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의 분위기

by 흘흘

10년 전 쯤이었다. 나는 자신의 사연을 짤막한 토크쇼 형태로 꾸미는 워크숍에 참석했다. 첫 시간에 사람들은 각자 자신을 소개하고 이 워크숍에 참석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내 얘기가 쇼 형태로 나오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같은 얘기들이 가볍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이어서 한 사람의 차례가 되었는데, 그는 자신을 트랜지션을 하지 않은 FTM이라고 소개했다. 흔하다고 볼 수는 없을 FTM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그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짧은 시간동안 압축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 '복잡미묘한' 상황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아직도 강하게 인상에 남는 건 그 사람보다는 그 당시의 분위기였다. 누구도 배타적이거나 거부감을 표하지 않았지만, 뭐랄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실례인 것 같고, 그에게만 스포트라이트만 비추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워크숍 초반의 그의 태도는 다분히 방어적이어서 조금의 오해가 있는 표현도 용납하지 않는 느낌이었고, 난 이렇게 진솔하게 얘기하는데 여러분은 한다고 하는 얘기가 '고작' 그런 건가요, 라는 자격지심도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 당시의 워크숍이 그의 고백을 기점으로 저마다 자신의 내밀함을 얘기할 상황은 또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에겐 내밀한 것도 아닌 그냥 자기를 소개하는 데 있어 불가피한 종류의 것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얘기가 평소에 들어오던 어떤 '일상적'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은 모두에게 있었던 것 같다. 잘 녹아들지 않는 것 같았고, 워크숍의 흐름과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가뿐하고 소소하게 나아가려던 워크숍의 분위기는 그가 발언을 할 때마다 어딘가 침울하고 무거워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의 발언이 끝나면 다시 이전의 가볍고 밝은 분위기로 돌아왔는데 이게 뭐랄까 본의 아니게 '흐려진'분위기를 수습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도 그걸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로서도 그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소수자들이 자신을 토로하고자 하는 공간과 기회를 '자연스럽게'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워크숍은 잘 끝났다. 방어적으로만 보였던 그의 태도는 조심스러움에서 나온 것이었고, 성소수자가 '성다수자'들 사이에 있을 때 본의 아니게 '투사'가 되는 것도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쇼'를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가운데 필요한 내용들은 꼼꼼하게 잘 담아서 만들었다.


이처럼 아주 가끔, 내가 다른 소수자의 커밍아웃을 접하는 상황을 접할 때가 있다. 내가 건너 건너로 알던 사람들 중에 스스로 성소수자임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알리고 다니던 이가 있었는데, 처음 다른 이들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왜 저렇게 앞뒤 없이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상황에서조차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라고도 생각했다. 난 나중에 그와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활동하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든 그렇게 스스로를 커밍아웃했다고 한다. 또 그로 인해서, 분위기가 극도로 불편해져서 오랜 기간 애착을 갖고 몸담아온 곳을 떠난 적이 몇번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일반적으로 나는 커밍아웃을 할 만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굳이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물어볼 상황이 되지 않게끔 먼저 '조심'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매 순간이 처음 같은데, 성소수자임을 말한다는 것이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 어쩌다 하게 되어도 뭔가 너무 선언적인 분위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래서 어쩌라고의 분위기가 될 때의 무안함. 적당한 분위기를 가늠하지 못하겠다. 곰곰 생각해보니, 워크숍에서 그가 자신을 커밍아웃했을 당시, 그 누구보다 그 자리의 분위기에 예민했던 건 바로 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사실 그런 자리라고 생각하고 나온 것도 아니어서 그의 커밍아웃에 상당히 당황했고, 동시에 그 자리에 참석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반응을 세세하게 훑어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적어도 그 자리는 혐오를 대놓고 거론할 호모포비아들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보고 괴로워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편하게 나온 자리에 저런 '무겁고 진지한' 얘기를 해서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건 아닐까, 혹은 그래도 용기내어 말하는 건데 너무 무관심하거나 저 용기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방어적 태도, 예민함에 누구보다 주목한 이 또한 다름 아닌 나였다. 거봐 이러니까 이런 자리에선 하는 게 아니야...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만일 누군가가 혐오를 표현했다면 난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 모른 척하고 그 상황을 방관했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


때때로 어떤 사람은 '그래? 그래서 뭐?'라고 반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혐오는 거론할 가치도 없고, 우리는 너를 이해해, 너를 사랑해, 응원해 같은 말 또한 영 껄끄럽긴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도 불편하다는 심정이 복잡하다. 이를 두고 나는 '네가 어떤 정체성을 갖든 알 이유가 없다'라는 태도로 이해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한 고려 자체를 하지 않는 무성의로도 느껴진다. 말을 할 때의 모습이 비장해 보일 수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같이 보일 수도 있고 대단히 방어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 보이는 모습들을 떠나 그 말을 꺼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이 얘기를 '굳이 먼저' 꺼내는가. 그 얘기는 아무데나, 아무에게나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는 없다. 정말 희귀한 경우로 '관종'의 심리로 그런 말을 꺼내는 이가 있을 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건 나중에 판단할 일이다.


그 반대로, 나 자신은 여전히 그것을 꺼내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에 대해서 그게 어떤 것이 되었든 전혀 적응되지 않았었다. 왜냐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퀴어는 철저하게 혼자였던 적이 많아서인 것 같다. 상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스스로조차 스스로나 다른 퀴어를 대상화하는 상황에 혐오와, 잘 해봐야 대상화, 혹은 분리가 일반적인 사회에서 나나 너가 아닌 나와 너가 함께하는 이 공간을 가늠할 만큼의 여유를 확보한 적이 많지 않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나름 떠올려본 이상적 답은 '얘기해줘서 고마워'라고 여기에 처음에는 썼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헤테로들의 심정까지 헤아려 줄 필요는 없다.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헤테로들이 할 만한 '이상적' 답을 제시한다는 거 자체도 얼토당토 않다. 사실 저 상황에 이상적인 것은 없다. 그냥 그 순간만 있을 뿐이고 실은 내가 커밍아웃한 순간의 적막, 어색한 기류,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분위기 등등 여러가지를 겪었지만 내 멘탈 챙기기에 바쁘지(물론 언제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인데 상황상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는 경우는 이럴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서로에 대한 경험이 충분히 쌓인, '우리'가 형성된 관계에서 나오는 말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저들의 반응은 '따위'라고 해도 좋은 것이기에 내 판단 영역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나는 그걸 어색하게 받아들이진 않을 거 같다고 생각했지만, 똑같은 말이라도 불특정의 사람들이 저런 말을 마치 모범답안처럼 자동적으로 꺼낸다면 꽤나 기괴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지 따위는 알려줄 수도 없을 거 같다. 다른 퀴어의 입장이 될 수도 없고... 저런 반응을 **이라고 받아들일 퀴어들의 얼굴도 수없이 많이 떠오른다. ㅋㅋ 자기 주변에 성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한번도 한 적 없는- 그냥 뭔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생각 자체를 해본 적 없는 이들로부터는 어떤 말을 들어도 적응되지 않고 어색할 것이다. 각자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관계의 양상만 있을 뿐이므로 그 상황에서 그냥 뭐가 최선인지는 먼저 그 말을 꺼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생각하시기를. 물론 그냥 애초에 커밍아웃이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정도의 관계라면 좋겠다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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