 다 갈아입을 수 있는데 말이죠.






같은 1학년  


              


방학을 맞아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셨다.      


내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

외할머니는 노인학교 1학년

둘 다 1학년이다.      


동생이 한글 시간에 배운 글자를

노트에 쓰고 있으면

외할머니도 내 동생 곁에 앉아

나란히 노트를 펼쳐놓고

또박또박 따라 쓰신다.      


내 동생이 삐뚤빼뚤 써나가면

외할머니도 따라서

삐뚤빼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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