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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일 Nov 06. 2024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새로운 기회

네트워킹을 기대하면서 대학원에 간 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회사-학교-집을 무한 반복했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기 바빴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여유롭게 다닐걸 그랬다라는 후회도 든다.

동기 선생님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선후배 선생님들과 모두 친하게 지낼걸이라는 후회도 가끔씩 한다.

(교육대학원에서 서로의 호칭은 선생님이다.)


대학원에서 전공 단톡을 통해 듣게 되는 새로운 내용은 또 꽤 즐거웠다. 기간제교사를 구인하는 글도 되게 흥미로웠고, 방과후 선생님이나 시간강사를 구하는 구인 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지금 나의 직업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으니, 나중에 자의던 타의던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더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게 공립/사립학교 선생님까진 아니더라도, 방과후 선생님만 될 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이렇게 힘들지는 몰랐지만(?)


이런 기대처럼 대학원을 다니던 중 새로운 일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이용하는 블록 프로그래밍 자료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보자마자 재밌어 보여서 신청했었던 기억이 난다.


회사, 대학원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역시 하고 싶은 것 앞에선 물불 가리지 않는 나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일단 하겠다고 질러둔 후 회사랑 대학원이랑 병행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아주 무모했었다.


그래도 하면 다 하게 되더라, 대신 3가지를 병행하면서 주말은 없었다.


얼마나 주말이 없었냐면 나에게 일주일은 월화수목금월월스러웠다.

금요일에 회사에서 동료가 뭘 물어보면 아~ 그거 그럼 내일 마저 볼게요라고 아주 자주 이야기했었다.


나에게 주말은 또 다른 벌려둔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자료 제작, 과제, 교육봉사, 영어전화 etc..


매 주말마다 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오랜만에 새로운 고민을 하면서 프로그래밍 아닌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새로운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현업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블록 프로그래밍을 만만하게 봤는데, 자료 하나를 만들자마자 넉다운했다. 오히려 이것저것 지원을 많이 해주는 언어를 사용하며 일했던 내가 블록으로 하나하나 하려니 놓치는 것도 많았고, 내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로직을 블록으로 그대로 만들어 내니 정말 복잡 그 자체였다. 검수해 주시는 선생님이 아이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로직 수정을 제안해주시기도 했었다.

블록은 복잡하게 작성하면 그 UI부터 어마무시하다.(정말 읽어 보고 싶지 않은 스타일)


이걸 하면서 정말 갈 길이 멀고, 내가 모르는 것도 나무 많구나 싶어서 회사도 대학원도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 했던 것 같다.


역시 또 자아성찰의 연장선.. 대학원 생활


몸은 힘들었지만 해봄으로써 얻은 장점은 일하면서 만드는 기능을 좀 더 논리 정연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로직을 코드로 작성하면서 동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잦은 고민을 했었다.  복잡한 로직이 머릿속에 얽혀있으면, 조용히 펜과 노트를 꺼내 블록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끊임없이 할 게 많은 4-5개월을 보내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하면서 끝물엔 거의 좀비였지만, 끝나고 나니 내 한계를 늘린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

이때 나의 원동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말을 만들자라는 일념으로 정말 열심히 달렸다.


그러고 나서 맞이한 여름 방학은 정말 학부 때 맞이한 방학보다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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