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하나의 예
어째 점점 책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산으로 가는 느낌...;;
근데 당장 생각나는 게 이런 것들이었네요.
한 사람에 있어서의 변화라는 건 어떤 지속적인 흐름이 다른 지속적인 흐름으로 바뀐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다 한번 일렁이는 일탈과는 다른 종류의 것임을 의미한다. 영구적이지는 않더라도, 일정성의 측면에서 전과 후는 유사하다.
하지만 일정한 흐름이 다른 성격의 일정한 흐름으로 바뀐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내외적 작용이 따른다. 무엇이 기존의 흐름을 바꾸어버리게 하는가- 환경(외적)의 영향은 너무나 크다. 변화 그 자체는 결코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야기하는 외적 요인의 경우 보통 전쟁이 터지거나 중병에 걸린다거나, 지금까지의 자기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경우(사별)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고 했다. 그 정도로 한 사람의 지축을 뒤흔드는 외적 작용이 아니고는 외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이는 내가 바라고 바라지 않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당하는 변화다. 이런 변화에 나의 의지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성취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형태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얻은 과실에 비해 그 사람의 삶에 찾아온 변화는 엄혹한 수준이다. 그런 변화를 겪은 뒤의 사람들은 변화의 순간이 트라우마로 기억될 수도 있다. 변화는 적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찾아온 결과다.
이런 것에 비교할 때 내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게 되는 경우는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 것일까- 내적 요인을 통한 변화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직도 별로 없다- 왜 변화에의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를 알기는 아직 어려운 것 같다. 지금까지의 삶에 불만족을 느끼며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서 변화하지 않고도 어떤 삶은 마침내 그 흐름에 걸맞은 방향과 지점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는 안 된다'의 기준점은 철저하게 자기에게 있다. 이것은 외적 욕망만으로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변화에 대한 이해는 변화가 이루어진 다음에 가능할지도 모르기에, 변화하기 전의 나는 결코 이 변화에의 충동이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막연하기 짝이 없을 이렇게는 안 된다라는 마음이 점점 강렬해지며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변화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여정이 시동이 걸리기 위해서는, 이제껏 자기 자신에게 주어졌던 '자유'를 말살해야 하는 것 같다. 기존의 흐름과 질서에서 살고 있는 나의 관점으로서는 도저히 왜 이런 미친 짓을 감행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의 '학대'같은 것이다.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 없다, 이건 내 삶을 낭비하는 일이다, 포기하는 일이다, 다 잃을 수 있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수 있다, 어쩌면 내 삶이 이로 인해 끝장나는 듯한 느낌이 날지도 모른다. 그런 수준의 냉혹함이 스스로에게 자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막상 그 변화의 선을 넘어서고 새로운 흐름을 타게 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그런 요동에 휩쓸리지 않을 것 같다. 이것에 대해 전은 어두웠던 과거, 후는 빛을 얻은 미래 같은 식으로 이분화하지 않는다. 그냥 그 사람의 삶의 흐름이 달라진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변화에게 기대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결코 사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까지 긍정하며 내 삶 전체를 끌어안을 수 있다. 여기서의 긍정은 합리화가 아닐 것이다. 좀더 훤하게, 추했든 귀했든 그 모든 과거의 나를 비출 가능성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