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2층에서 내려오던 남편이 다급하게 날 불렀다. 창밖을 가리키면서 고양이 새끼를 보란다. 내려다보니 노란 털 새끼 고양이 두 마리와 검정 털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목공방 옆 울타리 사이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려고 안경을 가지러 갔다 온 사이 새끼 고양이 세 마리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혹시 그 말라깽이의 새끼가 아닐까? 저 덩치 큰 노란 털 고양이가 아빠고? 전봇대 아래 힘없이 엎드려 있었던 건 출산의 고통 때문이었고? 의심은 증폭되었으나 그 뒤로 한동안 새끼를 볼 수 없었다.
하루에 한 끼 먹던 말라깽이 고양이는 이제 두세 번씩 와서 음식을 청했다, 영문도 모르고 주면서도 ‘이건 아닌데!’, ‘야생 고양이라 먹이 사냥을 해야 하는데... 매일 이렇게 부엌 앞 데크에 턱 받히고 있으니 어쩜 좋아?’ 고민이 시작되었다. 애초 사료를 살 때 염려했던 바가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말라깽이 고양이는 아예 우리 집에 터를 잡은 모양이었다. 우리와 마주치기만 하면 목공방 뒤나 창고 뒤, 데크 아래, 꽃밭 수풀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어김없이 부엌 앞 데크로 올라왔다. 불쌍해서 사료를 내주다가도 “야, 인마! 먹이 활동도 해야지. 이렇게 부엌 앞에서 턱만 받히고 있으면 어떻게 해? 넌 집고양이가 아니라 길 고양이라고!” 한 마디씩 잔소리를 했다.
하루는 완전히 무시하고 아예 음식을 주지 않았다. 나의 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날 또다시 나타난 말라깽이에게 평소 주던 양을 그대로 주었다. 그랬더니 다 먹어 치우고선 가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못 먹었으니 오늘 더 먹어야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듯. 사료를 더 주었더니 다 먹고선 사라졌다. 불쌍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도대체 이 교차되는 감정은 뭔지....
여전히 마른 모습의 말라깽이가 불쌍해 올 때마다 사료를 주었다. 새끼에 대한 생각은 잊혀 가고 있었다. 아침에 사료를 먹다 말고 말라깽이가 데크 아래를 향해 갑자기 ‘뇨이뇨이뇨’ 소리를 냈다. 그러자 검정, 갈색, 흰색 털이 섞인 자신과 똑같은 털을 가진 새끼 고양이가 올라오더니 남겨 놓은 사료를 먹었다. 어미가 테이블 아래 벌러덩 눕자 이번엔 젖을 빨았다.
새끼가 너무나 귀여웠다. 아기 티가 풀풀 나는, 작지만 예쁜 얼굴과 앙증맞은 두 다리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걷는 모습! 남편과 나는 아침 식사를 하다 말고 숨죽이면서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짐승도 새끼는 참 예쁘구나!’ 생각하면서. 한참 있노라니 노란 털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겁이 많은지 연신 주위를 경계하면서 데크 아래에서 올라왔다. 벌렁 누워있는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형(?) 곁으로 다가가다가도 조그만 소리만 나면 즉시 데크 밑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드디어 어미 곁에 와 젖을 빨았다. 분명 세 마리였는데... 다른 한 마리는 어떻게 된 거지? 굶어서 죽었나? 아님 병에 걸렸나?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온 말라깽이에게 사료를 주었다. 말라깽이는 먹다 말고 또 어제의 그 ‘뇨이뇨이뇨’ 소리로 새끼들을 불렀다. 기다렸다는 듯 어미와 똑같은 털의 고양이가 데크로 올라와 어미랑 머리를 맞대고 사료를 먹었다. 조금 있으려니 노란 털 고양이가 계속 주위를 경계하면서 올라와서는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미와 첫째가 먹고 있는 사료 주위를 빙빙 돌다가 멀찌감치 떨어졌다가를 반복만 할 뿐. 정말 겁이 많은 녀석이다.
반면 그 어미와 똑같은 털을 가진 녀석은 마지막 한 톨까지 다 먹어치웠다. 그리곤 벌렁 누워 있는 어미에게로 가 또 젖을 빨았다. 사료도 어미젖도 혼자 다 먹어 버리는 첫째가 얄미워 “넌 그만 먹어.”라며 쫓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첫째는 나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다 먹어버렸다. 결국 노란 털 고양이는 한 톨도 먹지 못하고 어미젖만 간신히 몇 모금 빨았다. 첫째가 다 빨아먹은 탓에 젖이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또 한 마리의 노란 털 고양이가 데크로 올라와서는 어미와 형들에게로 가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고만 있었다. 죽은 줄 알고 걱정했던 그 고양이는 젖도 빨지 못하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데크 아래로 사라졌다. 그 녀석은 더 겁이 많고 힘이 없는가 보다.
셋째도 하루 만에 적응이 되었는지 그다음 날부터는 어미와 꼬물이 세 마리가 매일 나타났다. 사료도 먹고 젖도 빨다가 나란히 테이블 아래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가곤 했다. 마치 우리 집 고양이처럼 편안하게! 그러다 나중엔 아예 데크 여기저기에 널브러져서 낮잠을 잤다. 처음에 셋이 뭉쳐 잘 땐 고양이들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널찍널찍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누워 있으니 눈에 너무나 잘 띄었다. ‘이러다 동네 사람들 눈에 띄면 큰일인데 이를 어찌해야 하나?’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어느 날인가부터 꼬물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미만 나타날 뿐. 계속 어미만 오니까 이번에는 꼬물이들이 걱정되었다. 사료를 다 먹으면 곧바로 사라지는데 꼬물이들에게 가서 젖을 먹이나? 아니면 벌써 독립을 해서 각자 먹이활동을 하나? 아니면 다들 잘못되었나? 별생각이 다 들어 고양이에게 물어보지만 들려오는 건 바람 소리뿐.
꼬물이들이 무사하길 바라며 오늘도 사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