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작업의 조건

by 흘흘

의외로 좋은 결과물들이 반드시 '좋은 기운'을 의식한 상태에서만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때때로 작업을 할 때의 마음이나 기분은 감상할 때의 혹은 회상할 때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상태기도 하다. 기분좋은 상태인 것도 전혀 아니고. 그냥 실재를 대상으로 한 지속성 있는 반복에서 나온다. 그 반복의 상태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 지금 이걸 왜 하는 거지, 굳이 이걸 해야 하나, 하는 기분이 있지만 그게 판단의 절대기준이 될 수도 없다는 것도 스스로가 안다. 어쨌든 지금 이게 적절한 중단 지점이 아님을 '파악'한 그 상태가 작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 이정도면 딱 좋아, 하는 식의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엄밀한 판단의 문제더라...는 것.

풀코스 마라톤을 하면서 느꼈다. 내가 달리면서 기분좋을 타이밍과 이걸 왜 해야 하나 하는 타이밍은 한번의 달리기에서 동시에 찾아온다는 것. 하지만 아직은 중단할 수 없다는, 혹은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지속하는 것. 고통스럽지만,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것. 사람이 온화하고 좋은 기분, 평화로움만으로 살지는 또 못하는 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그런 게 있었다. 진짜 내가 기분 상태 이런데(너무 좋아서 이 기분에 집중하고 싶어서 사진찍고 싶지 않은/ 혹은 사진이고 뭐고 너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진 찍어야 해? 라고 생각하지만 이성인지 어떤 판단력인지에서는 지금 찍어야 해, 라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고 그거는 결과적으로 좋았다... 그 적절하고 엄밀한 판단력을 갖게 하는 것은 또 나름의 저변의 다른 실천들에 의해 형성되고 또 유지 가능할 것이다.

동시에 무엇을 써야(작업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도 아마 이와 비슷하겠지 싶은 생각을 한다. 쓰고 싶은게 있을 수도 있겠으나 항상 그런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난 쓰고 싶은게 많은가? 어쩌면 그저 써야만 하는 것이라거나 지금 내가 쓰기에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줄 아는 것 등등등. 아무튼 다른 기준과 다른 경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며, 그런 부분을 면밀하게 짚어볼 필요는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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