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연재26》
당신은 '봄'하고 부르면 무슨 꽃이 떠오르나요? 벚꽃을 봄꽃의 대표선수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매불망 나는 매화만 떠오릅니다.
《매화(梅花)》
매나무가 봄을 낳는다
그래서 그 이름속에 엄마가 있다
나무에 꽃이 달리면 매화요
꽃 지고 열매 맺히면 매실이다
매나무가 낳은 알들이 지천으로
깔리면 봄이 강을 이룬다
달항아리와 나의 인연은 전적으로 매실농사 덕분입니다. 매화주, 매실효소, 매실식초를 담을 용기로 선택한 것이 백자단지, 달항아리였습니다. 매실농사를 안 지었다면 매화도 달항아리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매실농사로 매화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달항아리와의 사랑이 시작 되었습니다. 달항아리 수목원이 만들어 지고나면 달항아리 매화와의 러브스토리도 해피엔딩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15년간의 매실농사로 매화의 진면목을 봤습니다. 손에 잡힌 굳은살로 왜 사군자의 첫번째 자리가 매화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매화를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18년째 소나무 매화 수목원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재작년 가을과 작년 봄에 산으로 옮긴 매나무에 꽃망울이 터지고 있을 것입니다. 무릉매원이 펼쳐진 그곳에 가면 누구나 신선이 되지 않을까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함께 신선놀음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매화의 종류는 주로 꽃의 색깔로 분류합니다. 꽃빛깔이 희고 꽃받침이 핑크빛이면 백매, 꽃빛깔이 희고 꽃받침이 연둣빛이면 청매, 꽃이 붉으면 홍매, 붉은색이 짙어 검은색을 띄면 흑매라고 부릅니다. 가지가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쳐지면 능수매라고 하고, 수령이 150살이 넘으면 고매라고 합니다. 다들 아실테지만 문인화에 나오는 사군자 매화는 전부 백매입니다.
매화는 봄꽃 중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입니다. 올해는 많이 늦었지만, 매화는 대략 입춘을 전후로 핍니다. 통상 입춘은 양력으로는 2월 4일 전후로 꽃샘추위가 최고로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이때는 예측불가한 우왕좌왕 날씨라 기상청이 많은 곤욕을 치룹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으나, 설중매는 한겨울에 피는 매화가 아닙니다. 봄에 매화가 피었는데, 급작스레 눈이 내린 것이지요. 한겨울에 절대 매화는 피지 않습니다. 이 때쯤 일찍 피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데 이를 ‘탐매(探梅)’라 합니다.
신흠선생의 시에 '매화는 일생동안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싯구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조선의 선비는 매화의 지조를 찬양했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습니다. 십 수년간 매실농사를 짓고서 알았습니다. 매화가 필때는 아무리 헐값에 내놓아도 그 향기를 사줄 고객이 없습니다. 호가가 아무리 싸도 매가가 없습니다. 매화가 필 때에는 벌도 나비도 없습니다. '매화불매향'이란 말은 그럴싸한 미사여구입니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그냥 허공에 날리는 자기위안입니다. 혼자 먹는 그림의 떡이지요.
지금도 봄이면 매화가 피는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구경하는 탐매(探梅)의 전통을 이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산청 3매와 천연기념물 4대 매화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는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 있습니다. 나는 산청 촌놈입니다. 내가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태생적 이유인 것 같습니다. 내 DNA 속에는 무조건 매화를 좋아하게 프로그래밍 되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지리산의 천황봉과 선비의 지조를 닮은 산청 3매는 원정매, 정당매, 남명매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된 남사예담촌의 원정매는 산청 3매 중에서 유일하게 홍매화로 진양하씨 집안의 매화나무입니다. 수령이 700년이 넘어 고려시대부터 살아온 나무입니다. 원목은 2007년에 고사하고 후계목이 뿌리에서 자라 매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단속사지 정당매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단속사에 통정공 회백선생(1357~1402년)과 통계공 회중 형제가 유년시절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심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당매는 고사되고 현재는 2014년 식재한 후계목에서 꽃이 피고 있습니다.
산천재 남명 조식선생이 말년(61세, 1561년)에 지은 집이며, 산천재 뜰에 선생이 심은 매화나무가 바로 남명매입니다. 남명매는 수령이 464년이 넘은 백매로 산청 사람들이 제일 사랑하는 매화입니다.
또 인기가 많은 탐매의 대상으로 천연기념물 4대 매화가 있습니다.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입니다.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는 천연기념물에 이름은 못 올렸지만, 개화시기가 가장 빨라 많이들 찾아 갑니다.
천연기념물 4대매화 중 3대 매화린 선암매, 화엄매, 백양사 고불매는 만개시기가 비슷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세 곳을 이어 방문하는 탐매여행을 즐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이 바로 탐매의 최적 타이밍입니다. 이 봄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번개로 탐매여행을 떠나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는 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달항아리입니다. 높이 43.5cm, 몸체지름 43cm, 입지름 19cm, 밑지름 18cm 입니다. 상하좌우 거의 정방형의 균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높은 굽과 설백에 가까운 희고 깨끗한 빛깔이 천상 한송이 백매입니다.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인 흔적이 몸통 중앙에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온몸에 살이 터져 아문 상처들은 세파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길가다 강도 만나 매맞아 거진 죽게된 나그네의 상처에 기름을 붓고 싸매어 줍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달항아리가 바로《죽절입술 팔각달항아리》입니다.
죽절굽의 백자 찻사발은 많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죽절입술을 가진 달항아리는 18회 연재때 소개한《죽절입술 귤피문 둥근달항아리》와 더부러 딱 2점 뿐입니다. 이 달항아리는 그 드문 사례 중 하나라는 점에서 대체불가한 마력을 가집니다.
《매화가 달항아리에 빠진 날》
올 첫매화가 태어나서 처음
달항아리를 보는 날 한눈에 반해
풍덩, 그 속으로 뛰어 들었다
달항아리를 보고 반하지 않을
매화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달항아리 신세가 지금은
뙤약볕 아래서 몸빼 입고
수건 뒤집어 쓴체 열심히
풀메고 있는 미스코리아다
그 아름다움을 알아 보는 이 적다
그러나 머지 않아 이브닝드레스 입고
레드카펫 위를 도도히 걷는 미스월드가
될 것을 나는 안다
낮에도 고혹적인 저 달빛에
뭇사람들 젖을 그날이 곧 오리란 것을
오늘은 첫매화가 개화와 동시에
달항아리 빠진 날이다 그리고
곧 만개한 수만의 매화가 뛰어 들어
매화만점인 날이 올거다
나 또한 다들 깊은 겨울잠 잘 때
좀더 일찍 꽃피워 달항아리에 빠진
한송이 설중매였을 뿐이니까
올해는 예년에 비해 늦었지만 어김없이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매화문을 걸어 들어가면 그 끝에 달항아리가 있습니다. 둘은 천생연분입니다. 인연의 아름다움에 더해진 아름다움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합니다.
매화는 달항아리가 집입니다. 그 안에서 쉼을 얻고 참 안식을 누립니다. 매화는 봄길을 내는 창끝입니다. 그 강인함은 달항아리의 우아함과 조화를 이뤄 새 힘을 받습니다. 함께라서 더욱 빛납니다.
매화 피는 봄엔 길가다 만나는 사람도 그냥 매화입니다. 그 사람 눈에도 내가 매화로 보이겠지요. 이왕이면 내가 설중매로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해마다 매화가 필 때마다 새로운 스토리는 만들어집니다. 그 스토리는 달항아리 속에 차곡차곡 담겨 맛있게 숙성됩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서로의 존재를 더 깊이 각인시키고, 더욱 빛나게 할 것입니다.
토닥토닥 봄비 소리에 잠을 깹니다. 내 마음이 이리 좋은데 막 피는 매화는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