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에서

by 흘흘

그 일은 느닷없이 벌어졌다. 동짓날 밤에 사람들은 응원봉을 들고 그 춥고 건조한 밤을 견뎠다. 누군가가 무자비한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말에, 모이면 그들을 지킬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이 남태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수천의 무리가 되어 밤을 지새웠다는 말을 듣자 그들을 대신해서 자리를 지켜주고자 첫차 시간에 맞춰 다시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왔다. 왜 모이는지 이유를 미처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몰려왔고 다시 왜 모여야 하는지 왜 거기에 트랙터들이 발이 묶였는지를 설명하고자 거부권 행사된 양곡관리법의 주요 골자를 설명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공유했다.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탄핵 너머의 세계에 대해 얘기했다. 여의도와는 달리 여기서는 사회약자와 소수자들이 야유를 듣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이 스피치 현장에서 생전 처음으로 논바이너리 퀴어라는 정체성을 들은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현장에서 핫팩과 깔창이 대가 없이 지급되었고 원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믹스커피를 마실 수 있었으며 곳곳에서 사람들이 공짜 김밥과 떡볶이, 주먹밥, 도넛, 휘낭시에, 생수 등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러 헤맬 필요가 없게 도와주었다.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광화문에 오지 못한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어떤 절박한 마음이 행동을 촉발시켰고 그것이 하나 하나의 구체적인 내용을 만들었다.


모두가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따로 분리되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삶을 해독하고, 모두의 정교한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은 다시 갈등을 빚을 수도 있고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 고비를 두고 '실패'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우리의 새로운 경험이 촉발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다른 방법을 찾아내게 할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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