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모양의 부화관이 갈라져서 주름진 모양이 너무 황홀하게 아름다워 그려 본 애플파이 수선화.
레몬컬러의 부화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은 주홍빛으로 변한다.
수선화(애플파이), vini
수선화는 봄의 메신저로 춥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난 노란색과 흰색의 밝고 화사한 색상은 한 해의 새로운 생명력과 기쁨을 상징하는 듯하다. <수선화>라는 이름만 들어도 생동감 넘치게 트럼펫을 불면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연주회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봄의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수선화는 이렇게 3월의 탄생화가 되었다. 새 학기 새 출발 희망을 응원하는 3월과 정말 잘 어울리는 꽃이다.
수선화 애플파이, 픽사베이
수선화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 십여 년 전 밀레니엄 시대를 알리는 2000년 새해를 캐나다 토론토에서 보냈다. 대학 동기들 중 남자친구들은 군대를 간다고 한 명씩 휴학을 하기 시작했고 여자친구들도 연수 혹은 자격증 준비를 이유로 휴학을 준비했다. 이때쯤부터 휴학이 필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크게 휴학 생각이 없던 나는 대학교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겨울 여행 및 영어연수(?)를 목적으로 토론토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토론토에서 남아도는 여유로운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빙상국가답게 스케이트를 저렴하게 구입하고는 근처 무료 야외스케이트장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다 보니 자꾸 눈에 들어오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나도 어린 아시아인이라 눈에 띄었는지 종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멋쟁이 할아버지 존
독특한 패션에 선글라스를 낀 할아버지는 묘기를 부리며 스케이트를 탔기에 멋있게 나이 드신 분이라는 생각이었는데... 폴란드인으로 캐나다 가족 이민을 위해서 혼자 토론토에 나와 있는 케이스였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댁으로 초대했다. 캐나다까지 와서 이렇게 나이 차이가 나는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신기한 경험이고도 하여 수선화와 스케이트를 탈 때 쓸 수 있는 예쁜 털모자(많이 낡았던 모자가 신경 쓰이기도 했던 터라)를 선물로 준비했다. 그 당시 먹어보지도 못했던 통밀빵에 샐러드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준비하셨고 내 선물에 깜짝 놀라며 빳빳한 50달러를 봉투에 넣어 향수든 화장품이든 집으로 돌아갈 때 사라며 선물로 전해줬다. 이민을 준비하며 아주 여유 있는 분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무 고마웠고 우리의 인연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되었다. 사진을 취미로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던 할아버지는 수선화가 커가는 모습과 토론토 명소가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편지에 넣어 보내주고는 했다. 수선화와 함께 떠오르는 폴란드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토론토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을지 궁금하다.
선물했던 수선화를 사진 찍어 보내심~ ^^;
이 에피소드를 꺼낸 것은 캐나다와 수선화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수선화의 날(Daffodil Day)을 들어 봤을까? 수선화의 날이 바로 캐나다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초반 캐나다 암 학회(Canadian Cancer Society)가 수선화를 암 인식과 기부를 촉진하는 상징적인 꽃으로 선택하였는데 길고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 마침내 다시 피어나 마침내 활기를 되찾은 기쁨을 나타내는 듯 재생과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담겨있어서다. 암으로 싸우고 있는 환자들에게 수선화는 용기와 희망을 전달하는 긍정적인 메신저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고 있다. 수선화의 날은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되어 암 인식 제고 및 암 환자들을 위한 지원, 암 연구 기금을 모으기 위한 캠페인으로 자리 잡았고 수선화는 아름다움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선사하는 존재가 되었다.
수선화의 날 포스터
수선화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전설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나르시스 이야기일 것이다. 매우 잘 생기고 매력 넘치는 청년 나르시스,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어느 날 숲 속을 헤매다가 맑은 물가를 발견하고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깊이 사로잡히고 만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자신의 모습. 이를 떨쳐낼 수가 없어서 괴롭고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결국 물속에 뛰어들어 자신에게 입맞춤하고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을 맞게 된다.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나 나르시스가 물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죽은 뒤 그를 추모하는 꽃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나르시시즘” 용어가 나르시스에서 파생된 것으로 자신의 외모, 매력, 권력 등에 지나치게 빠져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원만한 관계를 이루기가 어려움을 경고한다.
Jhon William Waterhouse , Echo and Narcissus, 1903, WikiArt
나르시스의 꽃으로 등장한 수선화는 포에티쿠스수선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재배된 수선화 중 하나이다. 하얀 꽃잎과 노란 부화관의 붉은 테두리가 특징으로 만개하면 그 모양이 꼭 눈 같아서 '꿩의 눈'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포에티쿠스수선화, 픽사베이
마지막으로 헨리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수선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고통으로 힘겨워할 때 황금빛 수선화가 전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수선화
헨리 윌리엄 워즈워스
나는 외로이 떠돌았다네
계곡과 언덕 위로 높이 뜬 구름처럼
그리고는 한 번에 보았다네
호숫가 나무 아래 바람에 나부끼어 춤추는
황금빛 수선화 무리를
빛나는 별들로 이어진 은하수가 반짝이듯이
물가를 따라 끝없이 끝없이 펼쳐졌다네
첫눈에 펼쳐지는 만 송이의 꽃들
경쾌하게 춤추며 머리를 흔드는구나
그 옆 따라 춤추는 물결
반짝이는 그 물결보다도 더 환희에 넘쳐 춤을 추네
꽃과 물결의 향연에 시인은 마냥 즐겁기만 하구나
나는 보고 또 바라보았네
가슴에 벅차오르던 충만함을 그때는 몰랐네
때로 긴 의자에 홀로 슬픔에 잠길 때
내면의 눈에 떠오르는 수선화는 고독의 축복
이때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올라
수선화와 함께 춤을 추네
<직접 번역>
Daffodils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By William Wordsworth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Continuous as the stars that shine
And twinkle on the milky way,
They stretched in never-ending line
Along the margin of a bay: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The waves beside them danced; but they
Out-did the sparkling waves in glee:
A poet could not but be gay,
In such a jocund company:
I gazed - gazed - but little thought
What wealth the show to me had brought:
For oft, when on my couch I lie
In vacant or in pensive mood,
They flash upon that inward eye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Daffodil, Carington Bowles, 1770, Artvee
캐링턴 보울스는 18세기 영국의 출판업자이자 판화 제작자로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판화를 제작했다. 세밀하고 사실적인 꽃과 식물 묘사가 특징인 작품들은 작품은 당시 유럽과 영국에서 유행한 정원 가꾸기와 관련이 있으며 꽃 애호가와 정원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식물도감 형식의 판화를 제작하여 일반 대중이 자연과 식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빈티지 프린트나 복제판으로 재출판되고 있다.
Narcissus 4, Arentina Hendrica Arendsen, Artvee
19세기 네덜란드는 리얼리즘이 중요한 예술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으며 정물화는 대표적인 장르 중 하나였다. 당시 네덜란드 예술가들은 인생의 덧없음과 지나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꽃과 과일 같은 일상적의 자연물을 그렸다. 아렌센의 이름은 동시대 다른 예술가들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의 보태니컬 작품은 시선을 한참 머물게 한다. 중앙에 활짝 핀 두 송이가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언급된 포에티쿠스수선화이다.
한나 버르거 오버벡은 네 자매들과 함께 고급 수제 도자기를 만드는 오버벡 도자기(Overbeck Pottery)를 운영했다. 자연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꽃과 식물의 수채화와 스케치가 유명하며 도자기 스튜디오에서 장식 디자인을 담당했다.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보태니컬 스타일은 아트 포스터 및 굿즈 디자인으로 활용되어 많은 이들의 사람을 받고 있다.
Narcissus, Lafayette F. Cargil, 1937
유명한 작가는 아니어서 정보가 많지는 않지만 꽃을 그린 화가로 각 꽃에 담긴 이야기와 그림을 담은 "The Language of Flowers" 도서를 출판했다. 그의 화사한 유화 꽃그림은 시선을 사로잡는데 수선화 또한 보라색 벽지와 흘러내리 긴 초록색 잎들이 보색대비로 더욱 선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노란 꽃병과 수선화의 하얀 꽃송이들은 화사하기 그지없다.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David Hockney, 2020
현존하는 화가 중 가장 인기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의 호크니는 2009년부터 아이패드 드로잉을 시작한 80대의 얼리어답터다. 아이패드로 그린 “그래도 봄은 온다는 것 잊지 마세요 “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불안감이 커지지만 그래도 바이러스가 봄을 막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수선화의 희망이 담긴 그림이다.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기억하세요, 바이러스도 봄이 오는 건 막지 못해요.
"The only real things in life are food and love in that order, just like our little dog Ruby.
I really believe this and the source of art is love."
삶에 유일하게 실제 하는 것은 우리의 작은 강아지 루비처럼 음식과 사랑뿐이에요.
나는 정말로 예술의 원천이 사랑이라 믿어요.
"I love life."
나는 삶을 사랑해요.
수선화(떼떼아떼떼), vini
처음과 끝을 내 그림으로...
미니수선화로 가장 흔하게 화분으로 구입할 수 있는 이름도 귀여운 떼떼아떼떼. 꽤 오래전에 그린 그림이라 썩 맘에 드는 편은 아니지만 수선화를 주제로 하여 함께 올려본다.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노란 꽃 떼떼 아 떼떼. 불어로 둘만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작은 의자나 소파를 뜻하는데 둘이 나누는 비밀의 이야기 같은 의미도 내포한다고 한다. 둘이 얼굴을 맞대고 봄의 속삼임을 살랑이나 보다.