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마음이 약해져 있구나.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이렇게 약해질 때 나는 어떻게 견디고 버텨냈는가.
아주 사소한 경우들을 들면서 그건 참 잘한 것 같다라고 생각해보자.
팔레르모에서 엄마의 소식을 들었을 때 맨처음의 나는 황당할 정도로 이기적이었지만, 이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해서 장례 첫날, 저녁이나마 빨리 들어울 수 있었던 것을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후회스럽지만
장례를 치르면서 느꼈다. 이 모든 과정을 다 내가 직접 겪었어야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일정 사나흘만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일단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간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효자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효자로서의 삶을 살아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엄마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엄마에 대한 많은 말들이 상투화되고 하소연이자 넋두리가 되어가고, 이내 소음이 되어간다는 걸 느낀다. 때때로 그냥 혼잣말이라도 말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혼자 있을 때 했던 말들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다. 하나의 말과 한탄에 점점 많은 과거의 시간과 기억이 겹치고 겹쳐, 점점 중의성을 띄어가고 상형화되어간다. 지금도 되풀이해서 말하는- "엄마가 너무 빨리 갔어." 라는 말 한 마디에 정말 많은 장면을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와 상관이 있든, 없든 연상되는 모든 장면을.
다른 말을 쓰고 싶다. 다른 형태를 남기고 싶다...배치를 바꾸고 구성을 바꾸면 나아질까- 따위의. 그러나 나의 삶의 방식과 태도가 그랬듯, 없는 방법을 짜내어 '억지'를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엄마는 자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 강조했던 엄마는 내내 사랑에 관한 것들을 떠올리고 꿈꾸었다. 신을 향해서든, 자연에 대해서든, 자신의 가족 또는 주변이든, 혹은 자기가 산책로에서 보고 유튜브로 들었던 다른 어느 누구에 대한 것이든, 그렇게 엄마는 항암후유증에 관절이 다 나간 손가락으로 열심히 사랑을 남겼다. 엄마 자신은 실감하지 못했고 결핍되었다고 믿었던 그 사랑을 남겼다. 이 사랑의 출처와 경위와는 무관하게 나는 내 식대로 사랑을 상상한다. 살아생전 엄마가 느꼈던 사랑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내 안에서 움틀지도 모를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이런 식의 사랑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꿀 수는 있을 것이다, 엄마처럼. 엄마의 정도와 강도와 유래가 아닌 방식으로, 엄마로부터 아주 멀어져 낯설게 된 그 파동에 대하여 누군가 다시 사랑이라고 상상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