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곁에 남겨진 자리

by 리도씨

아침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온다.

누구에게도 허락을 구하지 않고, 어떤 날은 안개를 데려오고, 또 어떤 날은 햇살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그 조용한 아침의 틈 속에, 나는 늘 작은 자리를 하나 남겨둔다. 아무도 앉지 않지만, 늘 준비되어 있는 자리. 그것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리이기도 하고,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세상은 늘 바쁘다. 시계는 째깍거리며 등을 떠민다. 휴대폰은 끊임없이 울려대고, 우리는 수많은 소리들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는다. 그러나 아침만큼은, 그 모든 소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새들이 수줍게 지저귀는 소리,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물김, 책장을 넘기는 바람 소리. 그것들은 우리 삶에서 가장 순하고, 가장 솔직한 시간의 언어다.


그 아침의 언어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속도대로 걷는 사람이다. 삶은 경주가 아니라 산책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침 곁에 앉아 있으면, 마음도 숨을 고른다.

어제의 실수와 후회, 내일의 불안과 계획이 모두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대신 지금이라는 이 찰나의 온기가 전해진다. 그 온기 속에서 나는 나를 마주한다. 어릴 적 꿈을 말없이 떠올리고, 오래된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지며,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진다.


나는 어릴 적, 외할머니 댁 마루에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외할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따뜻한 밥을 지었고, 나는 그 향기에 이끌려 눈을 떴다. 마루 끝에 앉아 바라보던 햇살, 그 빛에 비친 먼지 입자들, 그리고 조용히 끓어오르던 된장국.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찬란한 아침이었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아침은 그런 것이다.

지나가도, 사라져도, 한 번 마음에 스며들면 오래도록 향기를 남긴다.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문득 떠오르는 장면 속에는 늘 그런 아침의 온기가 있다. 누군가의 손, 누군가의 웃음, 혹은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어느 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왜 우리는 그렇게 빨리 달리려 하는 걸까?”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우리는 끝없이 앞만 바라본다. 하지만 그 끝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어쩌면 아침 곁의 조용한 자리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냥 머물러 있어도 따뜻한 그런 자리. 우리가 어릴 적 자연스럽게 누리던 평온함이, 이제는 애써 찾아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펐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아침 곁에 자리를 남겨둔다. 그 자리는 어제의 나를 위로하는 자리이자, 내일의 나를 다독이는 자리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숨 쉬는 세상을 온전히 느끼는 자리이다.


가끔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앉는다. 때로는 나를 미워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앉는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냥 조용히 앉아 햇살만 바라본다. 그 모든 날들이 모여,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기를 바란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자리. 누군가의 기대를 내려놓고, 자신의 진심을 조용히 꺼내 볼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는 당신이 당신을 다시 안아주는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아침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따뜻함을 다시 꺼내 보여준다. 그 작은 빛과 온기, 고요한 숨결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된다. 지금 이 순간, 당신 곁에도 아침이 머무르고 있다. 그 아침의 자리에 당신도 조용히 앉아보기를.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해보기를.


“괜찮아. 오늘도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어.”


이 세상 모든 아침이, 당신에게 그런 위로가 되어주기를. 당신의 하루가 시작되는 곳에, 언제나 따뜻한 자리가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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