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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길목에서

by 정목영

계절의 길목에서

정목영


꽃 피면

반가움에 마중 나가고


꽃 지면

아쉬움에 술을 마신다.


여름에는 초록 숨결로 춤을 추고

가을에는 조용히 열매를 받는다.


겨울이 오면

내 안의 밭을 갈아

새봄을 기다리리.



빈손의 여행자

정목영


여행은

내 안의 무엇을 찾기 위한 길.

사랑과 고통을 지고

목적지마다 짐을 내려놓는다.


마침내,

빈손으로 돌아오는 이처럼

삶도 임무를 다하면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무거운 짐을 잘도 지고 온 이들,

자연 속에 조용히 늙어가며

아직도 삶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얼마나 고맙고

눈부신가.


삶 자체가

이미 선물인 것을.



갈기를 세운 산

정목영


달리는 준마의 갈기처럼

석양을 받은 나목(裸木)들이

겨울 산등성이에 솟아있다.


가까운 산은

갈기를 세운 기세등등한 청년의 말


저 먼 능선은

갈기를 누이고 숨을 고르는 노마(老馬)다.


산의 곡선은 달려온 생의 궤적이고

그 굴곡에는 바람의 세월이 서려 있다.


삶도 그렇지 않는가.

젊을 때는 앞만 보고 달리고

노년에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


산의 침묵은 말한다.

달려온 길도

되돌아 가는 길도

모두 내 삶의 속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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