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억하는 길

by 리도씨

길 위에 서 있었다.

낯선 곳도 아니었고, 특별할 것도 없는 그 길은 이상하게도 그날 따라 내 마음을 붙잡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길을 바라보았다. 아스팔트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그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은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잘 지내고 있니?"


그 물음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잘 지낸다고 말하기엔 마음 한편이 자꾸 저려왔고, 그렇다고 힘들다고 말하기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인생은, 그 사이 어딘가를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웃는 얼굴 뒤에 숨은 슬픔, 고요한 일상 속에 숨겨진 고마움. 우리는 그렇게 빛과 그림자를 함께 안고 살아간다.


어릴 적 나는 자주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다녔다.

작은 손에 전해지던 그 온기는 내게 세상의 모든 안전을 뜻했다. 엄마는 자주 말했다.


"길은 늘 너를 기억한단다. 어디를 가든, 네가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어."


그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건,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위로였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수많은 길을 걸었다. 학교로 가는 길, 처음 출근하던 날의 그 길, 사랑에 빠졌던 계절의 골목길, 그리고 이별 후 돌아서던 긴 밤의 도로까지. 모든 길은 나를 품었고, 나를 지켜봤다. 그리고 어느 길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머물며 속삭인다.


"그때의 너를 기억해. 많이 울었지만, 잘 견뎠지."


삶이란,

결국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이 아닐까. 남들이 정한 도로를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발자국을 찾아가는 길. 그래서 때로는 멈추어야 하고, 때로는 되돌아가야 하며, 가끔은 길을 잃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길을 잃는 동안 우리는 진짜 내가 누구였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하루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넌 지금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해?”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조용히 말했다.

“아마, 나를 다시 찾는 중이야.”

그 말에 친구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게 가장 좋은 위치야. 길을 찾는 게 아니라, 너를 찾는 거니까.”


이야기 속에서 종종 주인공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다.

사랑, 꿈, 희망, 혹은 자신. 그리고 독자는 그 여정을 따라가며 함께 웃고, 울고, 위로받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삶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주인공이고, 우리 안에는 수많은 장면이 있다. 어떤 장면은 찬란하고, 어떤 장면은 어둡다. 하지만 그 모든 장면은 결국 하나의 문장을 향해 흐른다. “나는 살아있다.”


어느 날, 비 내리는 오후였다.

나는 우산 없이 거리를 걸었다. 우연히 비에 젖은 길가에 핀 작고 연한 꽃을 보았다. 그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흔들려도 괜찮고, 젖어도 괜찮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 그 마음 하나면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삶은 빠르게 지나간다. 어느새 우리는 어제의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누군가와 나눴던 말 한마디조차 잊어버린다. 하지만 어떤 장면은 오래 시간이 지나도 우리를 찾아온다. 마음이 조용해질 때, 그 장면들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그 순간들이 나를 지켜줬고,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는 것을.


이 길을 걸어온 당신, 수고했어요. 때론 무릎이 아팠고, 마음이 시렸고, 눈물이 났지만, 그래도 당신은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일이에요.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은, 당신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해줘요. "괜찮아, 잘했어. 넌 참 잘 걸어왔어."


지금 이 순간, 길은 여전히 당신 곁에 있어요. 비가 내려도, 해가 져도, 사람이 떠나도,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요.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은 기억해요. 당신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것, 처음으로 상처받았던 것, 처음으로 용기 냈던 그날의 숨결까지도. 길은 잊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도 잊지 말아요.

당신은 지금, 너를 기억하는 길 위에 있어요.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이 글이 당신 마음에 작은 등불 하나가 되기를 바라요.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이 길을 돌아보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그래, 나는 잘 걸어왔구나.”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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