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 얼마나 다양한 국면과 상태가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그렇게 훌륭한 글을 쓴 사람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훌륭한 글을 쓴 이의 어떤 그릇된 행동마저 정당화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글이 써지는, 글을 써내고 마는 자신이 얼마나 예외적 상태였는지를 명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글이 안 써지는 나는 그냥 평범한 상태다. 어쩌다 글을 써내는 글이 써지는 내가 특이한 상태였다.
다만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평범한 상태의 나를 창작의 기운에 놓인 나에게로 다가가려고 ‘애쓰는’ 그 시간을. 때때로 이것이야말로 작가 본연의 시간이라고도 생각한다. 가능한 한 더 오래 창작의 기운에 나를 몰아넣고 싶어하는 나의 시간을. '몰두하는'이 아닌 '몰두하려고 애쓰는' 시간을.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란 다시 내가 되는 시간이다. 다시 말해 작품이라는 결과물이 곧 나라는 얘기가 아니라 결과가 나오는 과정 전체가 나임을 말하는데, 이는 나는 작가가 되고 작가는 다시 나를 수단이나 질료와 결합시킨 형태의 나로 다시 만드는 것이다. 창작의 기쁨이란 이런 과정으로서의 나의 국면이 무수해지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스스로의 다양한 면면을 발견하는 것이 뜻깊거나, 어떤 식으로든 반복의 가치의 가능성을 기대하거나 발견하게 되면 창작하는 사람이다.
창작의 예를 들어 말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알아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므로 창작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즉 내가 나의 방식으로 새로운 국면을 거듭 만난 것일 뿐 이것은 인간이라면 그 누구에게든 다른 형태로나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창작자가 창작이라는 과정을 거쳐 작품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깨달아야 할 지점이란 비단 작품의 주제적 측면 뿐 아니라 나의 작업이라는 형태와 프로세스 역시 인류 보편의 일부라는 것이다. 작가라면 스스로가 무수해지면 무수해질수록 경계를 넘어서서 보편에 다가가게 될 수밖에 없다. 결과를 향해 몰두하려고 애쓰던 나의 행위와 시간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 각자의 '사이의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게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