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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국 Nov 27. 2024

불공평한 날

나는 오늘, 또다시 가장이 됐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특히나 죽음은 더욱더.



세상을 살아가며, 불공평한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빠는 운동도 꾸준히 하셨고 누구보다 건강하셨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우리 아빠인 걸까.. 너무 억울하다.



아빠랑 10년도 함께 못 지냈다. 그 시간 동안 그저 받기만 했다.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했다. 이제 나이 서른 돼서 베풀 날만 기다리며 살았는데, 뭐가 그리 급하셨을까..






아버지는 2년 전에 혈액암인 백혈병 판정을 받으셨다. 약물 치료로도 낫지 않아서 올해 초 골수이식을 진행했다. 실패확률은 굉장히 낮았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의사의 1년 시한부 통보. 생착 실패









믿기지 않았다. 아니 안 믿었다. 아니길 바랐다.








그 와중에도 수술 결과가 많이 안 좋았다. 1년간 천장만 보며 사는 삶. 아버지는 식물인간과 다를 게 없었다. 얼마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우셨을까.. 그랬으면 안 됐지만, 그 아픔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어서 나는 그저 옆에 있으면서 아빠에게 제대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걸어 다니셨는데.. 이해가 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일어나서 걸으실 수만 있었다면 마지막을 추억으로 가득 채우며 보냈을 텐데.. 모든 게 원망스럽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새벽, 그날따라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 4시에 잠이 들었다. 잠귀가 어둡기도 하고 피곤할수록 자명종 없이는 잘 깨지 않는데 5시에 울린 엄마 전화의 진동에 깼다.


한 번도 진동이 울린 적 없던 시간대, 그 시간에 화면에 찍힌 '엄마' 두 글자, 진동 사이의 적막한 공기. 모든 게 수상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받았지만 역시나였다.


이제는 괜찮아졌다며 퇴원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외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숨이 가빠지셨고 병원으로 가는 응급차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그 후 장례식을 하기 위해 항상 치료받던 연세세브란스로 운구하기 전에 운송자분께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여주셨다.


흰 천을 걷자, 아빠는 주무시고 계셨다. 아빠를 깨우기 위해 불러봤다.



"아빠"



대답이 없으셨다.

너무 깊이 잠드신건가?

안 믿겼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드셔서 입 벌리고 주무시는, 이 모습 그대로 주무시고 계셨 말이다. 그래서 얼굴을 만져봤지만 오늘 내린 눈처럼 너무나도 찼다.







장례식 동안에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했다.

마치 추모하기 위해 와주신 감사한 분들을 따뜻하게 모시기 위한 날씨 같았다.


삼일장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아마도 하늘도 울어준 것 같다.





첫눈이 오는 오늘, 삼우제를 끝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아빠 산소로 가는 길에 가족과 같이 올해 첫눈을 맞았다. 아빠가 오늘까지만 슬퍼하고 이제는 웃으면서 보내라고 첫눈을 선물로 내린 것만 같았다.



신기하게도 오늘의 날씨는 아빠의 성격 같았다. 아빠 산소에 도착해서 제사를 지내려고 하니 거짓말처럼 눈이 그치면서 해가 아빠의 자리를 비춰줬고, 아빠가 식사를 마칠 시간이 됐을 즈음 쓸데없이 앉아있지 말고 얼른 가라는 듯 날씨는 다시 눈이 오며 거세졌다.


또한 11월의 폭설이 117년 만에 기록을 세우고 아빠가 살던 용인이 최고 적설량을 기록했다. 이 모든 게 과연 우연일까?


미신 같은 걸 정말 믿지 않는 나지만, 오늘만큼은 아빠가 정말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아빠랑 약속했다.

아빠몫까지 엄마랑 누나를 지키기로.




이제는

아빠랑 가던 길이

아빠에게 가는 길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는 오늘 우리에게 닿기 위해 눈이 되어 내리셨고 세상을 새하얀 천국으로 만드셨다.


오늘 천국이 열렸다.

아빠가 천국은 이렇게 아름답고, 천국에 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려고 내린 것 같다.






엄마가 그랬다.

아빠는 나한테 오는 통화를 너무 좋아했다고.

그래서 나는 원래 통화를 별로 안 좋아했고 엄마한테도 잘 하지 않았지만, 군인일 때에도 아빠에게 매주 통화를 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아빠도 나도 표현을 잘 안 하는 성격이지만 아빠한테 전화만 걸어도 아빠의 반가움과 사랑이 느껴졌다. 아빠는 항상 나를 "영훈아"도 아닌 "훈아"라고 불렀다. 아빠만의 애정표현이었겠지. 이제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따뜻한 음성을 들을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어느 날 문득, 누가 그랬다.

새아빠인데도 어떻게 그렇게 아빠소리를 잘하냐고.


그렇게 듣고 보니 나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집에 와서 사색에 잠겨보니 확신이 들었다. 아빠의 성격이 아니었으면, 조금이라도 달랐으면, 이 세상에서 아빠라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살면서 느낀 거지만 이 세상은 누가 봐도 좋은 사람에게 항상 시련을 주는 것 같다. 도대체 하늘은 아빠가 뭐가 마음에 들어서 데려가고, 이 땅은 엄마가 뭐가 마음에 들어서 다시 혼자가 되게 하신 걸까.



아마도, 하늘같이 너그러운 아빠와 땅같이 포근한 엄마로 우리를 감싸주기 위해 그랬을 거라 믿는다.






신이 있다면 신을 미워해야 되는 걸 알지만 오늘은 그냥 아빠가 밉다.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이 우리에게 딱 부족한 부분만 갖고 나타나서 안 그래도 어질러진 마음 한구석을 평생 차지하려고 하는지. 너무너무 밉다.  




아직도 사진을 보면 그냥 먼 곳에 여행을 가있으신 것 같고 전화를 하면 "훈아~"하며 반갑게 받으실 것만 같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고 존경했다.




그렇게 아빠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기 위한 거름이 되셨다. 나에게 눈이 되어주셨고 우리의 집이 되어주셨다.



아빠. 제 아빠가 되어주셔서 고마웠어요.
다음 생에도 꼭 제 아빠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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