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당 앞에 도착하니 은영과 은영의 남편 승기, 려화, 보람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보람이 아기띠를 하고 안고 온 보람의 아기도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오랜만에 함께 얼굴을 본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맞이했다. 대강당에 들어서며 그들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여념이 없었다.
"려화야, 요즘도 계속 마라탕집 장사 잘 돼?"
찬희의 물음에, 이젠 제법 사장님 사장님 티가 나는 려화가 의젓하게 답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꾸준히 와줘서 다행이에요. 이번엔 다른 업종도 추가하려고 은영 언니한테 상가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우와, 역시 려화! 정말 대단하다니까!"
찬희와 려화의 대화를 듣고 있던 보람 또한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맞아요. 려화 언니도 찬희 언니만큼 존경스럽다니까요. 헤헤."
그러자 은영이, 손사래를 치고 있는 찬희와 그 옆에 서 있는 보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보람아, 난 너 덕분에 계약 많아져서 좋다, 얘."
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찬희가 보람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보람이 넌 언제 영상 편집을 배워가지고 그렇게 야무지게 잘 만들었어? 부동산 유튜브인데도 안 지루하게 자막도 재밌게 잘 달았던데?"
보람이 안고 있던 아기의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며 말했다.
"에이, 별거 아니에요. 저는 아직 아기도 어린데 어디 맡길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어디 나가서 일은 못하겠고, 집에서 여러 영상들 참고해서 만들어 봤어요. 그래도 다행히 은영 언니네 부동산 소속으로 돼 있어서 은영 언니랑 같이 찍은 영상 보고 사람들이 꽤 연락 오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한 건이라도 계약되면 은영 언니도 좋고, 저도 구독자 많아져서 좋은 거죠, 뭐. 하하."
여전히 밝은 모습의 보람은, 아기를 안아 무거워하면서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
그런 보람의 등을 쓰다듬으며 은영이 말했다.
"보람이가 업로드하는 영상 덕분에 찾아오는 손님이 더 많아졌어. 이게 다 보람이 덕분이야."
"처음엔 영상 편집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거의 PD나 다름없어요. 게스트 섭외부터 편집까지 다 하느라 정신없다니까요. 그나저나 수현 언니랑 지윤 언니도 잘 지내시죠? 이거 원, 아기 보랴, 영상 만들랴 도통 사람들한테 연락하기가 쉽지 않네요."
은영을 잠시 흘겨보고는 웃음을 터뜨린 보람이, 찬희를 돌아보며 물었고 찬희가 답했다.
"응, 수현 언니는 아직 면세점에 잘 다니고 있고, 지윤 언니는 집 근처 아울렛 매니저로 잘 다니고 있지. 지난번 그 명품 브랜드 매니저로 말이야. 오늘 여기 올 수 있냐고 하니까 두 분 다 근무가 잡혀서 오늘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 다들 안부 전해 달라더라."
대강당에 들어와 의자에 앉으려던 찰나, 마침 지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찬희야, 예전 본사 영업 담당한테서 연락 왔더라. 면세점에 다시 입점할 거라고. 나는 아울렛에서 일하고 있어서 너 추천해 드렸어. 매니저 자리로. 너한테 곧 연락 갈 건데, 글 쓰면서도 일할 수 있으면 한번 생각해 봐."
메시지를 확인한 후, 서후와 엄마가 자리에 앉은 것까지 확인한 찬희는, 영화 상영에 방해되지 않도록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이윽고 영화가 상영되었다. 단편 영화라서 찬희의 소설은 최대한 압축이 되어 있었지만, 그만큼 몰입하기에는 좋았다.
하린을 비롯한 학생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고, 특히 찬희가 진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사람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듯했다.
찬희는 짧은 영화 상영이 끝나자 너무나도 가슴이 뭉클해져서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자신의 지나온 날을 스크린에서 보고 나자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 찬희를 보고 옆에 앉아 있던 서후가 말했다.
"엄마, 울었어?"
"아냐,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찬희는 서후의 질문에 얼버무렸지만, 스크린 속 자신의 지나온 날들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랐다. 진우와의 추억, 서후와 함께한 시간들, 그리고 다시 일어사기까지의 고된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겨우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은 줄에 앉아서 영화를 보던 선희도 엄마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들과 함께 대강당을 나와 밝은 복도로 나온 찬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내 이야기가 이렇게 스크린에 담길 줄은 몰랐어. 너무 낯설기도 하고, 좀 부끄럽기도 하고..."
찬희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낀 려화가 찬희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언니, 저도 보면서 가슴 뭉클해진 거 있죠."
보람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언니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힘을 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도 정말 울 뻔했다니깐요."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던 엄마 또한 붉어진 눈을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찬희를 살포시 안아주며 말했다.
"찬희야, 네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엄마도 이제 알 것 같다."
엄마의 포옹에 찬희는 잠시 얼굴이 붉어졌고, 곧 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대학생들의 작품이지만 수준 높은 작품성에 깜짝 놀랐어요. 저 영화를 보면서 제 삶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도 뿌듯해졌고요."
대기실 근처에서 공연이 끝나고 나올 하린을 기다리기 위해 서성거리던 찬희의 일행들은, 하린이 나오자 그녀의 주변으로 다가갔다.
승기가 하린에게 달려가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찬희 또한 하린에게 꽃다발을 안겨 주며 말했다.
"하린아, 네 덕분에 내 이야기가 더 빛났어. 정말 고마워."
목이 메인 찬희가 올라오는 벅찬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모. 좋은 글이 없었으면 저도 이렇게 몰입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하린의 진심 어린 말에 찬희는 울컥한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하린에게 감사의 인사를 끝낸 찬희는 연극 중에 방해가 될까 꺼 놓은 휴대폰의 전원을 켜 보았다. 로딩이 끝난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예전 본사영업담당으로부터 부재중 전화와 함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윤찬희 님, 잘 지내시죠? 면세점 재입점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시간 나실 때 전화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또 하나의 메시지 또한 도착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윤찬희 작가님, 이번에 괌에 거주하는 교민들에게 팬사인회가 있을 예정이라 연락드렸습니다. 문자 보시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찬희는 두 개의 메시지를 주욱 읽어보며 미소를 한 번 짓고는 자신의 일행들에게 말했다.
"이 근처에 해뜰막국수라는 맛집이 있는데, 다들 거기로 가실래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일행들의 환호 속에 찬희는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햇살 가득한 거리에서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밝은 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